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병균 ‘악성댓글’(2)무한증식하는 지옥
사회적 병균 ‘악성댓글’(2)무한증식하는 지옥
  • 백지영
  • 승인 2019.12.05 1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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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면 건전비판 남이 하면 욕
유튜브 등 악플 경로 다양화 추세
사회인식 변화가 예방 가장 중요
최근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유명 연예인을 비롯한 공인들이 잇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고인이 세상을 등진 이유를 단순화할 순 없겠지만 이들이 생전 인터넷에서 악성 댓글에 시달려왔다는 사실이 조명되면서 인터넷상 괴롭힘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문제는 작성자를 특정하고 관련 법을 적용해 실제 처벌까지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사이버 명예훼손·모욕이 가입 시 실명을 인증해야 하는 국내 포털 사이트 등에서 이뤄졌다면 기사 댓글, 카페나 블로그 게시글·댓글 등을 누가 작성했는지 파악하기는 비교적 수월한 편이다.

반면 일간베스트(일베)나 디시인사이드처럼 가입하지 않고도 댓글을 달 수 있는 사이트, 개인 정보를 수집하지 않는 모바일 게임 등은 피고소인 특정이 쉽지 않다.

IP(인터넷 연결기기 식별 번호) 확인까지는 가능할 수 있지만, IP가 확인돼도 휴대전화로 접속한 경우 작성자 특정이 힘든 경우가 적지 않다. VPN(가상 사설망)을 통한 IP 우회까지 해가며 치밀하게 명예훼손·모욕에 나선 경우라면 더욱 잡기 힘들다.

가장 어려운 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트위터 등 해외에 본사를 둔 사이트에서 벌어지는 경우다. 이들 업체의 본사가 위치한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명예훼손·모욕이 법적 처벌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경찰이 가해자를 특정하기 위해 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하려고 해도 회신이 오지 않고 추적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일부러 이러한 사이트에서만 문제가 되는 표현을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양호경 진주경찰서 사이버팀장은 “5년 전 카카오톡에서 수사 정보를 많이 제공한다고 텔레그램 등으로 사이버 망명 붐이 일었다”며 “이렇게 되면 자신이 안 잡힐 수는 있지만 자신이 피해받았을 때 도움받을 방법 역시 없어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내 업체를 이용하면 경찰이 사건을 접수하고 영장을 발부받아 IP, 전화번호 등을 파악해 볼 수라도 있지만 해외 업체 이용 시 사건 진행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피해자가 자신의 게시글, 영상 등에 악성 댓글을 남기는 누리꾼을 차단할 수는 있지만, 차단당하면 곧장 새로운 계정을 만들어 더 악의적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피해자가 고통을 호소하는 발언이 사이트 내 1대 1 대화창에서 나온 경우라면 아예 ‘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누구나 볼 수 있는 댓글 같은 방식이 아니다 보니 공연성이 없어 처벌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임 채팅창 내 욕설도 처벌이 쉽지 않다.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 수만 따지면 ‘기사 내 악성댓글’보다 사건 수가 더 많다.

경찰은 “최근 온라인 게임 내 자신이 사용하는 캐릭터에게 욕한 것을 자신에 대한 모욕이라 판단하고 사건을 접수하는 시민이 많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경찰이 영장을 청구해도 검찰 단계에서 기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임 내 채팅창에서 특정 캐릭터에게 욕을 했다고 해도, 이 캐릭터를 사용하는 이용자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는 모른 채 한 것이므로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유튜버나 개인방송을 하는 이들이 악성 댓글로 신고하는 경우가 생겨나는 등 경찰에 접수되는 사건 종류가 점차 다양화되는 추세다.

악성댓글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예전에는 온라인상 괴롭힘을 당해도 ‘참는 게 미덕’이라고 여겼던 심리가 적극적인 신고로 변한 부분도 있다.

경찰은 “신고에 대한 인식 자체가 과거와는 확실히 바꼈다. 신고자 중에는 고소를 당해서 조사를 받고 다시 다른 사람을 고소하고 가는 사람도 많다”며 “자기가 쓴 글에 대해선 ‘내 감정 표현’이라면서 조사받고 가고, 자기 글에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에 대해서는 ‘욕’이라며 이중잣대를 적용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근에는 중간에서 합의금 장사를 시도하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다. 변호사가 끼어 있다 보니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다. 경찰은 “학생의 경우 출석해서 조사받게 되면 학생의 경우 부모가 합의금으로 수습하는 게 보통이다. 나쁜 걸 처벌하려는 의도로 시작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본질이 퇴색돼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고 토로했다.

심하면 사람의 생명까지도 앗아가는 무서운 흉기인 악성댓글, 여전히 건전비판과 악성댓글의 경계가 모호한 데다 설령 악성댓글이라도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는 점에서 키보드 전사들은 쉽사리 줄지 않고 있다.

임명진·백지영기자 sunpower@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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