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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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9.08.2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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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물방울 김수업 교수를 평전으로 읽다(4)

조규태 교수가 본 김 교수의 한글사랑
학문도 아닌데 ‘학’을 붙인 ‘문학’ 대신
‘말로 만든 예술’이란 용어로 쓴 ‘말꽃’
쉽게 쓴 우리글, 사람들 마음 사로잡아
평전 ‘물방울 김수업’을 책으로 골똘히 읽어야 김수업 교수의 제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여러 사람이 분야에 따라 나눠서 기술한 글을 다시 또 집약하는 글로는 제대로의 모습 그 정체성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조규태 교수가 ‘우리말과 한글 사랑’을 썼는데 이 글을 좀 들여다보자. “2018년 10월 9일 한글날, 정부에서는 고 김수업 진주문화연구소 이사장께서 우리말과 한글 발전에 공이 많은 것을 기리기 위해 보관문화훈장이란 상을 추서하였다. 이를 계기로 김수업 선생의 우리말과 한글에 대한 사랑을 되돌아본다”고 말머리를 들었다.

“김수업 선생이 세상을 살아오는 동안에 땀 흘려 이룩한 일 중에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있다. 그중 선생이 남긴 가장 큰 업적은 쉬운 우리말, 즉 토박이말과 한글만 쓰기이다. 선생은 ‘말은 우리말로 글자는 한글로만 써야 한다’는 신념을 굳게 지니고 있었으며 그것을 일생을 통해 한결같이 실천한 분이다. 일상생활에서의 말은 물론이요 강의, 강연 등 어떤 말하기에서도 명쾌하고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했는데 그것은 타고난 말재주가 있기도 하지만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우리말을 잘 부려썼기 때문이다. 쓴 글도 마찬가지이다. 수필과 같은 가벼운 글은 물론이요 문학에 관한 이론서나 논문 같은 글도 마치 구슬이 굴러가듯 매끄러운 문체에다 쉬운 말로 썼기 때문에 누구나 쉬 이해할 수 있어 읽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조교수가 국어교육과에서 함께 후배 교수로서 일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물방울 선생의 능력에 대해 꿰뚫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조교수의 말을 말 그대로 믿을 수가 있는 것이다. 조교수의 말을 이어 따라가 본다.

“선생의 우리말과 한글에 대한 애정으로 만들어낸 가장 빛나는 학술용어는 2002년에 펴낸 ‘배달말꽃, 갈래와 속살’에서 쓴 ‘말꽃’이다. 학문이 아닌 데도 ‘학’이란 말을 붙여 만든 ‘문학’을 버리고 ‘말로 만든 예술’이란 뜻으로 ‘말꽃’이란 용어를 만들어 쓴 것이다. ‘말꽃’은 말로 이루어 놓은 꽃, 말 가운데 가장 종요로운 꽃이란 뜻으로 학술용어로서 모자람이 없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우리가 써온 말 중에 ‘밤새도록 친구들과 같이 이야기꽃을 피웠다’라는 말에서 보듯이 ‘이야기꽃’은 실제로 우리겨레가 오랫동안 써온 말이고 ‘말꽃’의 한 갈래이기에, 선생이 만든 ‘말꽃’과 그 갈래인 ‘놀이말꽃’, ‘노래말꽃’, ‘이야기말꽃’은 널리 받아들여 사용하야 할 용어이다.”

김수업 선생에게서 배운 많은 학생들은 한결같이 이를 실천하기에 여념이 없고 이를 기반으로 말글생활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믿음을 지니게 되었다. 본인이 이 생활을 철두철미 실천하며 살았기 때문에 말이요 삶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물방울 선생은 그대로 스승이 되었다.

조규태 교수는 이어 선생으로부터 배우고 깨우친 사람들 이야기를 이어간다. “1990년부터는 전국국어교사모임에 깊이 관여하여 수많은 국어교사들에게 우리말과 글을 제대로 가르치도록 깨우쳤으며, 대안 국어교과서 ‘우리말 우리글’을 펴내도록 지도하였다. 또한 선생은 퇴임후 2005년부터 ‘우리말교육대학원’을 설립하여 선생에게서 배우지 않은 전국의 국어교사들이 올바른 국어관, 즉 우리말을 사랑하고 한글만 쓰는 정신을 가지도록 교육하였다.”

이 밖에도 물방울 선생은 우리말을 살리는 운동도 전개했다. “1998년에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의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2009년까지 공동대표를 맡아 우리말글을 살리고 빛내는 일에 앞장 섰고 다시 2014년부터 2018년 돌아가실 때까지는 ‘겨레말살리는이들’의 공동대표를 지내면서 우리말 속살 풀이를 또렷이 하고 널리 쓰도록 하는 사회운동을 하였다. 최근 2015년부터는 진주 인근에서 근무하는 초등학교 교사들과 함께 사단법인 ‘토박이말바라기’라는 단체를 만들어 토박이말을 수집하고 정리하며 토박이말을 살려 쓰는 일을 전개하였다.”

이런 일을 하는 것 외는 선생이 가는 곳은 천주교회였다. 일찌기 교회의 본당회장을 거치고 꾸리아단장을 지내고 프란치스꼬 재속수도회의 국가 회장을 지냈다. 국가 회장은 지역단위가 아니라 국가를 단위로 하는 간부를 말한다. 말하자면 물방울 선생은 한국 천주교회의 지도자로 봉사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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