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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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0.03.1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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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환 (하동주민공정여행놀루와(협)대표)
조문환

 

며칠 전 까지만 해도 미처 몰랐다. 어릴 적 동네 누님들이 털실로 짜준 성근 입마개가 그렇게 귀한 것인 줄을. 연애초년시절에 아내가 처음 선물한 입마개가 그렇게 쉽게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서툰 뜨개질 솜씨로 짠 입마개 하나로 그 해 겨울은 뜨거웠다. 아직 서양문물이 덜 들어왔을 당시에 마스크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입마개’라 불렀다.

뜨개질로 짠 입마개는 얼굴을 한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니 시원한 바람은 곧잘 입으로, 코로 들어와 숨 쉬는데 어려움이 전혀 없었다. 찬 기운과 뜨거운 기운이 교차하는 입마개 겉에는 이슬이 송골송골 맺혔다. 단 몇 분조차 숨쉬기 어려운 조밀한 극세사 마스크가 숨통을 틀어막는다. 사랑과 애정의 징표로 뜨개질하고 선물했던, 그 징표로 끼고 다녔던 입마개가 마스크로 변신하여 사람들의 숨을 조인다. 겨울이 아닌 이 ‘찬란한’ 봄에 말이다. 그래서인지 엘리엇은 잔인한 4월이라고 내뱉었다. 찬란한 봄에게 잔인한 4월이라니. 마지못해 팬데믹을 선언했다. 세상과 강대국 눈치 보다가 버스 다 떠난 뒤에야 뒷북치는 격이다. 강대국 눈치만 본다고 욕을 얻어먹기도 했다. 그러나 선언을 해야만 팬데믹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오래전에 팬데믹은 도처에 만연해 있었다. 사람들은 선언 하고난 후에야 팬데믹이 되는 것인 줄 안다. 하지만 보이는 것들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지 않는다. 훨씬 근본적이며 그 훨씬 이전에 전조가 있었고 보이지 않게 만연되어 있었다. 단지 느끼지 못할 뿐이고 선언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질병의 팬데믹은 시간이 가면 청정지역으로 바뀌게 된다. 방역 여하에 따라서는 조기에 종식 될 수 있다. 결코 영원하지 않다. 우리가 앓고 있는 더 아픈 팬데믹, 치유 불가능한 팬데믹이 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절망적이며 극세사 KF99마스크로도 걸러낼 수 없는 치명적인 이 질병은 이미 팬데믹 상태다. 사람들은 애써 외면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을 것이라 스스로를 타이르기도 한다. 정책가들은 합리화 하다가 네 탓이라고 밀어붙이기도 한다.

14세기에 유럽을 죽음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흑사병처럼 스산한 공기가 온 누리에 엄습하고 있다. 들고양이들이 주인을 자처하고 유기견들이 들개가 되어 휑한 들판을 쏘다닌다. 작은 마을에 동기생이 열 명이 넘었고 줄 지어 등교를 했던 초등학교는 폐교가 되어 나자빠져 있다. 집을 지키는 것은 구순의 노모와 고양이들. 무엇으로 이 치명적인 팬데믹을 치유 할 수 있을까? 동네 누님들이 짜준 성근 입마개가 오늘 따라 그립다.
조문환 (하동주민공정여행놀루와(협)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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