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진주정신이다]4. 진주정신 정립과 계승
[다시 진주정신이다]4. 진주정신 정립과 계승
  • 경남일보
  • 승인 2020.02.11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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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규 (진주향당 고문)
진주정신의 정립과 계승을 위해서는 ‘왜 진주정신을 정립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진주정신의 정립으로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에 대한 대답도 준비해야 한다. 진주정신 정립의 명확한 목적성과 활용성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진주정신의 계승으로 이어지기는 커녕 자칫 공허한 담론에 그쳐 한순간에 폐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역사가 굽이치는 진주 남강과 호국의 얼이 서린 진주성 전경.
진주의 도약과 정체
진주는 ‘조선 인재의 절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절반은 진주에 있다(朝鮮人才半在嶺南 嶺南人才半在晋州)’고 할 만큼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지역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진주가 배출한 인물들은 한결 같이 한 시대를 대표하거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인재로 자랑스런 진주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해왔다.

역사 이래로 걸출한 인재를 배출한 진주는 지방행정과 경제의 중심지로 기능했다. 진주가 고종 33년(1896) 경상도가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로 분리되면서 생긴 최초의 경상남도 도청의 소재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일제는 1924년 12월 7일 총독부령 제76호에 의거, 1925년 4월 1일 경남도청의 부산이전을 감행한다. 당시 도청 이전의 명분은 ‘교통불편, 통치상의 어려움, 총독의 현안’이라는 이유였다. 진주시민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진주는 29년간에 걸친 ‘진주시대’를 마감하게 된다. 경남도청의 부산 이전은 정치(행정)·경제의 중심으로 기능했던 경남 수부도시로서의 존재감 상실을 의미했다.

부산이 직할시로 승격된 1963년부터 경남도청 진주환수운동이 시작됐다. 경남도청 환수운동은 이전의 경남도청 부산이전 반대운동보다 극렬했다. 하지만 진주시민들의 간절한 염원에도 불구하고 경남도청 환수운동은 빛을 보지 못했다. 경남도청은 30년 동안 부산에 더부살이를 하다가 결국 창원에 둥지를 틀게 된다. 이로 인해 진주는 새로운 도약의 기틀을 마련하지 못하고, 더욱 정체의 늪으로 빠져들게 된다.

진주의 미래이자, 진주와 서부경남의 경제핵심으로 자리했던 대동공업사의 대구 이전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대동공업사는 진주경제의 핵심이자, 진주와 서부경남의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기업이었기에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진주시민들은 ‘대동공업 진주유치대책협의회’를 결성하고 20만명의 진주시민들이 이전반대 운동에 서명하는 등 결사반대운동을 추진했다. 진주시민들의 격렬한 반대운동에 ‘대동공업은 이전하지 않습니다’라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꼬리를 내리는 듯 했던 대동공업은 연차적으로 대구에 각종 공장을 설립한 뒤, 1987년 진주에 남아있던 판금공장과 본사를 이전함으로써 영원히 진주를 떠나고 말았다.

5도(盜) 10적(賊)의 잔영과 패배주의의 극복
진주는 경남도청의 부산이전과 도청환수운동의 좌절, 그리고 대동공업사의 대구 이전으로 이어지는 연속된 불행한 과거를 극복하는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더불어 정부의 각종 개발사업에서 소외되면서 정체와 낙후를 거듭한 것은 물론 진주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공적·사적 기관들의 미래를 결정짓는 타인의 일방적인 행위에 대해 너무 쉽게 인정하고, 때로는 침묵하는 정신적 피폐함을 연속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특히 대동공업의 대구 이전과 진주의 도시발전 과정에서 회자되었던 이른바 진주의 ‘5도(盜) 10적(賊) 이야기’는 당시 진주의 정신적 피폐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당시 진주사람들은 5도10적에 대해 ‘매국노가 나라를 팔아 자신의 배를 불렸듯이, 진주를 팔아 자신의 잇속을 챙긴 모리배’로 정의했다.

‘주체·호의·평등’이라는 천년 진주의 시대정신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시비(是非)보다는 이익과 손해만 따져 묻는 이해(利害)만 철저히 가리는 정신문화의 피폐만이 진주를 뒤덮은 것이다. 진주의 발전을 저해했던 5도(盜) 10적(賊)의 발호와 함께 진주에 드리워진 패배주의 잔영은 오랫동안 진주의 발전을 더디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했고, 극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새로운 도약과 시대정신의 정립
경남 진주혁신도시는 진주의 새로운 도약의 출발점이 되었다. 당시 언론에서는 경남 진주혁신도시 선정을 두고 ‘무려 100년만에 부흥의 나래를 펼치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진주는 경남 진주혁신도시의 정착과 함께 새로운 도약의 시대를 바야흐로 맞이하고 있다. 진주가 1896년 경남도청의 소재지가 된 이래, 불행했던 과거사를 지워버리고 진주의 위상을 정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것이다.

