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을 베다가
풀을 베다가
  • 경남일보
  • 승인 2020.05.25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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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 (진주문협 사무간사)
 

 

‘웨에엥∼치지직’ 예초기를 돌린다. 주말이면 정원은 물론이고 도로변의 풀까지 깎는다. 산뜻하게 깎은 모습을 보면 마음마저 상쾌해진다. 그것도 잠시 오뉴월 잡초는 돌아서면 쑥쑥 솟아난다. 자라는 풀을 이기려니 가랑이가 찢어질 지경이다.

누구는 편하게 농약방에 가서 제초제를 사서 뿌리라고 하지만, 건강한 삶을 살려는 목적으로 전원생활을 시작한 만큼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제적 가치를 따진다면 풀베기와 잔디 깎기는 빌어먹을 일이다. 그렇지만 환경과 건강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국유지를 빌어 조그만 텃밭 농사를 짓는다. 딱 우리 가족 먹을 만큼이니 자급자족하자는 의미다. 앞 동네 수곡댁 할머니는 육백 평 밭을 혼자 짓는다. 그런 할머니가 오늘은 제초제를 뿌리신다. 콩을 심을 밭에 제초제를 연이어서 뿌리는데 여러 마음이 교차한다. 육백 평이 넘는 할머니 콩밭은 제초제 없이 방법이 없다. 고추며 콩이며 밭에서 나오는 수익이 자녀에겐 한 달 수입도 안 되지만, 수곡 댁 할머니는 오늘도 호미를 들고 계신다. 땅은 놀리면 안 된다는 것이 그녀의 삶에 박혀 있는 철학이다.

오랜 철학이 휘어진 그녀의 등허리를 누르고 있다. 그 모습이 강인하게도 보이고 서글프게도 보인다. 우리를 키워온 어머니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처럼 우리 사회는 농민의 허리 휘어지는 인내로 이어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몇 년 전 ‘저농약 인증제도’가 폐지되고 ‘농산물 우수관리제도’가 도입되면서 어떻게 된 것인지 농가마다 제초제 사용이 늘어나고 있다. 더욱이 수곡댁 할머니처럼 고령 농민들은 제초제에 기대게 된다. 규모가 큰 농민들도 힘든 풀베기보다는 제초제를 쓰는 것이 편하게 생각한다. 무엇보다 제초제를 쓰나 안 쓰나 바뀐 인증제도로는 차이도 없고 정책적인 뒷받침도 허울뿐이다. 정부는 건강한 먹거리도 생산하고, 땅도 살리기를 원한다면 농민의 인내에만 기대지 말고, 땅을 살리는 농민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보완되어야 한다. 친환경으로 병충해 없고 우수한 농산물을 생산할 수만 있다면 개발비 절반을 투자해서라도 이루어낼 가치 있는 일이다.

시골로 이사한 지 이제 사 년차다. 그동안 한 번도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없다. 그런 이유 하나만으로도 잔디 깎기나 풀베기는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다. 푸른 숲 푸른 들을 바라보며 오늘도 즐겁게 풀베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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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호 2020-06-01 23:47:30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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