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08)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08)
  • 경남일보
  • 승인 2020.04.23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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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시 ‘진주’로 널리 알려진 서울상대 출신 허 유 시인(5)
지난 주에 허 유 시인의 진주고등학교 후배이자 서울상대 후배인 김위찬 교수 이야기를 했다. 소개를 했듯이 김 교수는 세계적인 경영학자로 EU공동체 인시어드 대학원 석좌교수로 싱가포르, 말레지아 등 국가 최고자문위원을 맡는 등 세계에 영향을 주는 경영사상가로 손 꼽히는 학자이다. 허 유 시인이 김교수를 직접 알고 교류하는지는 필자로서는 알 수가 없다. 어쨌든 학력의 지근거리에 두 분이 위치해 있는 것은 사실이고 김교수와 허 유 시인을 경제 경영학을 사이에 두고 바라보게 된 것이다.

김위찬 교수의 부친 고 김동렬 시인 생존시 진주에 김교수가 귀향했을 때마다 필자는 김교수와 만나 이야길 나누었는데 예의 경영학에서의 시, 또는 고향에 관한 것이었다. 김교수는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시와 문학, 또는 고향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학문도 이 영역과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어울린다는 점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필자는 이를 예사로 듣지 않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블루오션 전략’의 2탄 ‘블루오션 시프트(이동)’에서 그가 말한 시적 상상력과 경영학의 결합이라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허 유 시인이 상과대학을 나왔으면서 시인이 된 것이나 상과를 나와 세계적 석학이 된 김교수가 경영학의 실천이론에서 시인 휘트먼의 시를 인용하는 통합사고적 논급을 보인 점에서나 통합적 사고라는 측면에서 서로가 일치점에 닿고 있다. 필자에게는 놀라운 일로 와 닿는다.

허 유 시인의 시 ‘어느 겨울의 아랫목에서’를 읽어 보자. 좀체로 보기 힘드는 연애시다. “어느 진눈개비 뿌리는 날을 / 너와 둘이서 지내볼거나// 우린 스물 여섯 아니면 스물 일곱/ 학업들을 마침 마치고/ 적당히 건강하며/ 아무렴 참 적당히 건강하며/ 모든 우리의 달성을 위해 서 있다// 길 모퉁일 돌면/ 신규(新規)의 공기, /하늘 안의 구름들은 흰 포목같이 길바닥에 내려오고 / “월력을 보자, 월력을 보자”/ “약혼은? 약혼은?”하며/ 우린 충분히 성실하고 있다// 그래 바깥은 진눈개비가 뿌리는데/ 우리 두뇌의 바깥에도/ 우리 젊음의 바깥에도/ 진눈개비가 뿌리는데, // 너와 둘이서 지내볼거나, / 이 따뜻이 데푼 생활의 이랫목에서,”

결혼을 앞둔 화자와 ‘너’가 한 사람은 스물 일곱, 한 사람은 스물 여섯, 학업도 마쳤고 적당히 건강하고 길 모퉁이엔 새로운 공기가 기다리고 하얀 구름은 포목같이 길바닥에 내려와 깔리고 이제 약혼일을 잡고 하나로 합칠 일을 계획하자는 것이다. 바깥은 진눈개비가 내려 합일을 촉진하고 생활은 이미 따뜻이 데핀 상황이라는 것이다. 모든 조건들이 맞아 떨어지고 양자의 마음도 신혼의 아랫목을 기다리는 것이다. 시인이 연애시를 쓰지 않았던 사람인데 그러므로 시적 정서가 부드럽거나 보다 섬세한 감정의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기껏해서 건강하다는 것, 신규의 공기가 기다린다는 것, 충분히 성실하다는 것, 생활의 아랫목이라는 것 정도이다.

허 유의 ‘서울 사는 재미’를 읽자. “서울 사는 재미는/ 상한 공기를 마시고/ 빛바랜 푸르족족한 하늘을 이고 사는 재미다// 소리에 부대끼다가/ 빛깔에 부대끼다가/ 그러고 나면 적막에 부대끼다가/ 어디 털썩 주저앉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재미다// 재경향우회 간사 자리나 하나 얻고/ 퇴근길에는 충분히 가련한 소시민으로 즐겁고/ 그러구러 어린 것들이나 키워보는/ 어린 것들의 고추맛이나 보는// 서울 사는 재미는/ 피곤만 몇 됫박씩 들이키고 사는 재미다”

시에서 재미가 꼭 재미인가? 역설일 수 있고 풍자일 수 있고 자학일 수 있는 재미다. 그런데 허 유 시인은 진주의 공기와 정신은 새벽잠 깨어 정수리에 퍼붓는 영혼의 충동으로 온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서울은 진주와는 그 반대다. 공기가 상해 있고 소리에 빛깔에 적막에 부대끼는 그런 삭막한 곳이다. 그것이 재미인가? 그러나 후반에 가면 그런대로 의미와 안분지족의 상황이 오기는 온다. 향우회 간사 일을 하고, 퇴근길 소시민이 되어 소주 한 잔 하(?)고 어린 것들 재롱이나 보는 것, 그것은 재미일 수 있겠다. 서울 재미는 유별난 감동이나 감명이 없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거기에 비해 시인이 진주에 오면 상황은 달라진다. 과거의 것은 다 어디 갔지만 “참 오랜만에 고향이 왔다”라고 안도하는 곳이다. “일체의 공기는 건강뿐으로 돼 있는 곳, 생활 위엔 뻐근한 감격이 있는 곳”, “하늘과 땅이 바다와 바람이 간이 맞은 우리의 식탁같이”, “언덕 겨드랑 밑으론 도토리나무들이 우리 친척 같이 늘어서 있는 곳!” 적어도 그런 곳이 고향이다. 서울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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