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무전(無田) 최규진 회장 영전에
[특별기고]무전(無田) 최규진 회장 영전에
  • 경남일보
  • 승인 2020.02.20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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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영 (진주문화관광해설사)
회장님! 해가 바뀌고 또 편찮으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번 찾아봬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불민한 탓에 차일피일하다가 이승과 저승의 아득한 다리를 사이에 두고 뒤늦게 불러봅니다만 이승의 목소리가 들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요,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이라고 하였습니다. 삶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흩어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만 정녕 인생길이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건지 그 아득한 행로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슬픔도 기쁨도 끝내는 다 인간사(人間事)이며, 뜬구름은 말없이 왔다가 자유로이 흘러갈 따름이기에, 이승에 두고 가시는 여든여섯 긴 세월은 회장님께서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던 남강물과 더불어 길이 흐를 것입니다.

회장님께서는 나라를 잃기도 하고 나라가 갈라지기도 한 어둡고 암울하였던 시대 잠시 떠났던 대학 시절을 빼고는 일찍이 가정과 가업을 일으켜 20세기 험한 세파를 노(櫓) 저으며 한평생 진주를 떠나지 않은 ‘진주 터줏대감’으로서 진주 사랑을 솔선하셨습니다. 손수 일으킨 영남레미콘을 비롯 정암산업, 정암레미콘 두성식품 등 기업도 모두 진주에 두었으며, 슬하의 3남 1녀도 보기 드물게 부자자효(父慈子孝)하며 진주에 터잡아 살도록 하실 정도로 진주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하셨기에 진주상공회의소 회장으로 계실 때는 지역 발전을 위해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진주-대전 간 국토 내륙 고속도로 건설을 비롯하여 지역 경제발전에 대한 각종 대정부 건의 활동을 통해 이를 적극 반영 실현시켰으며, 특별 시책으로 메마르게만 보이는 공단 종사자들의 정서함양을 위한 공단문화사업도 돋보였습니다. 특히 공단문화 사업은 문학, 그림, 서예, 사진, 독서, 농악 등의 강좌와 동아리 활동, 그리고 발표와 전시를 통해 시상하며 공단 종사자들의 문화 예술활동을 적극 지원한 결과 그때 참여했던 장르를 통해 지금도 활동을 펴고 있는 이가 적지 않아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어찌 이뿐이겠습니까. 하나도 어렵고 힘든 법인데 각급 지역 사회 문화봉사단체에 참여하시면서 이끄시고 후원하시기를 마다하지 않으셨고, 지역 인재 양성을 위해 대학발전기금 기탁과 각종 후원, 문화예술인과 단체에 대한 후원, 지역에서 펼쳐진 크고 작은 각종 행사 지원 등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도움과 후원 그리고 성원을 아끼지 않으시며, 특히 문화재 수집가로서 남다른 안목을 가지신 삶을 사셨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여러 삶을 사셨으니 망백(望百)이 시샘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회장님께서는 특히 우리 문화재에 대한 유다른 애정을 가지시고 오랜 세월 문화재를 수집해오시면서 ‘도기 바퀴장식 뿔잔’(보물제637호)과 ‘선전관청계회도’ 등 귀중한 소장품을 국립 진주박물관에 기증하신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뜻하지 않은 분실로 한때 실의에 차기도 하셨으나 그동안 꾸준히 수집해 아끼고 아끼던 소장품 전시 수장을 위해 심혈을 쏟아 세운 기념관 개관을 눈앞에 두고 유명(幽明)을 달리하시어 참으로 아쉽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또한 한국차인연합회의 태동인 진주차인회 창립 멤버로 촉석루에서 제정한 제40회 ‘차의 날’의 특별한 기념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욱이 회장님 특유의 멋과 흥, 더불어 풍류에는 명주가 곁들여져 좌중을 즐겁게 하셨는데 가끔 애창하신 ‘토요일 밤에’와 진주를 소재로 한 노래들이 귀에 쟁쟁합니다. 조금은 두텁게 부르시며 호탕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눈에 서언 합니다만, 다시는 그 웃음과 그 목소리 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저려옵니다. 그토록 사랑하시던 진주를 뒤로 하고 먼 길 오르시는 회장님을 부여잡지 못하고 남아있는 사람들의 회한이야 오죽하겠습니까만, 험한 세파 저으시던 노도 내려놓으시고 먼 길 재촉하던 병환도 내려놓으시고 부디 편히 쉬십시오. 홀로 가시는 길이 외롭겠습니다만, 회장님께서 남겨 놓으신 유업과 유지는 남은 사람들로 하여금 남강에 여울지며 길이 흐를 것입니다.

영세토록 편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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