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형법정주의
죄형법정주의
  • 경남일보
  • 승인 2019.10.22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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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법무법인 진주·변호사)
박선영 변호사
박선영 변호사

근대시대 이후로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법률이 없으면 범죄도 없고, 법률 없이는 형벌도 없다”는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의 원칙이 지켜지고 있다. 권력자나 형을 집행하는 자가 범죄와 형벌을 마음대로 전단하는 죄형전단주의(罪刑專斷主義)와는 반대의 뜻이다. 누구도 함부로 범죄를 규정하고 처벌할 수 없으며, 비난받을 만한 행동이라도 범죄로 규정되어 있지 않으면 처벌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한 여학생이 상담을 왔다. 자신에게 한 남학생이 고백을 했는데 여학생이 거절을 하자 그 남학생은 그날 밤 여학생에게 전화를 해서 모욕적인 말을 퍼부었다고 했다. 여학생은 너무 화가 났고 모욕적이고 무례한 그 남학생을 고소하여 처벌을 받게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여학생이 남학생을 고소할 방법은 없었다. 우선 모욕감이 드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떠올리는 모욕죄(형법 제311조)는 공연히 사람을 모욕하는 행위를 벌하는 것인데, ‘공연히’라는 뜻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아닌 제3자가 듣거나 들을 수 있었던 상황에 발생해야 하는 것이다. 또 이러한 경우 의율 하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7 제1항 제3호에 정보통신망을 통한 금지행위 중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부호·문언·음향·화상 또는 영상을 반복적으로 상대방에게 도달하도록 하는 행위’에 해당하는지도 고민해 볼 수 있는데 위 가해자의 행위가 여러 번 반복된 것도 아니어서 이 법 또한 해당되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여러 번 전화를 한다거나 문자를 보낸다면 증거를 잘 수집해서 다시 방문하라고 했다. 또 한 중년의 남성이 취미활동을 하다가 비슷한 나이 또래의 동성의 친구를 만나 아주 친한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남성은 우연히 친구가 지금까지 자신에게 한 말이 다 거짓말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 남성은 이 친구가 자신에게 접근한 목적이 무엇인지 두렵다며 친구가 자신을 속인 것을 ‘사기’로 고소할 수 없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남성도 친구를 고소할 수는 없다. 사기(형법 제347조 등)라는 범죄는 사람을 속여서 이를 믿은 사람으로부터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여야 성립하는데 둘 사이에 돈이 결부된 적이 없다. 훗날 친구가 자신의 재력을 과장하여 거짓말로 남성을 속여 투자하게 하거나, 돈을 빌려가서 갚지 않으면 사기죄가 성립할 것이다.

이처럼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범죄는 정해져 있다. 이는 도덕적 책임과 법적 책임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그리고 국가가 국민들에게 함부로 형벌권을 행사할 수 없는 방어막이 된다.

/박선영·법무법인 진주·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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