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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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0.03.26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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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시 ‘진주’로 널리 알려진 서울상대 출신 허유(1)
몇주 전에 황경규 진주향당 상임고문이 필자를 보고 “교수님. 시 ‘진주’를 쓴 시인이 어떤 분이기에 진주의 정신을 시로 기막히게 써 놓은 것입니까?” 필자는 이 시가 알려지게 된 경위를 다음과 같이 말해 주었다. “오래 전 진주문화원에서 진주를 소재로 쓴 작품을 모아 책으로 내려고 하는데 나 보고도 본인 시뿐만 아니라 가지고 있는 자료 중에서 찾아서 주시면 좋겠다 하고 청을 하여 여러 작품을 골랐는데 그때 이 ‘진주’가 눈에 띄어 선뜻 보내준 것이었어요. 진주찬가에 속하는 시인데 그 이후 이 시가 일약 유명해졌어요.”

필자는 그 순간 20여년 전에 만났던 허 유 시인을 떠올렸다. 필자가 한국문인협회에서 주는 ‘조연현문학상’을 받을 때 고교 선배 허 유 시인께서 수상식장인 신문회관을 찾아와 축하해 준 일이 있었는데 그때를 생각하니 그리운 마음이 생겼다. 그래 통화도 하고 작품 ‘진주’가 유명해 졌다 하니 몇 번이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시인 허 유(許侑, 1936~)는 시 ‘晉州’로 널리 알려져 있는 시인이다. 그는 고성군 마암면 장산리에서 태어났고 진주중학교와 진주고등학교를 1956년에 졸업했다. 그에 의하면 고성에서 초등학교를 나와 진주로 들어와 진주중고를 졸업했는데 진주에 사는 6년 동안 어머니께서 봉곡동 목재소 앞에 허름한 집을 한 채 사서 아들을 성공시키기 위한 일념으로 하숙을 하지 않고 안정되게 공부하도록 배려해 주었다는 것이다. 진주중학이나 진주고등을 다닌 타시군 사람들은 대부분 진주 봉곡동이나 상봉동·서동, 봉래동 일대에 하숙이나 자취를 했었다.

허 유 시인은 1958년 평화신문 신춘문예 시부에 ‘악재기중(樂在其中)’이 당선되어 시인이 되었다. 시는 처음 보는 순간 필자에게는 시인 서정주의 말솜씨를 꼭 빼닮았다는 느낌을 주었다. 마지막 연을 보자. “꽃을 가꾸는 이의 마음씨이듯 우리 인생을 하고,/ 창호지 문 한 겹을 열면 거기 항상 있듯이 맑디 맑은 하늘이 있는 우리 인생을 하고,그제사 제 하늘께를 구름 미끄러져 가는 소리 닮은 이녘이 하는 가슴 소리를/ 누군가 지혜답게 이야기하실 수 있는가.”

인용시는 꽃가꾸는 마음이 인생이고, 창호지 빛깔에 어리는 하늘빛이 우리 인생이고, 구름 미끄러져 가는 소리 내는 가슴이 이녘의 소리라는 것이 참 오묘한 인생의 소리로 들린다는 것 아닌가. 우물딱 주물딱 반죽해내는 듯한 꽃과 하늘과 구름 흐르는 자리가 인생이리라는 것이다. 서정주의 시를 한동안 읽은 사람이면 천상 인용시는 서정주의 시이거나 사촌의 시이거나 또 제자들 입김이 묻어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필자는 허 유 시인에게 어떤 연고로 시작품에 미당 서정주 냄새가 나느냐고 물었다. 선배께서는 동국대학교 국문과에도 서라벌예술대학 문턱에도 가지 않고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으로 진학했는데도 말입니다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가 1956년에 서울상대를 입학했고 1958년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자 서정주 선생의 장남 서승해 소설가(현재 재미 변호사)가 축전을 보내와서 친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뒤부터 허 유 시인은 자주 공덕동에 있는 서정주 선생댁을 빈번히 드나들면서 술이 쥐해 자고 오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때 같이 어울렸던 친구로 이제하 소설가, 환속시인 모씨 등을 만나 늘 회포를 풀었다고 회고했다. 서승해는 당시 서울대학교 음대를 다니던 다소 엉뚱한 데가 있는 소설가였지만 뒤에 동국대 영문과로 전학했다. 그런 뒤 서승해는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에 갈 때 서정주 선생은 승해에게 “너는 말이야. 영어로 소설을 쓸 수 있을 때까지 돌아오지 말아라”고 언명을 했다는 것 아닌가.

서정주 시인이 자기의 장남에게 영어로 소설을 쓸 때까지 돌아오지 말아라 하는 데는 스스로의 어떤 콤플렉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서정주는 국내 문인중에서 김동리와 함께 해마다 노벨상 수상자로 추천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자기 작품의 외국어 번역이 많지 않아 노벨상 수상의 문턱에 가기가 힘이 부쳤을 것이다. 그러니 “승해야 넌 말이야 어떻든 영어로 자유자재 소설을 쓸 수 있도록 해라. 미국에 있었던 리차드 김(김은국 소설가 순교자 작가)처럼 된다면 좋을 것이야”

이야기는 다르지만 필자가 1966년 서정주 선생댁을 방문하고 있을 때 황순원 선생의 아들 황동규 교수가 영국 유학을 떠나는 인사차 선생댁을 방문해온 것이다. 그때 서정주 선생이 황교수에게 “황교수도 말이야 영국에 좀 느긋이 살다가 오시게. 영어로 시를 쓸 수 있을 때까지면 좋을 것이야”라 하자 황동규 교수는 “아이고 선생님 저는 안됩니다. 지금까지 부모님 슬하에서 떠나본 일이 없어서 한 6개월이면 진력이 날 것이 뻔합니다” 하고 미안한 듯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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