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493)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493)
  • 경남일보
  • 승인 2020.01.09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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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창선도 출신 김봉군과 양왕용 교수의 문단 이력 읽기(2)
김봉군 교수의 ‘나의 신앙 나의 문학’은 계속된다.

정봉윤 교장 선생님은 원서 쓰기 직전에 당장 서울 갈 차비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가정 형편에 법과대학 등록금과 하숙비는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고 물으셨다. 더욱이 6000명이 응시하여 겨우 10명이 합격하는 사법고시 준비를 뒷받침할 학비와 숙식비를 책임질 사람이 없지 않느냐는 말씀이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어. 교육은 참으로 고귀한 과업이야. 평범한 소년들이 훌륭한 교육자의 감동적인 헌신과 격려로 위대한 인물이 되지. 자칫 하방다리에 빠져 몰락할 제자를 구원하여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하는 사람도 교육자야. 사범대학으로 진학하는 것이 지혜로운 방도라 생각하는데 군의 생각은 어떤가?”

이에 더하여 교장 선생님은 내가 우상화하고 있던 그 ‘앰비션’을 ‘야망’이 아닌 ‘큰뜻’으로 번역해 보라고 하셨다. ‘소년이여 큰 뜻을 품어라’로 풀어보니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그때까지 나는 그 표어가 미국 출신으로 일본 훗카이도 농업학교 교장이었던 클라크의 말인 줄 몰랐다. 또 그 말이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이 생략된 채 우리에게 전파된 줄을 짐작도 못하였다.

나는 교장 선생님 말씀대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과로 진학했다.담임 선생님의 소원대로 사범대학 수석 합격에는 살짝 못미쳤다. 나는 교육자의 큰 뜻을 펴기 위하여 사대 공부를 열심히 하였다. 교육학 분야에는 훌륭한 교수님이 많았다. 윤태림, 정범모, 정원식, 이영덕, 전원중 교수 등에게서 교육자의 소양과 학문을 전수받았다. 국어과 은사님 중에는 애국지사 두 분이 계셨다. 이탁 교수는 일제 강점기에 만주에서 무관학교를 마치고 청산리 싸움에 지휘관으로 참여하여 승전하셨고 독립 운동 중 일경에 체포되어 여러 해 옥고를 치르셨고 또 경성제대 조선어문과 출신인 김형규 교수는 일제가 조선어 말살 정책을 펴자 항의하는 글을 조선일보에 2회에 걸쳐 연재하였다. 전주사범 교유이셨던 선생께서는 즉각 파면당하셨다.

또 하나 서울대 사대 국어과에서 이응백 교수는 같은 과의 대선배님으로서 사표 중의 사표 출천의 스승이셨다. 스승은 교육자의 언어와 행위의 품격 면에서 전범을 보이셨다.

나는 교육학과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하여 수석으로 졸업했다.당연히 국어학, 국문학, 국어교육학의 길을 걷는 것이 순탄한 나의 인생행로였을 텐데 그러지를 못했다. 사대 4학년 2학기 시절 고향 갈 일이 생겼다. 오랜만에 방문한 부모님의 곤궁한 처지와 고향 어른들의 파리한 행색은 참담했다. 게다가 어느 집은 권력의 횡포에 억울한 일을 당히여도 금전과 권력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속수무책으로 손을 놓고 있었다. 내 손을 잡고 “네가 힘 있는 사람이 되어야 우리 고향이 일어설 수 있다.”고 호소하는 고향 사람들의 손을 놓고 상경하면서 나는 오열하며 두 주먹을 부르쥐었다. 전공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 시골 출신 김봉군은 험난한 가시밭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나는 4학년 2학기 말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편입시험을 치렀다. 서울대 학생에게만 응시 자격이 주어지는 이 시험에서 무려 26명이 응시했다. 편입시험이 그렇게 어려운 줄 모르고 다들 당황해 하였다. 영어 독어 시험에서 결판이 났다. 정치학과 학생과 나 두 사람이 합격했다.

학교 강사 일과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충당하면서 나는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공부를 할수록 사법고시 공부는 내게 심한 회의를 불러왔고 마음의 갈등은 심각했다. 1966년 여름 가야산 공부방에서였다. 나는 육법전서에서 사랑 애자가 한 자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법학공부를 하며 틈틈이 읽게 된 성경 말씀이 비로소 내 영성을 깨우는 기적이었다. 고등학교때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고 읽은 명작의 인상적인 장면들도 마음 눈에 선명히 떠올랐다.

톨스토이 ‘부활’에서 카츄샤의 정조를 유린하여 파멸케 한 네플류도프 공작은 어처구니 없게도 그녀를 심판하는 배심원 자리에 앉는다. 호손의 ‘주홍글씨’는 어떤가. 간음의 표지인 주홍색 ‘A’자를 가슴에 달고 심판대에 선 미혼모 헤스터를 신문하는 사람은 그녀와 상간하여 사생아를 출생시킨 장본인 딤즈데일 목사가 아니던가. 대중소설 ‘몽테크리스트 백작’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다. 검찰에 불려온 한 윤락녀가 그녀를 문초하는 검사를 계속 비웃는 장면이 그려져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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