일취월장 진주경제[8] 구자경의 기업가 정신((2)
일취월장 진주경제[8] 구자경의 기업가 정신((2)
  • 경남일보
  • 승인 2019.07.29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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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에 의존하는 경영체제 대신 선택한 ‘자율과 책임경영’  

“사장들은 실제 아무 권한도 없지 않습니까? 회장님이 확실한 대답을 해주십시오. 우리가 제시하는 안이 수락되지 않으면 모든 책임은 그룹 경영진이 져야 합니다.” 
노조 대표들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있었다. 사업전략에서 조직구조, 경영스타일, 기업문화에 이르기까지 그룹의 전면적인 경영혁신을 추진하면서, 특히 과도하게 회장 1인의 의사결정에 의존하는 관행화된 경영체제를 과감하게 벗어 던지고 선진화된 경영 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자율과 책임경영’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내세웠다. 1989년 어느 날, 이같이 의욕적으로 내딛은 자율경영의 힘찬 행보는 예기치 못한 사태에 가로막혔다. 당시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던 노사분규의 열풍이 럭키금성에도 불어닥친 것이다. 가족까지 앞세워 집단 상경한 노조 대표들은 회사 건물 주위를 둘러싸고 북과 징을 치며 회장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나섰다.

“교섭에 관한 전권은 각 사(社)에 있으니 이러지 말고 각기 사장을 찾아가서 대화하세요. 사장이 안 된다면 나도 안 되고, 사장이 된다고 하면 나도 됩니다.” 상남은 단호했다. 노조원들은 돌아섰지만, 결국 각사는 연대파업이라는 뼈아픈 사태를 맞았다. 그토록 오랜 고민과 숙고를 거듭해 그룹의 전 경영자와 함께 채택하고 공개적으로 천명한 자율경영의 길은 그만큼 힘들고 어려웠다.
노사분규의 후유증은 컸지만 그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각 사 사장들은 이제 더 이상 회장을 핑계 삼을 수 없게 됐고 임금협상은 각 사의 사정에 맞게 자율적으로 운영됐다. 희생과 고통을 견뎌낸 상남의 결단이 밑거름이 되어 자율경영 체제는 서서히 정착될 수 있었다. 

◇‘우물 안에 큰 고기가 없고 새로 가꾼 숲에는 큰 나무가 없다(新林無長木)’= “인재 육성은 기업의 기본 사명이자 전략이요, 사회적 책임이다.” 
1988년 11월 29일 LG의 종합 연수원인 인화원 개원식에서 구 회장은 이렇게 천명했다. 교사 시절에 지녔던 부강한 나라를 만들려면 기술을 지닌 인재가 필요하다는 교육자로서의 소신은, 경영자로서 기술과 인재를 중요하게 여기는 계기가 됐다.
특히 인재를 기르지 않고는 아무리 유망한 사업이더라도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이러한 인재 육성 철학은 인화원 설립의 직접적 동기가 되었다. 
인재와 교육에 대한 상남의 관심은 LG 내부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주로 LG연암문화재단을 통해 1969년 진주시에 진주시립연암도서관을 기증하고 지원한 사업을 필두로 장학사업, 해외연구교수 지원 사업, LG아트센터 운영 사업, LG상남도서관 운영 사업 등 교육과 문화 발전을 위한 다양한 공익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쳐오고 있다. 
장학사업의 경우, 1970년부터 30여 년 동안 학업 성적은 우수하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2500여 명의 대학생에게 등록금 전액과 교재비를 지원했으며, 2001년부터는 대상을 대학원생으로 변경해 인문·사회계 및 자연계 전공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또 촉망받는 젊은 교수들이 해외에 나가서 견문을 넓히고 연구를 하고 와서 인재들을 더 많이 길러야 한다는 취지에서, 1989년 6월에 처음으로 해외연구 교수를 선발해 연구 활동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후로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해마다 25명에서 30명에 이르는 교수들에게 국내 최고 수준의 현지 체재비와 가족을 포함한 왕복 항공료 등을 제공해왔다. 
상남은 ‘우물 안에 큰 고기가 없고 새로 가꾼 숲에는 큰 나무가 없다 (新林無長木)’는 옛말을 강조하곤 했다. 이런 철학을 계승해 LG는 지금도 우리의 인재들이 큰 고기가 될 수 있게, 또한 우리의 교육이 큰 숲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희망과 격려를 주는 지원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상남이 자서전을 남기기 위해 검토했던 글에서 그가 얼마나 연구개발(R&D)와 인재개발에 관심이 많았었는 지,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는 정신을 강조했는지  잘 나타나있다. 아래는 정인철 진주경제발전추진위원장이 자문한 상남의 자서전 중 일부(나의 희망과 믿음 - R&D)다.

