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
돌담
  • 경남일보
  • 승인 2020.02.04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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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대 전 공군조종사
 
 

 

입춘(立春)이 지났는데 중국 발 우한 폐렴으로 온나라가 시끄럽다. 입춘은 새해의 시작이자 바야흐로 봄이 온다는 절기다. 유난히 겨울이 따뜻했던지 벌써 돌담 밑 양지바른 곳에 냉이, 꽃다지 등이 수줍은 봄의 색깔로 앙증스러운 꽃망울을 내밀며 봄볕을 탐한다. 바람이 지나가는 성근 돌담 밑이지만 텅 빈 들판보다는 따뜻한 기운이 감도나 보다.

점점 밀려나는 기억 속 돌담은 집과 집, 너와 나의 경계를 나누자는 의미보다 서로의 삶을 인정하기 위한 배려의 구분이었다. 돌담을 사이에 두고 사람의 냄새가 오갔으며, 이웃들 간 소리가 넘나들었고, 가끔 특별한 음식이 생기면 흐뭇한 목소리로 정겨움을 건네주던 나눔의 울타리였다.

하지만 아파트가 밀집한 도심에는 그런 돌담을 찾기 어렵다. 단독주택도 블록벽으로 차단과 막힘의 담뿐이다. 사람 구경 힘든 시골에도 점차 돌담이 무너지고 어그러지며 사라진다.

담장은 조선시대 부나 권력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한양 성내의 고운 황토 꽃 담장은 왕의 권위였고, 명산대찰의 단아한 기와 담장은 산사의 정갈함과 고요한 법신을 상징하는 의미다. 유행가에도 나오는 덕수궁 돌담은 청춘남녀의 추억을 만드는 사랑의 장소였으며 고향 근처 고성 학동마을 돌담은 양반가의 단아함과 담박함을 보여 준다. 시골집 그저 그런 돌담은 생긴 모습 그대로 큰 돌과 작은 돌, 흰 돌과 검은 돌에 알록달록한 돌까지 땅의 생김에 따라 쌓여 집주인의 욕심 없는 소박함을 드러낸다. 담장은 계절에 따라 지나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를 선물한다. 봄날에는 가녀린 들꽃의 바람막이가 되었다가 비 오는 가을날에는 고즈넉함과 쓸쓸함을 가져다주기도 하며, 잔설이 희끗희끗 박혀 있는 겨울 돌담은 해묵은 수채화처럼 푸근함을 선사한다.

오랜만에 고향 길을 걷다가 주인이 떠나 흉물스럽게 변해버린 담장들을 보니 어릴 적 소중했던 추억 하나가 사라지는 것 같아 마음이 허허롭다. 사람들은 이미 떠나버렸지만 돌담 안 어딘가에는 소와 개, 닭 울음소리가 아직 들리는 듯하다. 토끼 먹이를 캔다며 돌담 밑 씀바귀와 냉이를 찾아다니던 기억도 아련하다. 따뜻한 봄이 오면 도심의 삶에 지친 타향살이들, 하루하루 삶이 고달픈 이웃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돌담을 쌓고 정을 나누는 꿈을 꾸며 그런 세상이 만들어지는 날들을 소망해본다. 텅 비어가는 마을의 무너지는 담벼락을 다시 쌓겠다는 약속이나 비전이 없다면 돌담 위에 걸려있는 4월 총선 예비후보들의 요란스런 대(對)국민 공약(公約)은 단지 공약(空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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