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마음
[기고]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마음
  • 경남일보
  • 승인 2020.01.1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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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봉자(안나) 수녀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원 프랑스 모원 소속
 
남안나봉자


새해에도 하느님의 축복 가득히 받으시고.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한 해가 되시길 빕니다.

저는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소속 수녀로 10년째 프랑스 저희 모원에서 선교중인 수녀입니다. 각 사람은 각자 고유한 영혼의 역사가 있습니다. 오늘 저는 이 지면을 빌어. 한국에서 선교를 하시다 프랑스 저희 수녀원 모원에서 생을 마감하신, 한 수녀님의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수도회는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로 한국 최초의 수녀회 입니다. 샬트르는 프랑스 파리에서 약100㎞ 거리에 있는 도시로. 대성당의 색유리가 아름다워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도시이기도 합니다. 저희 수녀회가 한국에 들어 온 해는 1888년 7월 21일 인천 제물포항이었습니다. 두 분의 프랑스 수녀님이 밀알이 되어, 지금은 한국에서만 1000여명에 이릅니다.

제가 소개 드리고 싶은 수녀님은, 한국에서 선교하셨던 수녀님들 중, 마지막으로 이곳 모원에서 돌아가신 마리벵상 수녀님입니다. 수녀님이 한국 떠난 후 장례미사를 봉헌하게 되었습니다. 장례일을 이틀 앞두고, 갑자기 그분의 관을 태극기로 덮어드리고 싶었습니다. 준비 된 태극기는 없었지만, 대사관에 문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파리 주재 한국 대사관에 전화로 설명하며 태극기를 청했습니다. 통화 한지 하루 만에 관을 싸 안을 수 있는 태극기가 도착했습니다. 퇴장성가로 뽑은 한국 성가는 한국 정서가 물씬 풍기는 ‘아리랑’으로 바꿨습니다.

저는 그분을 보내드리고 허전한 마음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나에게 남긴 것은 무엇이며, 떠난 것은 무엇인가’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그분에게서 받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매사에 ‘감사하시는 모습’이었습니다. 참으로 작은 동작 하나에도 ‘감사’하셨습니다. 휠체어를 밀어 드려도, 침대를 바로 놓아드려도, 수저를 놓아드려도, 물 한 모금 떠 드려도, 반가와서 손을 잡아 드려도, 그냥 아무 말없이 당신 방을 들어서도 ‘MERCI !(감사!)’였습니다. 두 번째로 저에게 기억하도록 하셨던 그분이 상용하시는 일상 용어 중 하나가 ‘QUE FAIS, QUE DIS?!’였습니다. 굳이 한국어로 직역을 하자면 ‘내가 무엇을 하며, 무엇을 말하나?’입니다만 제가 이해 한대로 번역을 하자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말할 수 있겠냐?’는 뜻이 말씀하신 분의 의도에 가깝지 않나 여겨집니다.

당시 저는 그 말씀 속에 백 여 년을 살아오신 그분의 삶이 녹아있음을 느꼈습니다. 살아 갈수록 더 깊게 느끼신 인간의 나약함과, 보잘것 없음, 허망함, 인간의 한계를 느끼시고,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당신 자리로 돌아가시는 겸손한 모습이었습니다. 어쩌면 인간은 자신의 가장 보잘 것 없음을 통해, 자신이 위대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자신의 자리에서 해야 할 일에 성실히 임할 때 참으로 아름답다고 생각됩니다. 그 분의 삶을 회상하며 테살로니카 전서 5장 16절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도 감사하십시오”라는 말씀이 다시 제 마음 안에서 피어 오르며,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작지만 큰 다짐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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