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진주정신이다]1. 진주정신과 시대정신
[다시 진주정신이다]1. 진주정신과 시대정신
  • 경남일보
  • 승인 2020.01.22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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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규 (진주향당 고문)

<글싣는 순서>

1. 진주정신과 시대정신
2. 진주정신과 전주정신

3. 진주정신을 찾아서
4. 진주정신의 정립과 계승


진주정신의 재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천년 진주역사의 맥(脈)을 잇는 올바른 시대정신, 제대로 된 사회적 가치가 지역사회에 뿌리내려 있는지 자문할 시기에 이르렀다는 의미이다. 과연 진주에 천년 역사를 바탕으로 하는 시대정신(時代精神)과 시대가치(時代價値)가 살아 숨쉬고 있는가.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진주역사에 대한 각성의 측면에서도 그렇고, 진주가 진주인 의미를 찾는 노력에 있어서도 그렇다.

시, 진주정신을 기억하고 떠올려야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진주의 시대정신과 사회적 가치체계를 정립해 진주의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 ‘다시, 진주정신이다’가 경남도청의 부산이전으로 대표되는 진주의 침체기와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혁신도시 정착 등 새로운 도약을 앞두고 있는 진주의 정신적 원동력이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편집자주

역사로 본 진주정신


1. 진주정신과 시대정신

진주정신(晋州情神)은 천 년 진주역사의 속살이 빚어 낸 정신문화(精神文化)의 정수(精髓)이자, ‘시대와 함께 살고, 싸우고, 성찰하고, 증언한 진주의 목소리’로 정의할 수 있다. 이른바 ‘주체(主體)·호의(好義)·평등(平等)’을 바탕으로 하는 진주만의 고유한 정신적 유산이 바로 진주정신인 것이다.

천년 진주 역사의 맥락에서 진주는 ‘주체정신’으로 당당한 주인의식을 지녔고, ‘호의정신’을 바탕으로 불의(不義)에 항거하는 사회정의를 실천했으며, ‘평등정신’으로 지고지엄한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을 사회에 요청했다. 이것이 바로 진주역사의 속살이 빚어낸 진주정신(晋州情神)이자, 진주가 지닌 시대정신(時代精神)의 핵심이다.

진주정신이 가지는 가치는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주체적이고 독자적이며, 자립적이라는데 있다. 일반적으로 정신(情神)은 시간이 지나더라도 초개인적인 원리로서 자기 동일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전제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진주정신이 오랜 세월동안 지역사회에서 전승되고 계승되는 정신문화의 유산이자, 시대정신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진주정신을 이야기함에 있어 꼭 기록하고 싶은 부분은 ‘역사를 통해 진주사람들이 보여준 시대정신(時代精神)이다. ‘올곧은 것은 살아남아 반드시 역사에 기록된다’는 신념 아래 형성된 역사적 동인이 바로 진주사람들이 가진 시대정신이다. 진주정신이 곧 진주사람이 지닌 시대정신인 것이다.

근·현대 역사를 몰비춤함에 있어 일제강점기 ‘경남도청의 부산이전(1925년)’과 ‘대동공업의 이전(1984년)’으로 대표되는 일련의 일들은 진주의 침체기를 예고하는 불행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해방 이후, 격변하는 정치와 경제의 변혁과정을 겪으면서 지역인재들의 역외유출로 인한 인물공동화와 고도의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한 가치관(價値觀)의 혼란은 진주정신의 쇠퇴기를 예고했다.

그럼에도 ‘주체·호의·평등’으로 정의되는 진주정신은 ‘진주사람’에 의해 지역사회 곳곳에서 진주의 역사와 함께 전승되고 있다. 진주가 걷는 걸음마다 진주정신이 그 밑바탕에 있음을 각성하고 진주정신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천년 진주의 역사에서 생성된 진주의 고귀한 정신적 유산인 진주정신은 소멸되지도, 결코 소멸될 수 도 없다. 단지 새로운 시대를 기다릴 뿐이다.

진주역사의 속살, 진주정신

진주정신의 연원(淵源)은 진주역사에 있다. 진주역사의 생성 과정상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서 그 시작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진주정신은 우리나라 민권항쟁사의 기원이 된 1200년(고려 신종 3년) 고려민권항쟁에서 근원을 찾아볼 수 있다. 향리들의 탐학을 견디다 못한 공·사노비들의 민권 회복적인 항쟁과 정방의의 폭력적 반란을 진주의 민중들이 진압한 것이다. 진주정신의 출발점이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의 임진대첩(1592년)과 계사순의(1593년)는 진주인의 주체정신을 드높인 싸움이다. 임진년(1592) 진주대첩의 승리는 임진왜란 3대첩 중의 하나로 진주사민들의 국난극복의 의지를 살펴볼 수 있다. 이듬해인 계사년 제2차 진주성전투는 7만명의 민관군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정신을 몸소 실천했다. 진주정신의 소름돋는 실천의 역사이다.


