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7)지리산등산학교, 한국판 ENSA를 꿈꾸다
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7)지리산등산학교, 한국판 ENSA를 꿈꾸다
  • 경남일보
  • 승인 2020.02.0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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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리산등산학교 동계반 빙벽 훈련 모습
“경남산악연맹이 잘 되는 길은 등산학교를 잘 운영해 젊고 능력 있는 산악인을 양성하는 길밖에 없다.”-이순석 전 경남연맹 회장.

프랑스 국립스키등산학교(ENSA: Ecole de Nationale de Ski et d‘ Alpinisim)와 스위스 체르마트등산학교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 등산학교는 알프스의 중심에 있었고, 히말라야 고산을 정복하기 위해 전문 산악인들을 양성하는 곳으로 선의의 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먼저 웃은 곳은 프랑스 국립스키등산학교였다. 프랑스는 1950년 인류 최초로 안나푸르나 정상에 서면서 8000m 산을 등정했다. 프랑스 초등을 이끈 모리스 엘조그와 루이 라슈날 등 당시 원정에 참여한 대부분 산악인들은 ENSA 출신이었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 국립스키등산학교는 현대 등산 기술과 지식을 전파하는 전문 알피니스트 양성 메카로 부상했다.



알피니즘의 탄생지 알프스로

1970년부터 등산 붐이 일면서 산을 찾는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서울을 중심으로 산악인들은 전국에 있는 명산에서 등산로를 정비하고, 현대적인 등반기술을 연마했다. 산악인들은 1970년 들어 일본 북알프스와 유럽 알프스로 선진화된 등반기술을 익히기 위해 산악인들이 해외로 진출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특히 1969년 2월 설악산 ‘죽음의 계곡’에서 발생한 눈사태로 10명의 산악인이 숨진 사건은 선진 등반기술을 배우기 위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한국산악회는 1971년과 1972년 ‘알프스 훈련 원정대’를 프랑스 국립스키등산학교에 파견했다.

1972년 한국산악회가 파견한 제2차 알프스 훈련원정대 대원으로 참여한 유재원과 차양재는 교육이 끝난 후에도 현지에 남아 등반활동을 했다. 특히 유재원은 1972년부터 1977년까지 5년간 알프스 23개 봉우리를 올랐으며 이 가운데 15개를 단독등반한 한국에서 가장 탁월한 클라이머였다. 그는 1977년 7월 23일 에귀 노아르 드 프트리(Aig. Noire de Peuterey 3779m)를 초등한 후 추락사했다. 그의 시신은 다음날 발견됐으며 샤모니에 있는 산악인의 묘지에 안장됐다. 1971년 한국이 본격적인 8000m 히말라야 등반에 나서면서 고산 등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부산 대륙산악회가 1971년 10월 12~11월 2일 22일간 부산·경남에서 처음으로 일본 북알프스 원정을 다녀오는 등 해외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3. 지리산등산학교 하계반 기념촬영
첫 8000m 희생자…송준행

부산 청봉산악회 송준행 대원(1941~1972)은 1972년 세계 8위봉 마나슬루(8123m) 제2차 원정대에 참가했다. 그는 경남중·고등학교, 부산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1968년 청봉산악회 창립 회원으로 금정산 나비바위, 무명암 리지, 천태산 슬랩을 개척했다. 송준행은 1972년 마나슬루 원정에 참여했지만 안타깝게도 7250m 지점에서 발생한 눈사태로 대원 4명과 셰르파 등 15명이 숨졌다. 그는 부산과 경남 산악인 가운데 최초 8000m 도전에 나섰지만 히말라야에서 첫 해외 원정 희생자가 되기도 했다. 청봉산악회는 부산에서 최초로 등산학교(1974~1977년)를 개설해 젊은 전문 산악인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초빙 강사 체제…젊은 산악인을 양성하라

경남연맹은 1980년 5월 부산경남산악연맹으로부터 독립한 후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차세대 산악인 양성이었다. 갓 출범한 경남연맹으로서는 등산학교를 개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차선책으로 경남연맹은 젊은 산악인들에게 서울 한국등산학교와 부산등산학교에 입교할 수 있도록 경비를 지원하고 자체적으로 등산 교육을 실시했다. 1980년 겨울 지리산 백무동에서 동계반 교육을 실시했는데 참가자가 66명에 달할 정도로 열기가 높았다. 가장 큰 문제는 경비와 강사였다. 이순석 회장과 뜻있는 산악인들이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경비는 충당했지만 강사는 자체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경남연맹은 서울과 대구, 부산, 광주의 유명한 산악인들을 강사로 초빙했다. 대표적인 강사는 부산적십자사 등산학교 최일범 교장, 대구등산학교 임문현 교감, 한국등산학교 최창민 강사, 전남학생산악연맹 박명선 부회장·최창돈·정상모씨, 그리고 대구등산학교 차재우 강사 등이다. 이와 함께 소질 있는 산악인들을 선발해 한국등산학교에 보내고, 교육을 마친 산악인들을 조교로 활용했다. 몇 년간 초빙 강사 체제를 유지하면서 등산학교 졸업생들로 강사와 조교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자 등산학교 개교를 적극적으로 검토했다.

