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500년 비화가야, 유네스코 유산 지정 기대 크다
[사설] 1500년 비화가야, 유네스코 유산 지정 기대 크다
  • 경남일보
  • 승인 2019.12.01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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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한 차례도 도굴되지 않아 원형이 잘 보존된 창녕 교동과 송현동의 약 1500년 전 비화가야 지배자 무덤 내부가 지난달 28일 오전 처음 공개됐다.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에 있는 무덤 약 250기 가운데 도굴 흔적 없이 나타난 사례는 63호분이 처음이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내부를 조사해 큰 항아리인 대호(大壺)와 유개장경호(有蓋長頸壺·뚜껑이 있고 목이 긴 항아리) 같은 토기를 확인했다. 1500년 넘게 잠들었다가 이번 햇빛을 본 63호분에는 실제로 토기가 가득했다. 땅을 일구거나 논에 물꼬를 틀 때 사용하는 농기구인 살포로 추정되는 철제 유물 2점과 마구(馬具)로 보이는 물건도 모습을 드러냈다.

대형 고총고분은 5세기에 집중적으로 축조된 것으로 창녕 비화가야의 성립과 가야에서 신라로 이행해 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으로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인정될 것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63호분에 대해 “봉토 표면에 점토 덩어리를 바른 흔적이 온전히 남았고, 호석(護石·무덤 둘레에 쌓는 돌)이 노출돼 있다”며 “비화가야인 장송 의례와 고분 축조기술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강조했다. 피장자는 가야 수장층 인물일 가능성이 상당이 크다. 지배자 무덤의 축조기법과 장송의례, 출토유물 등은 가야와 신라의 접경지역에 위치하면서 복잡하고 다양한 문화가 나타나는 비화가야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남쪽 벽면은 붉은색 주칠(朱漆) 흔적이 뚜렷했다. 주칠은 벽사가 목적으로 추정된다.

미지의 제4의 제국 ‘가야’가 지닌 다양성과 협치가 요구되는 시대다. 현재 가야토기의 출토지역을 보면 실제 가야국의 구성 국가들은 10여개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별한 도읍지를 가려내기 어려운 가야는 소위 ‘맹주국’이라는 강국이 없었고, 그 수가 10여개에 이른다. 현재 그 역사적 기록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공식적 멸망은 대가야가 신라에 병합된 562년으로 6세기 중반가량이다. 이번 창녕 비화가야의 1500년 전 잠에서 깨어난 발굴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의 중요한 자료될 것에 기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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