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왈 "반드시 이름을 바로 잡겠다"
공자 왈 "반드시 이름을 바로 잡겠다"
  • 경남일보
  • 승인 2020.05.24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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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역사에는 이름을 남긴 훌륭한 분들이 많다. 후대의 역사적 평가를 기대하면서 고난받는 현실을 버틴 위인도 있었다. 속 좁은 선조가 풍전등화에 처한 나라를 구한 충무공 이순신의 공로를 외면할 때였다. 묵묵히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은 조정이 모함한다 해도, 세상이 자기 이름을 기억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 믿음이 자신을 지탱시켜주는 큰 힘이었다. ‘임금은 나의 공을 알아주지 않지만(業是天人貶 업시천인폄) 세상은 나의 이름을 기억해 주리라(名猶四海知 명유사해지)’ 조선시대 말, 1895년 친일파들이 주도한 을미사변과 단발령으로 인해 의병이 전국에서 일어났을 때였다. 김복한과 함께 두 차례의 홍주의거를 일으킨 이설은 ‘목을 끊어도 2(頸斷)’라는 시에서 ‘그대는 의거를 주장했고(君主擧義論 군주거의론), 나는 항소로 항쟁하려 했나니(我欲抗疏爭 아욕항소쟁), 뜻한 바는 비록 각기 다르지만(所志雖自異 소지수자이), 같이 죽어 이름을 함께 전하리(同死由齊名 동사유제명)’라고 하였다. 이들은 이름을 남기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오히려 부끄럽게 살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이순신과 이설은 모두 죽을 각오로 온 몸을 던지며 이름을 말하고 있다. 이름이 곧 자기 자신이다. 자로(子路)가 스승에게 “위(衛)나라 임금이 등용해 정치를 하게 해준다면, 무엇을 가장 먼저 하고 싶으십니까?”라고 물으니 공자는 “반드시 이름을 바로 잡겠다(必也正名)!”고 대답했다. 공자의 정명(正名)은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직책이면 직책답게, 이름이면 이름값을 해야 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흔히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다. 일반적으로 좋은 일에는 자기 이름을 내세우고, 나쁜 일에는 이름을 숨긴다. 비자금 조성, 공금횡령 등으로 휠체어를 타고 검찰청을 나서거나 교도소에서 나오는 재벌그룹 회장님들은 자기 얼굴을 보이지 않으을려고 모두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있다. 아예 가명을 사용하는 범죄자도 있고, 이름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한번 더럽혀진 이름은 되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름과 얼굴을 내세우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맛집이다. 전국적인 체인이나 프랜차이즈는 통일된 레시피에 의해 음식맛이 똑같다. 그러나 지기 이름을 걸고 하는 맛집은 자기만의 독특한 별미를 강조한다. 물론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각자의 자유이다. 여행을 할 때에는 세계적, 전국적인 브랜드보다 그 지역이 아니면 먹을 수 없는 특산품에 눈길이 간다. 요즈음은 승용차나 보험상품 영업사원들도 신뢰의 담보물로 자기 이름과 얼굴을 홍보한다. 영화, 연극, 문학작품도 모두 작가의 이름을 내세운다. 독자들은 당연히 이름값을 하리라고 믿는다.

그동안 다른 정당과의 차별성만 강조하느라고 사사건건 발목을 잡고, 막말을 한 이름들이 다행히 이번 4.15총선에서 꽤 많이 떨어졌다. 당선되신 분들은 모두 선거운동을 할 때에 자신의 이름을 밝히면서 지지를 호소했다. 선거홍보물에도 이름이 있었고, 투표지에도 이름이 있었다. 우리는 코로나19의 위험을 무릅쓰고 투표장에 갔다. 1미터 이상씩 띄엄띄엄 긴 줄을 서서 기다렸다. 모든 유권자들은 마스크를 쓰고, 손에는 일회용 비닐 장갑을 끼고 투표장에 들어갔다. 모두들 이번 21대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고 겸손하게 일하는 국회가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었다. 자신을 지지하는 층을 대변하는 국회의원들끼리 의견이 충돌하는 경우는 당연한 일이다. 다만 정치는 죽기 살기가 아니고 대화와 협상이다. 이제부터는 국회의원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바로잡는 활동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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