임진왜란기 진주사람들의 주체정신이 돋보인 의병활동은 진주(晋州)를 중심으로 한 경상우도(慶尙右道) 지역에서 두드러졌다. 전국 의병의 35.1%를 차지한 경상우도의 의병들은 왜구가 곡창지대인 전라도 지역으로 진격하는 것을 저지했을 뿐 아니라, 북상해 있던 적을 고립시킨 것은 물론 당시 와해 상태에 빠진 관군(官軍)이 대열을 재정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진주정신의 시대구현이다.

진주농민항쟁(1862년)은 조선 후기의 민권운동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진주의 전 역사를 관통하고 있는 민중운동의 대표격이다. 진주를 기점으로 일어난 농민항쟁은 1894년 한 단계 발전된 농민운동이라 할 수 있는 동학농민운동으로 이어진다. 진주정신의 역사적 계승이다.

진주동학농민운동(1894년)은 진주에서 봉기한 동학군의 ‘왜적토벌’과 ‘항일구국’ 정신이 엄연히 살아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진주 동학군의 우국충정의 이념은 일제강점기 의병운동과 3·1운동으로 이어지는 구국운동(救國運動)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진주정신의 실현이다.

일제강점기의 의병활동(1896년)은 일제를 몰아내기 위한 지속적인 투쟁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특히 40여명이 넘는 의병장을 중심으로 3백여 차례에 걸친 토왜(討倭) 투쟁을 벌인 점은 국권 회복기 후기의 대한민국 의병사(義兵史)에 빛나는 역사로 기록되고 있다. 진주정신의 엄중한 실천이다.

경남일보의 창간(1909년)이 천년 진주의 역사적 맥락에서 지니는 불변의 가치는 대한민국 지방신문의 선구자이자, 신문역사의 새로운 장(場)을 열었다는 점이다. 국운이 바람 앞의 등불과 같았던 1909년 10월 15일, 대한민국 최초로 ‘간악한 일제의 압제를 이겨내고 한국인이 지방에서 신문사를 설립한 지방신문’이 바로 경남일보인 것이다. 진주정신을 오롯이 담아낸 소중한 그릇이다.

진주의 3·1만세운동(1910년)은 임진대첩과 계사순의의 민족혼을 잇는 진주사람의 민족혼과 항일정신을 대내외에 표방한 의의를 갖고 있다. 당시 신분적으로 멸시와 천대를 받던 기생과 걸인의 독립만세운동 역시 진주정신의 올바른 계승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갖는다.

진주에서 시작된 인권운동인 형평운동(1923년)은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강조하는 반차별운동으로 일제강점기 동안 전국적으로 가장 오랫동안 지속된 사회운동이다. 형평운동으로 인해 진주는 인권 평등 운동의 발상지이자, 메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개천예술제(1949년)는 정부수립의 실질적인 자주독립 1주년을 기리고 예술문화의 발전을 위해 개최된 대한민국 지방종합예술제의 효시이다. 전통예술 경연을 통해 우리의 예술문화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해왔고, 지역 문화 발전에 이바지한 바가 크다.

역사적 사건을 통해 본 진주정신의 줄기는 여기서 끊어진 채,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근·현대를 관통하고 있는 진주정신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더불어 진주정신을 형성하고 있는 진주의 인물과 사회 각 분야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와 접근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진주정신은 진주시민의 힘으로

사실 진주정신에 대한 개념적 정의는 광범위하고 모호하다. 진주정신의 시대적·공간적 개념과 ‘정신(情神)’에 대한 상호인지의 문제가 설명되지 않는 한 진주정신의 개념적 정립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진주정신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문제는 진주정신의 정립 필요성에 대한 근원적 이해와 진주정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목적성을 분명히 하는데 있다. 따라서 진주정신의 정립은 ‘지역사회의 이해와 공감’에 기초해야 한다. 현재 지역사회에 회자되고 있는 진주정신의 구체적 내용에 대한 학술적·이론적 연구가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전주시(全州市)의 경우, 지난 2006년부터 민관학(民官學)이 힘을 합쳐 전주정신(全州情神)을 정립한데 이어 지역사회에 확산시키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주시는 전주정신을 정립하면서 ‘대동·풍류·올곧음·창신’ 등 4가지 정신으로 전주의 역사성과 고유성을 담보했다.

진주정신 역시 진주의 힘으로 정립하고 발전방안까지 도출해 내야 한다. 진주사람의 시대정신이 담긴 진주정신(晋州情神)에 대한 각성(覺醒)이 없고, 진주(晋州)가 진주(晋州)인 의미를 찾지 않는다면 진주의 천년역사는 한 갓 책장 속의 한 권의 책에 불과할 것이다. 천년 역사를 지닌 진주정신의 현대적 계승을 통한 새로운 진주의 시대정신 정립에 진주시민의 힘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황경규 (진주향당 고문)

 

황경규
황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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