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이야기
산골이야기
  • 경남일보
  • 승인 2019.10.24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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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선 (사)한국부인회 진주지회장
‘깊은 산 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어릴 적 ‘옹달샘’이라는 이 동요를 즐겨 불렀다.

필자가 다닌 학교는 시골이어서 초등학교에 가려면 개천의 징검다리를 건너야 했고 산도 넘어야했다. 큰비가 내려 홍수가 나면 동네 오빠들과 학교 선생님들에게 업혀서 건너야했다. 방과 후에도 수위가 줄지 않아 귀가 하지 못할 때는 학교인근에 사는 친구 집에서 숙식한 뒤 뒷날 등교해야했다.

어느 날 등교 때 양지바른 숲속에서 산토끼를 만났다. 호기심이 생긴 아이들은 그 토끼를 잡으려 했다. 잠이 덜 깼는지 행동이 부자연스러워 보였던 토끼는 그러나 아이들의 손에 닿을 즈음, 막내아이의 다리사이를 빠져 도망을 가버렸다. 토끼는 제일 느린 아이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민첩한 산토끼를 잡으려고 숨바꼭질을 하며 한동안 뛰어다녔다. 하지만 토끼는커녕, 쥐새끼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허탕을 쳤다. 제 시간에 등교도 하지 못해 선생님께 벌을 받은 기억도 난다.

산골의 겨울은 유난히 빨리 왔고 어둠도 빨리 내렸다.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아랫목 이불 속을 파고들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는 별다른 놀이 문화가 없어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고 저절로 자연친화적인 생활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기억은 추억으로 차곡차곡 쌓였다. 추억은 어른이 돼서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동창회가 열릴 때면 그 일은 항상 안주거리로 소환된다.

요즘 아이들에게 산골 산토끼 이야기와 쑥 캐고 나물 뜯던 이야기를 해주면 어리둥절해 한다. 마치 먼 동화에 나오는 얘기로 여기는 눈치다. 흙과 멀어져서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살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내준 숙제에 치이고 쫓기듯 학원으로 내몰린다. 자연친화적이거나 놀이는 언감생심(焉敢生心) 그야말로 먼 나라 얘기다.

tv와 영화는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더 경쟁하듯 잔혹한 장면을 생산한다. 드라마는 가족의 갈등을 노골적으로 묘사한다. 사람들은 아무 죄의식 없이 모방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세상의 흐름이 그렇다고 그냥 모른 체 해야 할까. 자라나는 우리의 어린이들이 자연 속에서 풍부한 감성과 건강한 사고를 지닐 수 있도록 어른들이 이끌어야할 일이다.

가을과 겨울사이, 그 산 그 오솔길에는 지금 단풍이 들고 산토끼는 산야의 밤·도토리를 주워 담으며 겨울을 준비할 것이다. 주말 아이들과 함께 잠시나마 그 시절, 그 곁으로 다가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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