“나는 스스로를 ‘원칙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합작이나 제휴 등 수많은 경영 행위에서 일관된 판단의 잣대는 원칙이었다. 그 것은 내가 지닌 가치관이나 철학과 무관할 수 없는 것이나 요체는 ‘합리적이고 상식적인가’하는 것과 ‘투명한가’라는 것이다. 여기에 기초해 내가 회장에 재임한 25년 동안 일관되게 관심을 기울인 분야는 연구개발과 인재 양성이었다. 

아인슈타인은 ‘관심은 지식보다 중요하다’며 과학의 출발이 호기심에 있음을 강조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자연을 통해 호기심 많은 시절을 보냈다. 내게 있어 땅이란 신비함 그 자체였다. 씨를 뿌리면 싹이 나오고 열매를 맺는 것은 정한 이치라 해도,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열매의 크기와 수확이 달라진다는 것을 신비스럽게 관찰했다. 
어떻게 가꾸는가. 그 방법을 찾아내고 적용하는 것이 영농기술이다. 이렇게 형성된 관찰 정신이 내 사고의 틀을 만들어 평생 식물에 대한 관심에서 떠나지 못하게 했는가 하면 기업 활동에서는 기술개발에 모든 관심을 쏟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내가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의 첫발을 교직으로 시작할 때, 어린 꿈나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떠올린 것도 기술에 대한 강조였다.
당시 황무하기 짝이 없는 산업기반에서 학생들에게 기술이 꿈과 희망이라는 생각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우리나라가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뛰어난 기술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는 것을 알기 쉽게 예를 들며 가르쳤다.
우리가 왜 일본에게 당하고 살았던가. 우리는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외국과 당당하게 어깨를 견주고 나갈 수 있는가.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확실한 수단으로서 나는 기술을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선친의 부름으로 회사에 입사한 후 18년 간의 공장생활을 통해 보다 확고한 신념으로 자리 잡게 됐다. 기술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실천한 실전의 장이 된 것이다. 경제개발이 한창인 시기에 모든 기업들이 사업보국(事業報國)을 외쳐댔지만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다진 것도 이때였다. 
물론 여기에는 창업 이후 선친께서 주창해 온 연구개발이란 기업이념이 내게 전수된 영향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 시절 나는 대단한 기술개발을 꿈 꾼 것이 아니었다. 우선 현장 생활을 통해 사소한 불편을 개선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일단 관심을 갖는 일이 중요하고, 그 다음 궁리를 하다보면 길이 보이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됐다. 
‘인류는 공상에 의해 지배된다’는 나폴레옹의 말에 공감하는 것도 세계 역사가 꿈으로 쓰여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눈에 꿈이 담겨 있지 않으면 산 너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기술론이다. 나는 해외출장을 가서도 사물을 그냥 스쳐보지 않을 만큼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다. 기계나 제품은 물론이고 하다 못해 이상한 꽃나무 하나에서부터 식물의 종자, 집과 도로 모양, 음식의 조리 방법까지 모두가 내 호기심의 범주에 들어 있었다. 
일단 호기심이 발동하면 절대로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없다보니 해외출장을 가서도 빈손으로 돌아온 적이 없었다. 프랑스의 한 목욕탕에 들렀다가 묘하게 생긴 플라스틱 매트가 있어 들고 나온 적이 있었고, 독일에서는 호텔 객실 바닥에 깔린 카펫이 특이해서 객실 담당을 통해 구입한 적도 있었다. 또한 휴대가 어려울 경우에는 스케치를 해서라도 가져왔다. 경우에 따라서는 현지 주재원에게 챙겨 보내게 하여 관련 회사로 하여금 개발을 시도하게 했다.  
음식점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왜 일본식 새우튀김은 바삭바삭한 지를 알아야 했고, 소스가 특이하다 싶으면 그것을 묻고 꼼꼼히 메모해 놓았다가 돌아와 직접 만들어 보아야만 직성이 풀릴 정도다. 

정리=정희성기자

‘일-취-월-장 진주경제’ 프로젝트는 경남일보, 진주경제발전추진위원회(위원장 정인철), 경상대학교 기업가정신추진단(단장 정대율 교수)이 공동으로 진주지역 출신 기업가들의 혁신적인 기업가정신 뿌리를 탐색하고 정립해서 위기의 한국경제-진주경제의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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