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플러스[233] 회남재·깃대봉
명산 플러스[233] 회남재·깃대봉
  • 최창민
  • 승인 2019.12.12 1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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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이 걸었던 그 길따라 걷는다

쉬엄 쉬엄 산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눈 앞에 쳘쳐지는
평사리 들녘과 섬진강 줄기
선생은 왜…여기서 되돌아 갔을까
 

회남재는 500년 전 남명이 걸었던 길로 유명하다. 산청을 떠난 남명(南冥)조식선생(1501∼1572)은 삼신봉 줄기 낙남정맥을 넘고 청학동을 거쳐 하동으로 향하다 이 재에서 악양과 섬진강을 굽어본 뒤 되돌아갔다. 그래서 한자 ‘돌아올 회’를 써 ‘회남(回南)재’라고 불린다.

지금은 이 자리에 회남정(回南亭)이라는 아담한 정자가 들어서 경치 좋은 악양들을 굽어 볼 수 있도록 돼 있다.

고불고불 산길을 돌고 돌아 회남재에 서면 어느 순간 탁 트인 전망이 나타난다. 멀리 풍요로움의 상징이 된 하동 악양 평사리 들녘과 남으로 빠져나가는 섬진강, 백운산, 형제봉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걷기대회 행사가 열리거나 주말, 삼성궁의 개천대제가 열리는 날이면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고도 차가 적어 다소 밋밋한 트레킹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회남재에서 왼쪽 산줄기를 따라 깃대봉(981m)까지 연장할 수 있다.

오른쪽 쇠통바위와 독바위, 지리산 삼신봉 방향은 산불예방기간이어서 통행할 수 없다는 점은 주의해야한다.

삼성궁에서 회남재까지 6㎞에다 깃대봉까지 1.5㎞이니 왕복은 15㎞에 달한다. 깃대봉까지 6∼7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봉우리가 이어져 한층 역동적인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이 산길을 계속해서 따라 내려가면 칠성봉에 닿고 그곳에서 갈라진 길은 하동 구재봉으로 이어진다.

취재팀은 삼성궁에서 출발해 회남재에 도착한 뒤 더 걸어 깃대봉까지 갔다가 삼성궁으로 돌아왔다. 왕복 15㎞정도인데 회남재 코스가 편안한 길이어서 시간은 그리 많이 걸리지 않았다.

 

▲등산로:청학동 삼성궁→회남재→깃대봉(반환)→회남재→삼성궁 회귀. 16㎞, 휴식포함 5시간 소요.

이 코스 외 삼성궁→회남재→묵계초등학교 청암분교장→삼성궁 회귀 코스도 애용된다. 이 코스는 묵계초등학교 청암분교장에서 삼성궁까지 이동하는 차량이 있어야 가능하다.



▲출발지 삼성궁은 ‘지리산 청학선원 삼성궁’의 이칭.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궁이라는 뜻이다. 도인촌과는 달리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한풀선사를 중심으로 수행자들이 선도를 지키고 수행한다. 민족의 정신문화를 추구해 홍익인간 세계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이 무예와 가락을 수련한다. 주변의 돌을 모아 쌓은 성벽, 솟대, 돌탑 수천 개가 장관이다. 입구에는 50여대의 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이 주차장에서 삼성궁은 뒤편 산너머에 있고, 회남재는 앞 삼성교 건너에 있다. 교량을 건넌 후 만나는 갈림길은 상불재와 불일폭포로 가는 샛길. 회남재 6㎞를 알리는 이정표가 겨울 찬바람에 휘파람소리를 낸다. 길은 톱밥을 깔아 푹신푹신하고 정갈하다.

양 옆으로 비목 고로쇠나무 등 식생이 다양하다. 층층나무로 불리는 거제수나무, 개서어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물푸레나무, 때죽나무, 물갬나무, 당단풍, 비목, 노각나무, 함박꽃나무, 호랑버들, 관목으로는 싸리, 조록싸리, 국수나무, 산딸기, 작살나무, 고추나무 등 극상림에 나타나는 300여종의 수목이 자란다.

바위를 감싸고 끝끝내 땅에 뿌리를 박은 노각나무의 생명력은 앙코르와트 유적을 덮는 반얀트리(뱅골보리수)를 떠올리게한다.

