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495)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495)
  • 경남일보
  • 승인 2020.01.22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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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창선도 출신 김봉군과 양왕용 교수의 문단 이력 읽기(4)
김봉군 교수는 1968년 신춘문예에 응모하여 탈락의 체험을 한 뒤에 시 창작의 소강상태를 이룬 반면 1983년에 월간 ‘현대시학’에 평론 <구상론>이 추천되면서 평론 쪽에 창작의 무게를 주게 되었다.

그러나 김봉군의 기독교시는 시쪽에서도 충분히 독특한 칼라를 지니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길갈의 빛>을 그 예로 들어볼 수 있다. ‘길갈’은 팔레스타인 지역 요단강 기슭에 있는 땅을 말한다.

“어둠이 걸어와 마지막 창가에 설 때/ 길갈의 빛은 세상에 사위고 / 심령이 가난한 형제들은/ 주저앉은 울음소리를 다독인다/ 깨어난 아우성들이 푸른 깃발을 흔들어 / 작은 새들도 황금빛 말씀 알갱이들을 줍고/ 백마탄 그리움이 벌판을 가른다/ 하늘 눈물로 씻은 손길들이 모여 / 불멸이 현금을 연주하는 시간/ 아픈 바람살을 헤쳐 온 웃음들의 은은/ 시계가 아직은 팔을 젓는 무한량의 우주/ 잠들지 않는 말씀의 숲속에 길이 난다/ 길갈의 빛은 우주에 찼고/ 말씀 씨앗 움트는 소리/ 기지개를 켠다/ 동쪽으로 걸어간 밤이 돌아보는 / 아침은 늘 지금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화목제를 드리고 기뻐하는 장면을 재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지를 급수 높게 쓰고 있으므로써 관념을 적당히 제거하고 있다. ‘주저앉은 울음소리’, ‘황금빛 말씀 알갱이’, 백마 탄 그리움‘, ’불멸의 현금을 연주하는‘, ’시계가 아직은 팔을 젓는‘, 말씀의 숲속’, ‘씨앗 움트는 소리’, ‘동쪽으로 걸어간 밤’같은 이미지들이 시의 골격을 든든히 받쳐준다. 기독교 신앙이 시 위에 올라 앉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비유와 이미지들이 적당량으로 옷을 입고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시들이 이런 점을 소홀히 하는 예를 보기가 쉽다. 김 교수는 이런 데 매우 예민하게 대응하여 성공적인 기독교 시를 이룩한다.

김 교수의 평론과 논문과 저서는 다양한 분야에 걸친 것이지만 그 핵심은 기독교적 영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박목월, 윤동주, 박두진, 김현승 등에 관한 글인데 가톨릭 구상 시인에 대한 논문과 평론은 김 교수 글이 거의 독보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 교수의 저서 ‘한국현대작가론’(1984), ‘’문학개론‘(1976), ’신문예사조론‘(1994), 박사논문 ’한국소설의 기독교 의식 연구‘(1997), 학술원 우수 저술상 ’현대문학의 쟁점 과제와 문학교육‘(2004), ’독서와 가치관 읽기‘(2005), ’기독교문학 이야기‘(2006) 등이 모두 기독교의 영성을 밑천으로 한 저술이다.

이 중에 ’한국소설의 기독교 의식연구‘는 김동리, 황순원, 신채호, 이광수, 염상섭, 송기동, 백도기, 박영준, 이청준, 김성일의 소설을 기독교 의식에 비추어 심층 분석한 것이다. 김 교수는 이들 저서에서 찰스 다윈의 생물진화론,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을 비판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인간의 짐승스러움, 수성의 폭로를 극단화한 자연주의는 마르크시즘과 함께 진화론에서 파생된 것임을 밝혔다.

또한 프랑스 대혁명이 표면적으로는 프랑스 황실의 억압, 부패, 방종에 맞선 민중 혁명인 것으로 보이나 실인즉 반기독교의 사교집단이 유도한 교묘한 폭동이라는 역사적 이면도 뒤집어 보였다. 모두 기독교 문학의 정신이다. 김 교수는 오래 전에 그의 제자들에게 고백했다. 내가 40세 되기전에 발표한 모든 학문적 담론을 잊어달라고 공개서한을 보낸바 있었다. 용기다.

또 김 교수는 40고개를 넘어서면서 한국인의 무의식적 기층에 무속신앙이 자리해 있고 중층에는 유교 불교 도교 사상이, 상층에는 서양의 자연과학과 기독교 사상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밝혔다. 따라서 우리 한국인의 의식 내지 사상은 샤머니즘적 집단 무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도 했다. 샤머니즘은 어느 사상과도 습합하여 그 본질을 변화시키는 현상을 빚는다는 말도 빠트리지 않았다.

가령 김동리의 <무녀도>나 <을화>는 샤머니즘과 기독교와의 습합현상을 보여주는 문예미학의 변고임을 지적한 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을 위해 건실한 고언임을 자부한다는 것이다. 샤머니즘은 우리 민족에게 창조적 응집력을 발휘케 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반면에 때로 집단 광기로 발전하거나 감정적으로 대립-분열하여 극한적 대결 양상을 보이는 것은 역사마저 퇴행시키는 변고이라 할 것이다. 한민족의 고질적인 질환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여러 문학 담론, 특히 기독교문학론에서 이 점을 매우 자주 집중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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