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매화 향기 속에서
[경일춘추]매화 향기 속에서
  • 경남일보
  • 승인 2020.02.25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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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대 (수필가)

 

오래전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입·퇴원을 되풀이하던 프로방스 아를(Alres)의 생 레미 정신병원에 들린 적이 있다. 고흐기념관이자 전시관으로 변해있는 하얀색 건물은 삶과 정신적 고통에 몸부림치던 화가의 영혼이 느껴져 마음이 한없이 경건해지면서 무거워졌다. 기념관 화단에는 애플민트 등 허브가 한가득 피어 삶에 힘겨워하던 화가를 추념하고 있었다.

서양에서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봄이 오면 맨 먼저 피는 꽃을 아몬드라고 생각한다. 프랑스 남부지역은 지중해 기후라서 우리나라 매화처럼 이른 봄에 아몬드 꽃이 핀다. 아몬드는 프랑스어다. 우리나라에도 수입되어 널리 즐기고 있는 아몬드는 원래 아시아가 원산지인 장미과 과일이다. 고흐가 동생이 득남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새 생명에게 준 마지막 꽃 그림이 ‘꽃피는 아몬드 나무’였다는데 죽음과 탄생, 그리고 꽃을 하나의 캠퍼스에 담은 것만으로도 의미심장하다.

겨울을 견뎌내고 이른 봄에 꽃망울을 터트리는 봄꽃은 생명이자 환희다. 절망적인 삶을 이어가며 암울하고 힘든 시간 속에서도 태어난 조카로부터 새 생명과 희망을 느꼈음이었을까. 우리 옛 선조들이 추운 겨울을 이기고 피는 매화를 사랑했듯 고흐도 가난과 정신질환에 시달리며 자기가 가장 아꼈던 동생 아들을 위해 검은색이나 노란색 위주가 아닌 밝은 색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분홍색과 흰색 꽃이 핀 아몬드 꽃그림을 그린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계절변화와 해의 길이는 인간의식에 선악과 고통의 크기로 작용했다. 겨울은 암흑이자 절망인 반면 봄은 빛이자 희망이고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이른 봄에 피어나는 꽃들은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삭풍이 헐벗은 가지 끝을 쉼 없이 두드려도 계절의 변화와 땅의 기운이 바뀜을 느끼며 매화는 꽃을 피운다. 지조(志操)있는 선비들은 이런 매화를 꽃으로 보기보다 자신의 신념이나 정치적 동반자로까지 생각했으며 매화를 청객(淸客)이라고도 불렀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전국 확산으로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남녘에는 이미 매화가 한창이고 햇살 좋은 바닷가에는 스멀스멀 뭍으로 오르는 훈풍에 꽃비가 날리기도 할 것이다. 사람들은 호주머니 깊숙이 손을 집어넣고 마스크를 한 채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치지만 이 집 저 울타리에도 매화 꽃망울이 터진다. 도심공해 속 매화 향은 은은하고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신종 바이러스 공포로 봄 같지 않게 봄을 보내긴 아쉬우나 매화 향기를 맡으며 여러 상념을 가라앉힌다. 갈등과 분열로 힘들었던 시간이 지났으니 매화가 만개하는 따뜻한 봄날에는 새로운 생기(生氣)와 유쾌한 변화가 넘쳐나길 기대해본다.

이덕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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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먼당 2020-02-26 08:42:05
매화 향기 가득한
작가님 글을 보니
코로나 공포가 조금 사라진듯
생기가 도네요

좋은 글
감사하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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