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바다에 감성을 묻다(10)남해 남면해안도로
쪽빛바다에 감성을 묻다(10)남해 남면해안도로
  • 박도준·김지원기자
  • 승인 2019.08.08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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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서상항~평산항~사촌해변~가천다랭이마을~신전삼거리(30㎞)
오션뷰 전망대:가천다랭이마을전망대
명소:마해스포츠파크, 임진성, 가천다랭이마을, 설흘산
문의:과천관광안내소 055-863-3893

 

 
남해 가천 다랭이마을. 저 많은 고비들마다, 얼마나 깊은 한숨이 스몄을지…
저토록 경사진 곳이 어떻게 논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섬 산간지역 비탈진 땅을 일궈 논농사를 짓던 섬사람들의 억척같은 생활력을 보여주는 ‘인간 승리’다. 다랭이논은 수백 년 간 대대손손 산비탈을 깎고 일궈 좁고 긴 계단식으로 조성되어 있다. 긴 세월 고달픈 삶과 이를 극복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끈질긴 인내가 만들어낸 경이로운 유산이다. ‘억척같은 삶’이 일군 다랭이논은 지금, 자연 속 한 폭의 그림 같은 장관으로 관광객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이번 코스는 어딜 가나 다랭이논을 구경할 수 있지만 그 절정을 이루는 곳이 가천이다.
 
남해 서상항. 늦은 오후 횟집 건물 옆에 정박한 배들이 고요하다.
남해 남면해안도로 출발지인 서상항에서 이번 일정이 출발한다. 여름 낮이라 비어있지만 초록색 운동장과 새로 세운 조명탑이 남해스포츠파크를 지키고 있다. 항구를 조금 벗어나자 참깨 등을 심은 다랭이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장항이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에 들어서자 야트막한 연봉산에서부터 시작된 해안선이 단아하게 펼쳐졌다. 긴 방파제 벽면을 따라 바다 속 물고기와 배 등을 그린 알록달록하면서 아기자기한 그림들이 눈길을 끌었다. 그 너머로 구름을 바라본다고 이름 붙여진 망운산은 구름에 가려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바다에 안개가 자욱하게 끼기 시작했다. 정박해 있는 대형선박들이 영화 속에 나오는 유령선처럼 어슴푸레 보인다. 주민에게 물었더니 화물선이라며 건너편이 광양이라고 했다. 남쪽방향으로 마도와 대마도, 그리고 바다건너 보이는 평산마을이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임진성. 왜적으로부터 주민을 지키기 위해 쌓았다 해서 민보성 이라고도 부른다.
덕월마을을 지나 임진성에 올랐다. 좁은 차도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올라가니 다행히 주차시킬 공간이 나왔다. 돌벽으로 축조된 임진성의 동문으로 들어섰다. 돌로 축대를 쌓고 흙으로 보루를 만들어 통로로 사용했으며, 왜적으로부터 주민들을 지키기 위해 쌓았다고 해 민보성(民堡城)이라고도 부른다. 보루에 올라 한 바퀴 돌아보니 앞바다와 마을들이 안개 속에 잠겨있다. 보루에 세워진 게양대 위 깃발들은 세월과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찢어지거나 사라져버렸다.

평산항 언덕에 있는 생선구이집에서 통갈치구이를 먹고 나왔는데, 인심 좋은 해안가 해녀들이 셍게알을 맛보라고 건네준다. 부둣가에는 보건지소를 개조한 남해바래길 작은미술관이 있다. 귀촌 3년차 작가가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담은 사진전을 열고 있었다. 사진전은 끝났지만 지난 6일부터 12월 말까지 하반기 전시로 ‘IN&OUT’ 미술전을 개최하고 있다.

 
평산항 작은미술관. 귀촌한 사진작가 지미정 씨의 ‘남해로 온 아이들’ 사진전을 지난 5일까지 개최했다.
평산항. 작은 섬을 끼고 살짝 돌아 나가는 방파제 시설이 멋스럽다.
입소문을 타고 있는 섬이공원을 찾았다. 고동산 골짜기 아래 다랑이논에 돌담과 연못, 억새 등의 풀로 울타리를 만든 유럽식 정원이다. 다랭이논 높낮이를 이용해 11개의 작은 정원으로 만든 이곳엔 낯익은 꽃들부터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아기자기한 쉼터와 포토존까지 만들어 놨다. 고개 들면 고둥산 정상의 기암괴석이 정원을 내려다보고 섰고, 아래로는 한려해상공원의 아름다운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평일인데도 연인과 가족들이 줄을 이었다.
 