 
(본판용) 지리산등산학교 졸업 기념사진(두번째줄 가운데 이순석 당시 경남연맹 회장)
1984년 지리산등산학교 개교

경남연맹은 4~5년간의 등산학교 운영 기반을 토대로 1984년 12월 27일 설립 취지문 발표와 함께 ‘지리산등산학교’를 개교했다. 경남등산학교가 아닌 지리산등산학교로 명명하게 된 것은 경남 산악인들의 기상을 심어주는 정신적인 모산(母山)이 바로 지리산이었기 때문이다.

지리산등산학교 취지문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취지문에는 “우리는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여 동·하계 양 교육을 우리의 기상인 지리산에서 실시하며 산악인문(山岳人文)과 자연 사상인 人本主義의 정신적 학술교육과 육체의 물리적 세계인 등반에 필요한 기술교육을 터득하는 실기교육을 병행으로 산악인의 자질 향상과 체력 연마로서 건실한 산악인상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지리산등산학교 설립의 근본 취지로 삼는 바이다”라고 개교 목적을 분명히 밝혔다.

지리산등산학교 초대교장은 이순석 회장, 교감은 이찬영, 운영위원 김장배, 신대진, 정연길, 안승균, 배정갑, 이장환, 권수용, 하병석, 정영환, 정규화, 정종만, 김근두, 정도현, 이병열, 이이룡, 문호중, 장추남이었다.

 
1982년 한국등산학교를 수료하고 1984년 지리산등산학교 설립 회원으로 참여한 최연명은 제1기 하계반으로 입교한 김경희씨를 만나 결혼까지 골인했다. 사진은 최연명.김경희 부부
이론·실기, 산악인의 정신까지 배우다

지리산등산학교는 1984년 12월 29일부터 1985년 1월 3일까지 엿새간 지리산에서 제1기 동계반 55명을 대상으로 지리산등산학교 입교식을 개최했다. 입교생들은 이론과 실기를 병행하며 장비사용법, 매듭법, 확보법, 빙설벽론 그리고 암벽과 빙벽 등 철저한 실기 위주로 교육을 받았다. 동계반은 지리산의 깊은 골짜기를 누비며 러셀훈련과 무거운 배낭을 메고 체력을 키우는 하중훈련 등 실전과 같은 고강도 교육을 이수했다. 제1기 동계반에 입교한 55명은 전원 동계반 과정을 수료하며 이론과 실기를 갖춘 젊은 산악인으로 거듭났다. 제1기 하계반은 1985년 7월 31~8월 4일 와룡산에서 37명이 입교해 기상학, 등산사, 등반개론 등 이론강의와 장비사용법, 암벽등반, 조난 구조 등의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

경남산악연맹 제10대(1999~2001년) 회장을 역임한 이찬영 전 경남산악연맹 회장은 “‘지리산등산학교를 졸업하면 산에 대한 정신과 태도가 달라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부심이 대단했다”면서 “지리산등산학교 개교 후 젊은 산악인들을 많이 배출했으며 히말라야 중흥기를 맞은 1990년대 한국산악계를 이끈 사람들은 경남의 산악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본판용)제1회 지리산등산학교 동계반 수료식 모습
2019년까지 졸업생 322명, 수료생 1095명

지리산등산학교는 하계반과 동계반 두 과정을 모두 마치고 200시간 강의를 들은 입교생에게만 졸업장을 주는 독특한 졸업제도를 갖고 있었다. 등산학교에 입교하면 졸업할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으로는 지리산등산학교 문을 쉽게 두드릴 수 없도록 원칙을 세웠다. 이 원칙은 개교 때부터 지금도 변함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동계·하계를 수료한 제1기생들은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경남의 히말라야 등반에서 직접 등반을 나서거나 후배들을 양성해 해외 원정에서 굵직굵직한 등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88년 눕체 동계 세계 초등과 1992년 낭가파르바트 한국 초등과 브로드피크 대원 가운데 대부분이 지리산등학교 출신이다. 1994년 안나푸르나 남벽 한국 초등의 경우 14명의 대원 모두가 지리산등산학교 졸업생들로 구성되기도 했다. 배현철, 강덕문, 최연명, 정갑진, 오세철, 홍재기, 임영택, 임화곤, 최부훈, 조성수, 이수호, 임종범, 윤치원 등 초기 등산학교 출신들이 지리산 등산학교 강사나 조교로 나서 후진 양성에 크게 기여했다. 1984년 12월 제1기 동계반을 시작으로 2019년 말까지 34기 동계·하계반에 총 1147명이 입교해 수료생은 1095명, 졸업생 322명을 배출하는 등 인재 양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최점석 전 경남연맹회장(9대 1996~1999)은 “198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경남산악연맹이 히말라야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친 것은 지리산등산학교가 30년 넘게 변하지 않는 이 원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개교 초기에 많은 강사와 조교들은 보수도 없었다. 교육 기간 식비 일부가 지원의 전부였지만 그들은 자긍심 하나로 열심히 했다. 젊고 유능한 산악인들을 배출하기 위한 이들의 눈물겨운 노력은 대한민국을 산악 강국으로 부상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명환 경남산악연맹 부회장·경남과학교육원 홍보팀장



 
최창돈 대장(오른쪽)은 1971년 마나슬루 원정에 참여한 호남을 대표하는 산악인이다. 그는 경남산악연맹 지리산등산학교 개교 초창기 강사로 나서 경남 산악인 양성에 크게 기여했다. 사진은 지난 2월 2일 전남 순천에서 필자와 찍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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