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90)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90)
  • 경남일보
  • 승인 2019.12.19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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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양왕용 교수가 쓴 이경순 시인의 생애-4
이경순은 창선고등학교 인사기록 원부에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듯이 1955년 8월 1일 재단측에 의해 초빙되어 왔다. 경남상고 인사발령부에는 1955년 10월 13일 의원면직으로 퇴직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당시 교사가 아닌 전임강사는 어떤 신분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양왕용이 부산의 중등교원으로 있던 70년대 중반까지 학교장 발령으로 존재하였던 제도였다. 아마 창선중고교 부임 날짜보다 뒤에 의원면직으로 처리 된 까닭은 공립에서 사립으로 옮겼기 때문에 부임후 사직서를 보내어 처리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창선중고교 재단 분규와 시인으로서의 파격적인 행보로 일부 학부형이 문제 삼는 등 학교 사정이 복잡해지자 양왕용이 중학교 3학년 때인 1958년 9월 30일 사임한 후 고향 진주로 가게 되는데 그동안 창선중학교와 개교 초기의 창선고등학교에는 진주에서 많은 교사들이 부임하였다. 1956년 양왕용은 창선중학교에 입학하여 드디어 이경순의 제자가 된다. 이때부터 양왕용은 근 3년동안 교장선생님 이경순 시인의 훈화를 들었는데 훈화는 유창한 편은 아니었으나 의례적인 훈화와는 다른 시적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시인은 교장직을 수행하면서도 한문 과목을 직접 가르쳤고 치과의전을 졸업하신 탓으로 생물 시간에는 간혹 보강을 하였다.

특히 수업 중에 인상이 남는 것은 낭랑한 목소리로 한문을 먼저 읽고 우리를 따라 읽도록 지도하시던 것과 생물 시간에 관절에 대하여 가르치면서 그림을 그려가면서 열정적으로 설명하던 모습이다. 뿐만 아니라 서점과 신문사 지국을 경영하던 양왕용의 선친과 동기 시인은 의기 투합하여 함께 술자리를 자주 하셨으며 집에 종종 초대되곤 하셨다.

어느해 겨울에는 중고교 교사 몇 분과 함께 밤 늦게까지 계시다가 귀가를 할려고 하니 손님들의 신발이 모두 없어져 신발가게에 가서 사다드린 적도 있었다. 또 진주에서 창선증학교로 잠시 전학온 시인의 생질 남학생이 양왕용의 한 학년 아래 있었는데 서로 친하게 되어 양왕용은 사택에도 자주 놀러가 사모님으로부터 사랑도 많이 받았다.

어느해 개교기념 행사 때에는 교직원 팀 대표로 시인께서 출전하셨는데 바지 끝을 양말 속에 넣고 실수를 하실 때마다 온 운동장이 폭소의 도가니가 되었다. 소풍 때에는 사회자의 권유로 그 독특한 목소리로 노래 대신 임진왜란 때의 삼장사의 시를 낭송하시고 해석까지 해주셨다. 양왕용이 중학교 1학년 2학년 어느 시점인가 확실한 기억은 없으나 동기 시인께서 교장인 인연으로 파성 설창수 시인을 초청하여 중고교생 전체를 교실 몇 개를 틔운 강당에 앉히고 문학 강연회를 가졌다.

파성의 열정적이고 해박한 강연에 전고생이 매료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파성 시인의 소개는 당시 교무주임이던 서병일 선생께서 하였다. 양왕용은 맨 앞자리에 앉아 메모를 해가며 열심히 강연을 듣고 막연하나마 시인의 꿈을 키웠다. 그로부터 2년 뒤 동기 시인께서 창선을 떠나게 되자 양왕용의 선친을 비롯한 비교적 문화의식이 있던 면내 유지들은 계속 교장직을 수행해달라고 요청하였다.

동기 시인과 양왕용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동기 시인께서 창선을 떠난지 몇 개월 후 양왕용은 진주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게 된다. 그때에 입학시험을 치기 위하여 머문 곳이 동기 선생의 댁인 진주시 상봉서동 1005번지 3호 길가 방이었다. 그때 에피소드는 오래 전 진주 문예지에서 청탁을 받고 회고한 바 있었지만 아래채 길가 방에 자게 되었는데 길 쪽으로 난 창호지 문에다 모처럼 입학시험을 치기 위하여 사 입었던 교복 바지 저고리를 걸어두고 잠이 들었던 것이다.

뒷날이 합격자 발표날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뒷날 이른 아침에 일어나 보니 도둑이 창호지 문을 칼로 오려내고 교복을 몽땅 가져간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시골에서 모처럼 진주라는 도시로 간 양왕용으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나중에 한 방에서 2년 넘게 하숙하게 되는 진주중학교 3학년이고 진주농림고등학교에 시험을 쳐 합격한 동기 시인의 7촌 조카 이명래군이 나와 한 방에서 잤는데 잠옷 바람이지만 우선 합격자 발표장에 가서 합격의 기쁨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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