섬이정원. 여름철 햇살과 수분을 머금은 정원이 울창하다.
사촌해수욕장으로 들어섰다. 50m 너비에 길이 300m에 달하는 사촌해수욕장은 결코 요란하거나 수다스럽지 않은 아담한 해수욕장이다. 모래알은 은가루를 뿌린 듯 부드럽고, 백사장을 감싼 송림은 해풍과 하모니를 이루며 솔향을 뿜어내고 있다. 300여 년 전에 방풍림으로 심어놓은 노송들이 넉넉한 자태로 해안을 감싸 안듯 서 있다.
 
사촌해수욕장. 방문한 날은 잔뜩 흐렸는데, 바다를 즐기는 해수욕객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파도에 뛰어 들었다.
해안경관도로에서 본 선구 몽돌해변은 바다안개에 어스름하게 얼굴을 드러냈는데 해안에 도착하자 안개가 다시 가셨다. 소녀들이 알록달록한 몽돌로 물수제비를 뜨고 있다.

남면해안도로의 절정인 가천다랭이마을을 찾아가면서부터 해무가 짙어지더니 전망대에 도착했을 때는 몇 미터 앞도 분간하기 힘들었다. 빗방울도 조금씩 섞여 다음을 기약하며 비상깜박이를 켜고 소가 걸어가듯 느릿느릿 속도를 줄여 조심조심 운행했다.

다시 찾은 가천다랭이마을. 가천마을 다랑이논은 설흘산(해발 488m)과 응봉산(해발 471.5m)에서 바다로 향해 흘러내린 산비탈에 곡선형태의 좁고 길게 조성된 100여 층의 계단식 논이다. 어업생활을 하면서도 허리도 펴지 못하는 급경사 산비탈을 평평하게 일구고, 해안가 돌을 주어 와서 돌 하나 쌓고 진흙 바르고 돌 하나 쌓고 진흙 바르고…. 100여 층의 논 하나하나에 들어간 수천수만번의 손길, 피와 눈물로 얼룩진 다랭이논. 또 저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얼마나 마음 조리며 밤잠을 설쳤을까. 다랭이논을 내려다보면 한 뼘의 땅이라도 일궈 자식을 먹어 살리려 했던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들이 생각난다.

 
남해 가천 다랭이마을. 맑은 날 다시 찾았지만 바다 날씨는 오리무중, 하늘 높이로 구름떼가 오간다.
다랭이논에 얽힌 웃지 못할 이야기 하나, 삿갓배미. 옛날에 농부가 하루 종일 논에서 일을 하다가 해가 저물어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자기의 논을 헤아려 보니 한 배미가 없어졌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어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벗어둔 삿갓을 들었더니 삿갓 아래 한 배미가 있었단다.

억척의 삶과 눈물로 만든 다랭이논이 지금은 관광자원이 되어 사람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쪽빛으로 물든 가천 앞바다와 파릇파릇 자라고 있는 벼를 보고 있노라면 몸과 마음도 어느덧 푸르게 물든다.

 
두곡해수욕장에서 모래놀이를 하는 가족
가천에서 홍현마을까지 2㎞ 구간에서 다랭이논이 뚝 끊기더니 홍현에서 다시 다랭이논이 펼쳐졌다. 숙호마을을 지나 두곡·월포해수욕장으로 향했다. 해안가로 내려섰더니 삼삼오오 자갈밭을 뒤지고 있었다. 한 아주머니가 바지락을 잡아 소쿠리에 가득 들고 나왔다. 체험현장에는 햇살이 무섭게 내리쬐는데도 자갈밭 돌을 들어내고 호미로 바닥을 긁으며 바지락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해안선으로 이어진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두곡·월포해수욕장은 하나의 해안선에 송림숲도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두곡은 아기의 속살처럼 부드럽고 은모래밭인 반면 파래 낀 몽돌밭 건너 월포해수욕장은 몽돌밭이다. 경관해안도로 탐방을 하면서 만난 제일 긴 해수욕장이다. 두곡해수욕장에는 여기저기 모래성을 쌓은 흔적이 남아 있었고 어린이와 부모가 모래장난을 하거나 바다 속에서 물장난을 치고 있다. 이에 반해 방풍림 송림숲엔 어른들이 진을 치고 있다. 송림에서 흐르는 땀을 식히고 미국마을을 스쳐 다랭이논이 많은 화계마을을 지나 종점인 신전삼거리로 향했다.

이번 코스는 다랭이논의 아름다움이 수백 년 동안 대대손손 땀과 눈물로 일구고 가꾸어온 섬사람들의 노력의 소산이다. 다랭이논에서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파란 벼들은 늘 우리에게 푸르름을 선사하고 있다.

글·사진=박도준·김지원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미국마을. 미국식 건축양식과 자유의 여신상 모형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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