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494)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494)
  • 경남일보
  • 승인 2020.01.1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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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창선도 출신 김봉군과 양왕용 교수의 문단 이력 읽기(3)
김봉군의 해인사에서의 자기 정체성 찾아가기의 한 대목을 지난 회에서 읽었는데 다시 그쯤에서 자신의 기록으로 더듬어 가본다.

나는 이 여러 장면들에 마음을 빼앗긴 채 간음하다 잡힌 여인 이야기가 담긴 요한복음 8장을 펼쳐 몇 번이고 읽었다. 26세 때였다. “저희가 묻기를 마지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 하시고”(요한 8/7) 나는 이 대목에서 심히 울었다. 한 방에서 공부하던 친구가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나는 나의 방을 나와 가야산 숲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생전 처음 누가 누구를 심판할 수 있는가 하는 종교적 고뇌에 휩싸였다.

자기의 오판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한 피의자가 억울하게 죽은 뒤에 진범이 체포되자, 법복을 벗고 종교에 귀의하여 평생을 참회하다가 간 어느 성직자 생각을 했다. 오랜 망설임과 번민의 밤을 지새운 어느날 나는 결단을 내렸다. 열 번 스무번을 읽어 너덜너덜해진 ‘법전’과 많은 법학 서적들을 불태우고 홀연히 산길을 내려왔다.그리하여 내가 지지 않아도 될 쓸데 없는 짐을 지고 악전고투하던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그때서야 절감했다.

물론 나의 이 말은 사회정의를 세우겠노라 노심초사하는 법관, 검사, 변호사들의 노고를 폄훼히려는 것이 아니다. 나의 경우를 두고 하는 이야기이다. 나는 마침내 인생이란 무엇인가, 삶과 역사의 정의란 어떤 것인가를 묻고 또 묻는 문학의 길로 회귀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내 책상머리에는 국어, 영어, 독어, 불어, 철학, 심리학사전에 앞서 성서가 맨 윗자리에 놓이게 되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나는 네가 버리고 오는 로마로 가노라.” 생케비치의 ‘쿠오바디스’ 길이 달라졌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어려서 암송하던 유교경전의 소위 명구들이 성서말씀과 동렬에 놓이는 상대적 진리라는 얼토당토 않은 궤변은 요한복음 14장 6절 말씀만으로도 티끌이 되었다.

김봉군 교수는 ‘학문은 신앙에서 분리되어야 하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소위 학문의 가치중립이란 가능한 것일까, 나는 아니리고 생각한다.문학은 인간이 창작한 것이고 인간은 본질상 가치 지향적인 존재다. 가치 중립이라는 생각 자체가 가치 지향적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문학인이 쓴 모든 창작물에는 그의 사상과 가치관이 표출 또는 잠재되어 있기 마련이다. 기독교문학은 작가의 기독교 의식이 언어 예술적으로 형상화된 것이다.

이쯤에서 필자는 1968년의 김교수 이력에 대해 주목하고자 한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눈 오는 날의 보행’을 응모하여 결선에서 아깝게 선외로 밀렸다. 아마도 동아일보 당선자는 서라벌 예대 출신 마종하였을 것이다. 제목을 보면 신춘문예류에 드는 감각과 서정이라는 기법으로 도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종하의 현란한 수사와 이미지와 대결하여 자웅을 다툰 것이니 김교수가 자기 정체성 찾아가기에 하나의 에폭이 될 성질의 작품을 내었을 듯싶다. 그러나 마종하가 당선되었으니 성찰적 신앙적 깊이의 회심의 카드가 기법 중심의 시를 따돌리기에는 현실의 그물에 걸렸던 것으로 보인다.

필자로서는 김교수가 이 시기 해인사 육법전서를 소각하고 교육과 문학의 자장으로 돌아와 그 입지를 세울 때 그 전회의 공간과 시간이 충전의 공간으로는 부족했던 것이 아닐까 싶지만 오히려 그것이 김교수의 전환점에 일정 부분 역할을 한 것으로 보아 긍정적이라는 판단이다. 그 이후에 쓴 작품이 ‘말씀’이다.

“말씀은 아오지 탄갱에도 있다/히로시마의 기억들을 아프게 되살리는/ 말씀은/ 승리와 죽음의 어털루에서 바람이 된 불멸의 왕래/ 피를 겨냥하는 유황도의 불길/ 비아프라 깡통 조각의 슬픈 되울림/ 1950 내지 1970/ 벤허의 푸른 눈이다/ 십계의 우람한 암괴가 갈라지는 소리다// 산에서 벌판에서 만나는 / 말씀은 / 실향의 피로 지어 입은 누비옷/ 누비옷도 피에 절인 말씀의 형장/ 아아 누구의 집례로 흥성이는 / 욕정의 거리/ 소돔과 고모라의 발치에 누운 대연각 호텔/ 612호 676호 1592호 1636호 / 오오 백기의 남한산/ 1910 방성대곡의/ 칼날이 서는 말씀은/ 솔가지 어우러진 봉화 삼천리// 겟세마네 동산의 /피어린 밤 동산의 불이 탄다.”

이 작품은 개인사, 국가사, 세계사에 드리운 신의 섭리를 말한 것이다. 대연각호텔 대화재 사건이 일어나기 5개월 전에 발표된 문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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