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날 초목의 혼을 생각하며
어느 가을날 초목의 혼을 생각하며
  • 경남일보
  • 승인 2019.10.20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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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수필가)
끝없이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 위에 욕망을 자극하던 지난여름도 이제는 가을을 위한 몸단장에 한창이다. 맨몸으로 받아내던 뙤약볕의 열기 속에 느낄 수 없었던 바람이 가슴갈피에 서늘히 와 닿는 까닭도 시간의 흐름 때문일까? 여름잠 깊었던 이성과 사색도 잠을 깨어 새로운 혼으로 태어났고, 저 무성한 수풀도 시간에서 세월로 이름이 바뀌는 까닭을 아는 듯 고개를 떨어뜨린다.

지난여름 불타는 뙤약볕을 이고 걷던 발걸음이 이 가을날 한가로워질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시간이 세월로 이름 바뀌는 계절의 탓일 수밖에. 이제는 우리에게도 더 이상 뜨겁게 입을 열어 불을 토해 내듯 많은 말이 필요 없고, 더 이상 여름 날씨처럼 푹푹 찌는 폭염이라는 단어는 잊은 지 오래이듯 숨 가빠지게 흐르는 땀을 적셔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으리라.

저 푸르른 녹음의 야망도 끝에 이르러 시간 앞에, 세월 앞에 옷을 갈아입고는 붉은 단풍빛깔 울음 삼켜 물고, 서리치는 가을밤을 깨어 새워야 한다는 이치도 깨닫게 되는 건 아닐까? 삶이란 결국 제 코스를 밟아가야 하듯 계절도 정해진 기준에 따르듯 인생에서도 사랑에서도 더욱 제 순서를 따라가야 한다는 이치를 그 누구의 가르침이 없어도 단 며칠 밤을 깨어 새우다 보면 스스로 알게 되리라.

무릎이 시린 영혼의 방랑 끝에 감성과 이성의 곤두박질을 거듭하고 나서 떠날 이들 떠난다 해도, 남아 있을 이도 있다는 사실에 고마워하자. 지금껏 무심코 지나다녔던 진주성 숲속에 거기 보금자리 틀어 제 둥지를 만든 새들이 해마다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자. 그래서 진주는 아름다운 도시로 살고 싶은 곳이며, 사는 동안 좋은 일이 지속 되도록 자신의 장단점도 발견하고, 계절의 변화에 성찰의 시간도 가져보자.

우정 같은 사랑도, 사랑 같은 우정도 이별로 이름이 바뀌면서 고할 것에 이별을 고하는 깨끗한 손들. 서로의 마음이듯 쓸쓸히 웃으며 우리도 허황스러운 꿈에 이별을 고하자. 허세와 피곤한 자존심에 이별을 고하고, 때가되면 아름다운 영혼의 집을 남겨놓고 떠나가야 할 오묘한 초목의 혼을 생각하며, 우리 모두 남강바닥이 훤히 바라보이는 맑고 맑은 강물로 흐르도록 영혼의 성숙에 다다르자.

 
/이석기·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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