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코로나19 사태를 바라보며
[기고]코로나19 사태를 바라보며
  • 경남일보
  • 승인 2020.04.07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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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안나 수녀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원 프랑스 모원 소속
남안나봉자



지난 3월 25일 낮 12시 전세계 가톨릭 신자들은 교황님의 뜻에 따라 한마음으로 주의 기도를 바쳤다. 저녁 7시 30분에는 이곳 샬트르 교구장님의 뜻에 따라 10분 동안 모든 교회의 종을 울리며 기도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프랑스 모든 가정에 촛불을 켜서 빛을 기다리며 희망을 갈망했다. 이 사태를 겪으며 나라마다 대처하는 모습을 묘사한 글을 보며 삶과 죽음에 대한 자세도 보게 된다. 철저하게 봉쇄해서 생존여부를 알 수 없을 만큼 비밀스레 해결해가는 모습도, 각자가 자신의 상태를 예의주시해서 헤쳐가라는 자유스런(?) 처방인지, 한계를 예감한 처방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발표 등 각국의 다양한 모습을 본다. 우리나라처럼 그렇게 너도 살고, 나도 살고, 우리 함께 잘 살아 보자고 애쓰는 모습에 감동의 눈물을 자아내는 나라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과 죽음을 어릴 적 숨바꼭질하듯 찾고, 감추고 하는 황당한 태도는 무엇일까?

종교는 자유다. 종교의 궁극적 목적은 같다. 영생을 얻는 것, 행복하게 사는 것, 진선미를 추구하는 것. 그리고 모든 종교에는 신비스런 부분, 모두 이해 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모두 이해되고 설명될 수 있다면 굳이 종교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 과정이 너무 다를 때 우리는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 목적이 거룩하고 신성하다면 그 목적을 향해가는 과정 역시 최소한 바르고, 진실되며, 숨김과 거짓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는 지켜지고 이웃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사태를 지켜보며 이 사태가 우리에게 주려는 의미가 무엇인지 수없이 질문했다. 원인을 찾는 것도, 이 과정을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며 바라보는 것도, 끝나지 않은 사태의 결말을 기다리는 것도, 참으로 무겁고 힘든 마음이 큰 바위덩이에 눌린 기분이다. 하지만 그 어떤 일에도 뜻은 있을 것이며 우리가 찾고, 배우고, 새롭게 시작해야 할 몫은 있으리라. 그런데 친구로부터 전해받은 이 사태를 바라보며 내놓은 ‘빌게이츠의 아름다운 성찰’ 이란 글이 인상적이라 나누고 싶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첫째 코로나19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것을 가르친다. 둘째 우리 모두가 연결 되어 있음을 가르친다. 셋째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가르친다. 넷째 인생이 짧다는 것과 우리가 해야 할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있다. 다섯째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물질주의로 변했는지 가르치고 있다. 여섯째 가족과 가정생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런데 그것을 우리가 얼마나 무시해 왔는지를 가르치고 있다. 일곱째 진짜 우리 일이 무엇인지, 창조된 뜻대로 서로 보살피고, 보호하고 서로에게 보탬이 되고 있는지 성찰케 한다. 여덟째 우리의 자아상을 계속 점검하라고 가르친다. 아홉번째 우리가 인내 할 수도 있고, 공황장애에 빠질 수도 있다고 가르친다. 열번째 이 시간이 종말이 될 수 도 있고,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음도 가르친다. 열한번째 지구가 병 들었다는걸 가르친다. 열두번째 난관이 지난 뒤 평온이 온다고 가르친다. 열세번째 거대한 재앙으로 볼 수도 있지만 위대한 교정자로 보고 싶다. 우리가 잊고 살아 온 중요한 교훈들을 일깨워 주기 위해 그것이 주어졌고 그것을 배울지 말지는 우리자신에게 달려있다고 우리시대의 위인인 마이크로 소프터의 창업자는 말했다. 그렇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인내와 용기 사랑의 마음, 지혜와 희망으로 이 고뇌의 시간을 함께 이겨나가자.

남안나 수녀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원 프랑스 모원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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