작은 대나무밭도 가로지른다. 해발 750m에 대나무가 자라는 것은 이곳이 양지바른 남녘임을 실감케 하는 대목. 한겨울에 만나는 초록은 반갑기만 하다.

남명이 걸었던 길은 소로였으나 1992년 국유 임도시설로 확장됐다. 당시 길을 내면서 길을 막는 바위를 제거하느라 구멍을 뚫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1970년대 도로를 내고 마을길을 넓힌 이른바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어른들은 “남포 터진다” 며 동네아이들을 피신시켰다. 바위에다 구멍을 낸 뒤 도화선을 연결한 다이너마이트를 넣고 폭발시켰다.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집채 만 한 바위가 갈라지고 파편이 하늘을 날았었다.

가끔가다 지나치는 승용차나 SUV는 감수해야하는 불편함이다. 덜컹거리며 달렸던 시골 버스길을 추억하려는 이들이 찾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벤치가 놓인 쉼터도 나온다. 가을에 열리는 회남재 걷기행사로 인해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서 지자체에서는 화장실, 의자 등 편의시설을 갖춰놓고 있다.

1시간 10분 만에 회남재에 닿는다. 회남정에 드는 햇살이 따뜻하다. 옹기처럼 생긴 악양 들녘의 풍경이 평화롭고 따뜻하다. 이런 풍요를 가능게 한 섬진강은 도도하게 흘러간다. 소설 ‘토지’의 무대 악양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들 옆에 형제봉, 강 건너 백운산이다.

1560년대 이곳을 찾았던 남명의 눈에도 이 풍경이 닿았으리라. 이 풍경이 좋았는지 좋지 않았는지 몰라도 그는 산청으로 돌아갔다.

색소폰과 꽹과리, 징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행위예술가의 연주는 회남재 산하를 꽤 오랫동안 크게 울렸다.

악양면 사무소 가는 큰길을 뒤로 하고 깃대봉으로 올라간다. 한 봉우리를 넘어서면 사람의 키를 능가하는 산죽의 길이다. 곰의 피신처 혹은 먹이가 되는 산죽의 세력이 왕성하다. 댓잎끄트머리가 흔들리는 이유는 앞선 동행산우가 산죽숲을 휘적휘적 걷고 있기 때문. 겨울나목 사이로 독바위, 쇠통바위가 보이고 삼신봉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 너머 지리산 천왕봉도 손에 잡힐 듯 하다. 십 수년 전 겨울 길을 잃고 헤맸던 써레봉 어느 골짜기도 자세히 보일정도로 조망이 좋다.

산줄기를 걸으면서 산을 보고 들을 본다. 곧 나타날 것 같은 깃대봉은 마치 환상의 무지개를 잡기위해 길을 헤매는 몽상가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도 5개 봉우리를 더 올라야 깃대봉이다.

이때 왼쪽 계곡은 청암천이요, 호수는 하동호, 건너다보이는 산줄기는 낙남정맥이다. 오른쪽은 섬진강이다.

회남재와 깃대봉은 6.25전쟁 전후 빨치산의 주요 이동통로이자 활동근거지였다. 국군은 토벌하기위해 안간힘을 썼고 빨치산은 격렬하게 저항했다. 민족사의 아픔이던 시절이 있었다. 주변에 초소 흔적이 있는 것으로 미뤄 깃대봉이라는 이름이 이와 관련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리산과 섬진강, 악양들 멀리 남해까지 보인다.

회남재에 돌아왔을 때까지 행위예술가의 섹스폰 연주는 계속됐다. 자신에게는 만족이고 그만한 사연이 있겠으나 굳이 이 산에까지 와서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반갑지 않았다. 어떤 이에게는 소음이고, 산속 동물들에겐 터전을 위협하는 일이다. 바람소리 산새소리 그리운데…, 취재팀은 회남재에서 묵계초등학교 청암분교장으로 하산하는 길을 뒤로하고 삼성궁으로 회귀했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깃대봉
독바위에 비치는 오후 햇살
돌담
 
돌틈에 자라는 노각나무
마지막 단풍을 떨구고 있는 회남재
대나무숲
화장실
 
회남정
 
 
산죽의 숲
손에 잡힐듯 다가와 있는 천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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