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예술제 어제와 오늘[14] 서제의 변천사
개천예술제 어제와 오늘[14] 서제의 변천사
  • 박성민
  • 승인 2019.10.03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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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예술제 문 여는 ‘서제’

19회까지 서제에 대통령 참석
마니산 채화는 진주성으로 변경
해외 초청팀 참여 등 변신 추진
개천예술제가 정부수립 돌맞이 잔치로 출발하면서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된 자유 독립 국민으로서 4300년 단군 조국 이래의 민족적 영광과 기쁨을 예술 올림피아로서 전개, 조국주에 제사하고 자축하는 데 뜻을 둔 것인 만큼 개천절로 날 받은 것은 의의가 크다. 따라서 ‘서제’가 그만큼 비중이 실리는 행사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1회 서제는 첫날(1949년 11월 22일) 오전 10시 창렬사에서 베풀어졌다. 3회 서제부터는 국립국악원 일행의 축악 연주가 있게 되었고 참가자 대표가 선서하고, 진해해군 군악대, 해병군악대, 공군군악대 등이 임진선열에 대한 진혼가를 연주했다. 5회 때 축포 순서가 추가되었고 7회 때 제주오현고등학교 취주악대가 진혼가를 연주해 이채를 띠었고 장소도 공원가설무대로 옮겼다. 8회때 축사가 포함되었고 9회 때부터 국토 및 동해물 헌정순서가 추가되었다. 대회 위원장이 직접 6개 시 9개 도에서 채취해온 국토와 서귀포 해돋이 방파둑 끝에서 떠온 동해물을 헌정하는 순서인 것이다. 제10회 서제때는 제1회 개천문화상(수상자 이용준)시상식도 아울러 가졌다.

이 시련기의 대표적인 시련은 서제에 있었다. 12회에 들자마자 국토 및 동해물 헌정순서가 삭제되었기 때문이다. 12회 한 회에 한해서 분향헌작과 제문봉독의 명맥은 유지되었으나 13회부터는 아예 이 두 순서마저도 삭제되었다. 13회 서제(개회식)는 대통령권한대행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참석했다. 14회 서제에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참석했고 15회엔 대통령이 참석하여 치사를 했으며 연극부 경연에 내리는 대통령기 하사도 있었다. 서제의 대통령 참석은 19회까지로 이어져서 매년 국회의장이 동반 참석하는 관례를 남겼다. 22회는 공설운동장에서 서제가 진행되었고 식후 공개행사가 마련되었다. 천전초등학교 학생 1500명의 카드섹션, 선명여자상업고등학교 학생들의 진주검무 매스게임, 중안초등학교 어린이들의 약동하는 새마을 매스게임, 봉원초등학교 학생들의 차전놀이 매스게임, 제주오현고등학교와 대아고등학교의 취주악대 등이 제전의 개막을 눈부시게 장식했다. 29회에는 개막 전일 오후 5시 창열사에서 서제를 갖고 제전 첫날 11시 공설운동장에서 예년과 같이 개회식을 가졌다.

31회 개회식은 첫날 11시 촉석공원에서 개최되었고 32회는 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되었다. 32회 개회식에는 식후 공개행사로 도민화합의 마당을 마련했다. 순서는 축하 활쏘기, 여의주를 얻음(촉석초등학교), 농악놀이(시군농악대), 줄다리기, 반주따라 노래하기로 이어졌다. 33회는 전야제가 공식 개최되었다. 전야제는 초혼행렬, 호국타종, 추모제, 유등개시, 정등점등, 꽃불발상, 음복 순으로 이어졌다. 추모제는 개제선언, 헌악, 제문낭독, 분향헌작, 헌창, 헌무, 폐제선언으로 진행되었다. 개회식 다음 공개행사는 도민 화합의 마당을 베풀어졌는데 해군의장대 시범, 진주줄싸움, 쾌지나칭칭나네, 연예인 공연 등이 있었다. 34회는 개천제단이 완전히 복구되어 서제는 전야에 개회식은 대회 첫날에 이원적으로 베풀어지게 되었다. 서제 차례는 초혼제등 및 성화봉송, 호국타종, 제향, 초혼점등 및 유등, 고천불꽃, 음복, 시민 경축의 밤으로 이어졌고 제향은 개제선언, 성화봉정 및 헌악, 국토 헌정 후 도민화합의 마당도 성대히 베풀어져 모처럼의 일체감을 맛보게 되었다.

42회 개막은 서제와 개회식으로 나누어 실시되었다. 개회식에서 개천예술제 백일장 입상자인 시조작가 서벌이 ‘개천예술제 예찬’이란 축시를 읽은 것이 돋보였다. 48회는 설창수가 없는 서제가 집행되었는데 성화봉정, 국토 동해물 헌정이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제향이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채화에 관한 것이다. 파성 설창수 이후도 마니산 채화를 계속할 것인가 논란이 있었으나 집행부는 진주성에서 당일 채화하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식전 공개행사로 제주오현고등학교 밴드부가 참여했다. 이 시기의 제의는 안정된 형식을 갖추어 성실히 이행되었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52회 서제에서는 성화채화 다음 순서로 ‘논개 의인 추모 헌공다례’가 삽입된 것이 전회와 달랐다. 53회 서제에서는 ‘논개 의인 추모 헌공다례’가 없어지고 ‘진다례 말차시연’이 새로 삽입된 것이 주목을 받았다. 54회 서제에서는 개제식에서 식전음악행사를 통해 시민과 외래 관람객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대중성 있는 프로그램이 선을 보였다.

올해 개천예술제 서제는 시민과 함께 소통하고 예술로 하나 되어 미래로 도약하는 행사로 기획됐다.

서제에서 가장 돋보인 점은 시민 참여의 폭이 예년에 비해 확대되었고 타 지역과 해외 초청팀이 참여했다는 것이다. 제향 이후 펼쳐지는 성화 봉송과 안치에는 지역 고등학생 60여 명, 예술제의 시작을 축하하고 진주대첩 승전을 기념하는 ‘진주목사 김시민 장군 진군명령 퍼포먼스’에 국내·외 초청팀, 지역학생과 학부모 400여 명이 참여했다. 축제에 시민의 직접 참여를 점진적으로 늘려 나감으로써 지역 축제의 정체성을 세대 간에 공유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세계적인 축제 경향에 최적화된 연출이라는 주변의 평가를 받고 있다. 전 분야에 걸쳐 크고 작은 변화를 시도한 개천예술제가 올해 진주시민과 관광객에게 작은 울림을 주고 있다.

박성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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