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境界)
경계(境界)
  • 경남일보
  • 승인 2020.04.22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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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환 (하동주민공정여행 놀루와(협)대표)
조문환

5월 초 어느 새벽이었다. 나는 세 시 께에 깨어나 명경처럼 맑은 정신으로 책상에 앉아 있었다. 바깥은 어둡고 공기는 포근했다. 어떤 생각이든 명료하고 무엇을 결정하든 최적의 판단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명징함이 몇 시간 내내 나를 이끌었다. 거실의 넓은 창으로 보이는 암흑이 점차 미명으로 바뀌는 것을 응시했다. 어느 지점에 이르자 밀폐된 두꺼운 유리창 안으로 새들의 합창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일순간 산골짜기의 작은 동네는 깨어나기 시작했다. 이들이 합창을 하기 시작한 시간은 새벽과 아침의 미묘한 경계점이었다. 암흑에서 미명으로 바뀌는 찰나의 시간을 잠자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은 내 의식의 잠을 깨웠던 시간이기도 했다. 잠에서 깨어 명료한 시간을 보냈던 것에 더하여 미묘한 경계에 섰다는 사실을, 나와 함께 새벽을 깨우는 시간에 그들도 함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순간 시 한 수를 받아썼다.

내일도 나는 그곳에 있었다. 삶과 죽음의/새벽과 아침의/오늘과 내일의/육지와 바다의/남자와 여자의/믿음과 불신의/깨어남과 잠잠의/너와 나의/역사와 그 언저리의/남과 북의/하늘과 땅의/인식과 무의식의/질서와 자유의/눈감음과 눈뜸의/인식과 무의식의/위층과 아래층의/너 거기에서 울었는가?/이 새벽과 이 아침의/그 기묘한 경계에 엎드려/저처럼 우는 새여!

지난 날 경계는 불편하고 위험하고 불안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 순간적인 경험이 경계에 대한 경계를 일순간에 허물어 버리고 나를 경계에 서라고, 경계에 서기를 즐거워하라는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알고 보니 나는 늘 경계에 서 있었다. 그럼에도 경계를 불편하게 여기고 위험한 것으로 오해 했었다. 그곳은 창조적인 장소요, 꿈을 꾸고 꿈이 실현되는 장소요, 나를 만나고 너를 만나는 장소요, 깨어남의 장소였다.

깨어 있어야 경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경계에 서서 좌우, 상하를 살피며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게 된다. 경계가 아닌 다른 곳에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비밀이 이 경계에서면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게 된다. 가만 보면 너와 나의 ‘사이’는 경계다. 그 사이에서 열애가 있고, 믿음이 있고, 우정이 있고, 질투와 손잡음이 있다. 경계에 서지 않으면 소유할 수 없는 비밀과 같은 보물이다. 이것을 가르쳐 준 것은 오월의 새벽과 미명 사이에서 합창했던 참새들이었다. 그 기묘한 경계에 엎드려 저 새처럼 노래하는 새가 되고 싶다. 내일도 나는 그곳에 있었다.


조문환 (하동주민공정여행 놀루와(협)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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