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세상은, 길을 나서는 자의 것이다
[경일포럼]세상은, 길을 나서는 자의 것이다
  • 경남일보
  • 승인 2020.01.08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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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호/좋은정책연구원장·前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

먼 길을 나서는 자는 저마다의 사연과 화두를 안고 떠난다. 괴테의 명저 ‘이탈리아 여행’은 “새벽 세시에 카를스바트를 남몰래 빠져나왔다. 안 그랬다간 그들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을 것이기에…”로 시작하고 있다. ‘타들어 갈 듯 한 갈등과 동경’으로 37세의 괴테는 1786년 8월,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야반도주를 감행한다. 이 후 약 20개월간의 이탈리아 ‘그랜드 투어’를 통해 위대한 ‘괴테의 재탄생’을 가져온 것이다. 3개월간 2000㎞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난 후 필자의 특별한 경험을 정리한 책, ‘순례, 세상을 걷다’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드디어, 길을 나선다. 나에게 있어 이 길은 무엇일까. 왜, 나는 머나먼 이국의 순례길을 걷는 걸까….”

2020년 새 해를 맞으면서, 다시 산티아고 순례길의 감동을 소환해 길 위에서 느끼고 배운 것들을 정리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순례길에서 마주한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의 산과 들, 강과 마을, 만났던 수많은 순례자들 모두가 길 위의 스승이었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가장 크게 다가왔던 것은, 길 위에서 찾은 ‘고요’다. 늘 꿈꿨던 고요 속에서 ‘고독과 자유’를 느끼고 체득한 순례길이다.

순례길은 기본적으로 혼자 걷는 길이다. 끝없이 산과 들로 이어진 ‘프랑스 르 퓌 순례길’에서 친구는 오로지 푸른 하늘뿐이다. 또 한없는 ‘스페인 북쪽 해안 순례길’에서는 처연한 바다와 함께 했다. ‘포르투갈 순례길’은 대항해시대를 찾아가는 ‘고독과 그리움’의 길이다. 이 고독한 순례에서 고요를 경험해 본다. 처절한 고독이 내 안의 나를 고요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배움은, 고마움과 그리움을 알게 해준 순례이기도 하다. 순례를 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서 격려와 도움을받았다. 정말 잊을 수도 없는, 참으로 고마운 순례동지들이다. 순례에서 느낀 고마움은,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지난 시절의 고마움까지 되살려 준다. 늘 희생과 사랑으로 함께 하는 가족들, 33년 공직생활에서 동고동락한 동료들,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고향과 학교 친구들…, 끝없는 순례길에서 새삼 그 고마움이 무한의 그리움으로 변하고 있음을 알았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출발의 의미를 알게 해준 순례였다. 사실, 긴 순례를 떠난 것도 하나를 매듭 짖기 위해선지도 모른다.

33년 공직생활의 인생 1막에 대한 매듭이다. 매듭을 확실하게 지어야만 다음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길은 끝없이 이어지기도 하지만 새로운 길이 시작되는 곳도 있다. 어떤 것의 끝은 또 다른 무엇의 시작이기도 하다. 생장이 ‘프랑스 르 퓌 순례길’의 끝이면서 ‘스페인 프랑세스 순례길’이 시작되는 마을인 것처럼 말이다.

이제, 2020년이다. 새 해가 시작되면 다들 새로운 계획도 세우고, 저마다 ‘삶의 화두’를 던져 본다. 그 화두가 행복일 수도 있고, 성장이나 혁신일 수도 있고, 공존과 평화일 수도 있다.

우리들은 뭔가가 불안하고 행복하지 못한 ‘상실과 우울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 것은 지역사회와 국가, 글로벌 사회도 마찬가지다. 사회는 사회대로, 국가는 국가대로 분노하고 있고 서로 싸우고 있다.

새 해에는 새로운 길을 나서보자. 두려워 말고 먼 길을 나서 보자. ‘누구나 한 번은 길을 잃고 한 번은 길을 찾는다.’고 했다. 그 길에서 행복도 찾고, 서로가 공존하는 신뢰와 평화의 사회도 찾아보자. 모름지기 세상은, 길을 나서는 자의 것이다.

 
오동호/좋은정책연구원장·前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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