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과 선생, 교육현장 기로에 서다
스승님과 선생, 교육현장 기로에 서다
  • 경남일보
  • 승인 2019.11.19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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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국 (경남도의회 건설소방위원장)

고등학교 동문 중에 사업을 열심히 하시는 한 선배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그 분의 인생스토리를 듣는 기회가 있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윈 그 선배는 고등학교 시절 가난과 학업이라는 두 가지 벽과 싸우며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야 했다. 남들은 한가지만으로도 힘들어하는데 나는 왜 두 가지 시련으로 살아야하는가 하며 힘겨워할 때 인생의 스승이신 고3 담임 선생님을 만난 것이다. 그 선생님은 선배의 어려운 처지를 알고 자기 집에 숙식시키며 공부를 시켰고 그 덕분에 국내 최고의 대학으로 진학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사업가로 성장했고 잘 나가든 사업이 어려움을 겪는 일이 생겼다고 한다. 그 때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뵈러갔는데 선생님이 조그마한 봉투를 내미시며 “이건 통장이다. 내 퇴직금으로 받은 전부니까, 사업에 보탬이 되라.” 선생님의 통장을 받은 선배는 이를 악물고 열심히 노력해 그 사업을 성공시켰고 선생님께 퇴직금의 다섯 배가 넘는 통장을 돌려드렸다고 한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퇴직금만 받고 나머지는 좋은 일에 쓰라며 돌려주시는데 한사코 말려도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필자는 십여 분간의 침묵 속에 한 분의 스승이 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혼자 되새겼다.

지난달 대구 모중학교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수업도중 엎드려 자는 학생을 깨우자 학생이 이에 반발하며 교실 밖으로 나갈려 했고 이를 저지하는 선생님의 얼굴을 가격하고 넘어진 선생님을 올라타 여러 대를 때려 안면이 함몰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일선 교육현장을 대변하는 극단적인 사건이다. 요즘 교육현장에서는 선생님들이 무척 힘들어한다고 한다. 우리 전통사회에서 제자가 스승을 때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스승을 때린 죄는 아버지, 어머니를 때린 죄에 준하여 벌을 준다 했지만, 역사적으로 부모를 때린 사례는 많아도 스승을 때린 사례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만큼 보다 지엄한 사이였던 것이다. 부모나 스승을 때린 죄는 10년 이상의 유배형(流配刑)이 원칙이었고, 관습법으로는 마을에서 추방됨은 물론이고 그 패륜아가 살던 집을 헐고 터를 파 못을 만들어버림으로써 응징하였다. 심한 경우 부모나 스승을 때린 그 고을의 격을 낮추고 수령(守令)은 벼슬을 내놓고 조정에 가서 대죄를 해야 할 정도의 큰 사건이었다고 한다.

자기 자식만 감싸고 도는 요즘 세태와 달리 예전에는 봄, 가을 산에 가 싸리나무 한 짐을 쪄다 훈장 집에 갖다 드리는데, 명분은 그 싸리 회초리로 자식놈 종아리 자주 때려 사람 만들어 달라는 체벌용 맷감이었다. 한데, 그 많은 싸리나무를 맷감으로 쓸 수 없어서 남은 싸리로 빗자루를 엮어 장날에 내었는데 싸리비는 서당에서 나오는 것이 상식이었고 싸리비 값은 깎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 언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대한민국의 교육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각과 깊은 성찰이 새로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김영란법을 만들어 선생님을 범죄의 객체로 보는 사회적 시각의 문제인지, 선생님 스스로가 노동자로 자처하며 생긴 주체의 문제인지, 아님 자식의 말만 믿는 학부모의 편협된 인식의 문제인지를 이제 논의해서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한다. 학생이든 자식이든 그들은 바로 대한민국의 미래이기 때문에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만 한다.

 
/강민국 (경남도의회 건설소방위원장)
 
강민국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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