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를 묻고 기대어 살기
안부를 묻고 기대어 살기
  • 경남일보
  • 승인 2020.03.05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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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숙 (어린이도서연구회회원)

 

방학을 한지 어언 두 달이 지났건만 개학일이 묘연하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인해 불가피하게 한 주 연기됐던 방학이다. 개학을 눈앞에 두고 연이어 속보가 전해지면서 또다시 길고도 긴 방학이 이어질 태세다. 어쩌면 추가 2주가 아닌 기약 없이….

얼마 전 남동생은 부모님의 혈압 당뇨약을 타다 드리고(한 달에 한 번 자식들이 번갈아 하는 일인데 동생은 처음이다), 마스크와 과일과 비타민을 알뜰하게도 챙겼다. 게다가 안부전화를 핑계로 호언장담을 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가족여행을 가잔다. 생일엔 랍스터를 쏘겠단다. 가족들에게 그간의 안부를 묻고 가족애를 표현하는 동생만의 ‘통 큰’ 방식이다.

삶은 ‘안부묻기’이고 ‘기대살기’가 아닐까? 한 가닥 희망을 담은 기약(期約)을 서로가 서로에게 충분히 남발하는 일이 삶인 것이다. 매순간 우리는 시간을 정하고 약속을 한다. 끊임없이 서로의 안색을 살피고 안부를 묻는다.

정현종 시인은 노래한다. “생명은 그래요./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우리 또한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지요./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라고. 나는 화답한다. “우리는 ‘비스듬히’가 아닐까? 아니, ‘비스듬히’가 맞다”라고.

집 앞 영천강변을 따라 잠시 걷다가 영천교를 지나 따스하리공원 입구로 오르는 계단길을 오른다. 잘 조성된 원목데크를 따라 걸으며 익룡박물관과 대나무밭을 지나니 숲이 끝나는 곳에 작은 쉼터가 보인다. 잠시 숨을 고르고 맞은편 길을 건너 영천강 둔치로 들어섰다. 에나교 나래교 문산교를 지나 어느새 공설운동장 앞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그야말로 한가하고 여유롭다. 강 건너편엔 백로 한 마리가 고독하고 멋스럽게 서 있고, 강 위에는 물새 몇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자맥질 중이다. 등 뒤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이 말없이 함께 걷는 벗처럼 고맙다. 머릿속이 말개지니 발걸음조차 가볍다.

삶은 여행이라고도 하고 인간을 호모비아토르(여행하는 인간)라고도 한다. 인간이 걷고 여행을 하는 이유가 인간의 유전자 속에 선천적으로 내재된 어떤 것 때문이든, 또 다른 이유 때문이든 꽤 그럴싸한 설득력이 있는 명제다. 어쩌면 삶은 여행일지도~. 이왕이면 그저 그런(뻔한?) 여행이 아닌 펀(fun)한 여행이면 좋겠다. 서로가 서로에게 ‘안부를 묻고 기대어 사는 여행’이면 좋겠다.

최명숙/어린이도서연구회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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