경남진주혁신도시의 성공적인 정착은 실제로 진주의 오랜 병폐였던 패배주의의 극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과거 경남도청 소재지로서 가졌던 것 이상의 파급효과를 얻고 있는 것이다. 더욱 반가운 것은 경남도청 부산이전에서 시작된 상실감을 극복하고 경남의 새로운 중심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부여된 점이다.

이러한 진주시민들의 자신감은 각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진주시민들의 열망이 이루어낸 남부내륙고속철도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에 이은 조기착공과 진주의 미래산업의 동력이 될 항공산업 국가산업단지 조성 등 각종 대형사업들의 추진에서 진주의 새로운 도약과 비상을 예측할 수 있다. 더불어 정치(행정)·경제·사회·문화·예술 등 각 분야별로 차근차근 진행되는 진주의 미래를 밝혀줄 사업들은 조만간 진주가 경남의 수부도시로 재부상하는 원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진주정신을 정립해야 한다. 천년 진주의 역사속에서 형성된 고귀한 유산인 진주정신의 정립이 진주의 새로운 도시전략 개념이자 재도약의 바로미터가 되어야만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과거의 아픔을 거울 삼아 진주의 발전을 저해했던 모든 것들에 대해 ‘과거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침묵은, 잘못에 대한 암묵적 동의이며 공범이 된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의 기반도 튼튼히 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진주의 재도약과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 진주정신 정립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진주의 새로운 성장거점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는 경남진주혁신도시 전경.
진주정신과 도시전략
진주정신의 정립은 단 시일내에 정립되기 어렵다. 진주의 주인인 진주시민의 공식적인 동의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몇몇의 주장에 의해 결정되어서도 안된다. 진주정신 정립을 위해서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규명의 과정 역시 필요하다.

따라서 진주정신 정립에 있어 일차적인 작업은 ‘진주정신은 무엇인가’에 대한 규명이다. 그리고 진주정신 정립과 계승을 위해 민·관·학·연이 중심이 된 ‘진주정신정립위원회’의 운영이 반드시 필요하다. 진주정신정립위원회는 천년 진주를 관통하는 진주정신의 사상적 토대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와 심포지엄, 공청회 등의 개최는 물론 진주 사회 각 분야 확산을 위한 방안까지도 마련해야 한다.

진주정신은 시대에 따라 재정립될 수 있다. 기존에 정의된 개념이 있다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폐기하거나 수정하고 새로운 진주정신을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까지 일반적으로 진주정신으로 정의된 ‘주체·호의·평등’만 고집하기 보다는,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진주정신의 맥(脈)이 있다면 마땅히 함께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더불어 가능하다면 진주정신 정립 단계에만 머물지 않고 진주의 새로운 도시전략 개념으로의 활용방안까지도 모색되어야 한다. 최근 추진되고 있는 도시재생사업에 진주정신을 밑바탕에 두는 것도 새로운 진주의 도시전략 방안의 하나가 될 것이다.

진주정신의 계승과 선포
진주정신의 정립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진주정신의 계승이다. 진주정신의 계승을 위해서는 진주의 정신문화를 포괄하는 전문연구기관의 설립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동안 지역사회에서는 진주정신전승관(晋州精神傳承館) 등과 같은 진주정신을 계승하는 기관설립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다. 지금 진주에 올바른 시대정신과 제대로 된 시대가치를 정립하고 홍보하고 계승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진주지역의 민간단체나 대학 등 연구기관들이 앞장서서 진주정신에 대한 연구 노력을 해준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설령 진주정신을 정립한다 할지라도 시민들에게 파급시키지 못한다면 그 의미는 퇴색될 수 밖에 없다. 시민이 주인되는 진주정신이야말로 진정한 진주정신의 발로가 되기 때문이다. 인근 전주시(全州市)의 경우, 전주정신의 정립에 그치지 않고 행정과 민간단체들이 주축이 되어 전주시민들에게 홍보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사업들을 통해 확산시키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진주정신의 계승을 위한 첫 발걸음은 진주정신의 선포이다. 진주정신의 선포가 갖는 선언적 의미는 진주정신 정립의 목적성과 활용성을 담보하는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이는 진주시민들의 힘으로 정립한 진주정신을 진주시민들의 새로운 시대정신이자 도시전략으로 정하는 약속이자, 새로운 시대가치를 지역사회에 정착시키는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진주정신(晋州精神)을 21세기 새로운 도약을 앞둔 진주의 새로운 시대가치(時代價値)로 확립하는 일은 의미있는 일이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더불어 지역사회에 회자되던 진주정신을 진주의 아젠다로 설정하고, 공식 논의 테이블에 올려놓는 일 또한 한 개인의 객기만으로 성사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주정신의 정립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제기하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새로운 도약을 앞두고 있는 진주를 견인하는 진주정신의 필요성’에 있었다. 진주정신(晋州精神)이 바탕이 되지 않는 지역발전이 어쩌면 먼 훗날 과거 진주가 겪었던 정체와 소외를 되풀이 할 수도 있다는 괜한 우려도 그 이유 중의 하나였다. 진주정신 정립을 위한 지역의 활발한 논의가 있기를 기대한다.
황경규
황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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