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으로 끝난 태국인 부부의 코리안 드림
비극으로 끝난 태국인 부부의 코리안 드림
  • 백지영
  • 승인 2020.05.25 1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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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한 농장서 살해된 태국인 유족
불법체류자 신분 탓 법적 지원 전무
나흘째 장례도 못 치른 채 ‘발 동동’
속보=진주에서 같은 국적 노동자에게 피살된 태국인 남성의 유족이 비용 문제로 나흘째 장례를 치르지 못한 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본보 25일자 4면 보도)

지난 21일 진주시 금곡면 한 비닐하우스 단지에서 살해당한 A(33·태국)씨가 코리안 드림을 품고 한국으로 입국한 것은 2년 전.

당시 10살과 8살로 아직 어렸던 두 남매를 부모님 손에 맡기고 동갑내기 아내 B씨와 함께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지인을 통해 금곡면의 한 농장을 소개받고 이곳에서 숙식하며 농사일을 해왔다.

진주시 금곡면을 비롯해 전국 각 농촌 마을에는 이러한 형태로 외국인 노동자 부부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월 260만원을 지급하는 농가가 즐비하다.

부부는 번 돈 대부분을 부모님이 아이들을 돌보고 계신 태국으로 송금했다.

한국에서 번 돈으로 태국에서 지낼 집을 장만하고 화물 트럭을 구매해 관련 일을 하는 게 부부의 꿈이었다.

그 꿈이 무너진 것은 지난 21일 밤. A씨는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다른 태국인 노동자(29)와 음식 문제로 시비를 벌이는 과정에서 흉기에 찔려 숨졌다. 아내가 보는 앞이었다.

남편 살해 현장을 목격한 B씨는 끔찍한 트라우마와 함께 또 다른 난관에 직면했다. 장례 문제였다.

처음에는 고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남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여주고 싶어 시신을 방부 처리한 뒤 비행기로 운구하고 싶었지만 높은 비용에 포기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비행 편이 대폭 축소돼 비용이 더 커진 만큼 화장 후 유골함을 가져가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하지만 병원비와 안치비, 화장비와 항공료 등 500만원 안팎으로 예상되는 비용은 여전히 B씨를 고통스럽게 했다.

범죄 피해자에게 심사를 거쳐 지급되는 생계비, (심리)치료비, 장례비 등 경제적 지원은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이 발목을 잡았다.

검찰과 범죄피해자지원센터 등의 지원 대상은 내국인과 국내 ‘적법 체류’ 외국인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법무부의 유족구조금은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상대 국가가 한국인에게 같은 지원을 한다면 불법체류자라도 지급받을 수 있지만 일본·캐나다·독일·프랑스·스페인 등 극소수 국가 출신으로 한정된 상황이다.

막막한 B씨는 혹시나 관련 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 26일 주한 태국대사관 문을 두드려 볼 작정이다. 과거 국내에서 피살된 다른 태국인 불법체류자에게 관련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만큼 ‘과연 가능할까’ 싶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다.

대사관 방문을 앞둔 B씨는 “서울 잘 다녀오고 너무 많이 울지는 마. 태국 가면 아이들 잘 키워야 해”라고 위로해주는 농장주 부인을 껴안고 한참을 울었다.

한국어 소통이 힘든 그로선 관련 서류 발급 등 난관이 산적해 있지만 다행히 안타까운 사연을 들은 한국인-태국인 부부가 김해에서 업무를 포기하고 달려와 통역 등을 돕고 상경길을 함께 해주는 터라 힘이 된다.

경찰 관계자는 “불법 체류자다 보니 살인이라는 큰 범죄임에도 아무런 법적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사연이 안타까워 도울 방법을 수소문하고 있다”고 밝혔다.

백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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