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보다 조선을 더 사랑한 일본인(4)
조선인보다 조선을 더 사랑한 일본인(4)
  • 경남일보
  • 승인 2019.11.18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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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형(서울대학교재외동포교육 자문위원장)
주일본 대한민국대사관 근무 시절, 일본 우익계 보수단체 역사학자들의 왜곡 역사교과서로 인연 맺은 치바현일한관계사연구회장 요시이아키라 선생에 얽힌 일들로 시작된, ‘조선인보다 조선을 더 사랑한 일본인’이라는 제목의 칼럼이 어느새 네 번째에 접어들었다.

이번 글에서는 요시이 회장으로부터 전해 들은 조선인보다 더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들에 관한 얘기로 화제를 펼치고자 한다.

지난 칼럼(2)에서도 소개한 아사가와타쿠미는 1891년 일본 야마나시현에서 태어나 조선총독부 산하 산림청 직원으로 조선에 오게 되었고, 형의 소개로 야나기무네요시와 교유하여 친구가 된다. 조선어를 자유롭게 말했고, 조선옷을 입고 거리를 걸었다. 조선인 동료나 친구와도 깊은 우정을 맺어, 비밀리에 청소년들의 학비를 대어주기도 했다. 그는 야나기가 그의 인품에 심취되어 서재에 항상 사진을 장식해 둘 정도로 둘도 없는 친구였으며, 항상 약한 사람의 입장에 서서 행동했고, 조선 문화에 친해져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의 유골은 ‘조선의 흙이 되고 싶다’는 유언에 따라 망우리공동묘지에 묻혀 있다.

1889년 도쿄에서 태어난 야나기무네요시는 아사가와 형제와의 인연으로, 조선도자기의 아름다움에 빠져 조선의 문화와 역사연구에 헌신하였다. 그는 도자기 수집을 하면서 물건에만 흥미를 가진 것이 아니라, 물건을 만들어 내는 사람에게 더 큰 관심을 가졌었다고 한다. 기미년 3.1 만세의거 당시 일본 측의 조선인 탄압을 강하게 비판, “일본의 동포여,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멸망한다. 우리는 모두 인간답게 살려는 것이 목표 아닌가? 자신의 자유를 존중하면 타인의 자유도 존중해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호소했다. 당시는 일본의 군국주의 치하, 지식인 중에서도 극히 소수만이 검은색을 검다고 말할 수 있는 시대 상황속에서, 이런 호소는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 후, 그의 조선 문화와 민족에 대한 강한 존경심은 조선민족 미술관 설립 및 광화문 보전을 호소하는 활동으로 이어져 갔다. 그의 부인은 성악가였는데, 남편의 활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으며, 조선의 문화와 사람들에 강한 애착을 갖고, 한국 유학생들을 돌봐주거나 남편과 함께 여러 번 한국을 방문했고, 관동대지진 희생자들에 대한 위령 독창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지금과는 달리 대단히 힘든 여행길이었던 그 시대에 그는 21번이나 조선을 방문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조선은 그에게 매력적인 나라였던 것이다. 조선에 올 때마다 조선 문화에 대한 존경심을 더욱 강하게 다졌으며, 1921년 경복궁 안에 ‘조선민족미술관’을 만들기도 하였다. 당시 조선총독부의 광화문 해체 계획에 대하여, “광화문은 왕궁의 정문, 게다가 건축도 훌륭하다. 일본이 이를 마음대로 해체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는 글을 발표했다. 결국 여론을 움직여 해체에서 이전으로 변경시켰다. 그 공적으로 1982년, 우리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았다.

일본 오카야마대학 國語학과 스가하라미노루(1946년생) 교수는 ‘3년 고개’라는 한국의 민화 1편을 일본의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싣기 위하여 여러 해에 걸쳐 즐거운 마음으로 자료 수집과 연구를 자원(自願)하였다.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 편찬위원으로서 일본의 어린이들에게 한국인의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정(情)의 문화 등, 좋은 점을 ‘3년 고개’라는 재미있고 쉬운 교재로 교과서라는 대중 매체를 통해 효과적으로 널리 전파하려는 간절한 바람(念願)으로 실었다고 한다. 한국 전래 민화인 ‘3년 고개’는 일본의 소학교 3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는데, 일본의 여러 초등학교 國語교과서에 우리나라 민화가 수록된 것은 1997년의 ‘3년 고개’가 최초이다. 특히, 대학 학기 중에는 일본의 國語교육학과 교수이면서도 한국어 기초 회화반을 개설하여 한국어 교재를 만들어 강의하며, 한국어 수강생들에게 한국 방문을 필수적인 프로그램으로 권유하여 해마다 시행하고 있다 한다.

한국을 자주 방문하는데도, 올 때마다 한국이 좋아 또 오고 싶다면서, 비행기도 한국 국적 항공사만 이용하고, 비행기를 타고 내릴 때 한국 항공사 승무원들이(일본인에겐 일본어, 한국인에겐 한국어로 인사할 때)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주면 자신이 한국 사람으로 보였다면서 기뻐할 정도라고 한다.

지난 (3)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다케쿠니 도모야스 선생은 1949년 일본 고베 출신으로 교토대학 문학부를 졸업. 학생들의 교육에 힘쓰다가 은퇴 후, 한국을 일본에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는 일본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한국에 관련된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의 여러 저서를 집필했다. 특히 ‘어느 한일역사여행-진해의 벚꽃’ 은 경남 진해를 일본인에게 알리기 위하여 집필한 책인데, 이런 인연으로 창원시의 진해근대문화역사보전회가 지난 8월, 초청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우리 놀이인 제기차기를 재일한국인 친구에게 배웠고, 재일 한국인 청년 그룹과 교류하다 부모님의 강한 반대로. 호적만 올리고 한국인 부인을 맞이한 일본인이다.
 
/이광형(서울대학교재외동포교육 자문위원장)
경일시론-이광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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