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23) 한국 최초 8000m 연속 등정(상)
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23) 한국 최초 8000m 연속 등정(상)
  • 경남일보
  • 승인 2020.05.31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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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연맹 울산지부, 초오유·시샤팡마 도전 나서
1차 초오유 등정 후 곧바로 시샤팡마 등반 계획
“한국과 중국이 국교 수교를 맺은 1992년 세계 6위봉 초오유, 세계 14위봉 시샤팡마를 한국 원정 사상 최초로 연속 등정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등반이었다.”-김관준 원정대장.
 
초오유 정상에 선 김영태(왼쪽)와 남선우
1992년 경남산악연맹 울산지부는 티베트에 위치한 초오유(8201m)와 시샤팡마(8027m)를 연속 등정하기 위한 원정대를 구성했다. 김관준 원정대장을 중심으로 남선우 등반대장·김영태·손경득·조상현·남기철·신영철 대원이 참여했다.

1992년 8월의 늦은 여름 원정대는 네팔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원정대는 8월 23일 카트만두에서 간단한 행정절차와 식량과 장비를 구입하고 쿰부 히말라야에서 적응 훈련을 가졌다. 해발 1300m의 카트만두에서 2~3일 만에 2600m의 고도를 올리면 고소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9월 1일 버스를 이용해 티베트로 향했다. 덜컹거리는 버스는 거의 포장되지 않은 길을 10시간 넘게 달렸다. 폭우로 도로 곳곳이 유실돼 제대로 속력을 내지 못했다. 유실된 구간 폭이 넓어 버스가 이동하지 못해 포터를 고용해 짐을 옮겼다. 버스가 진흙탕에 빠져 대원들이 모두 밀어야 했고, 도로 유실이 심할 경우 버스와 트럭 자체를 반대편에서 바꿔 타는 해프닝을 겪었다.

 
 
금단의 땅 티베트로!

대원들은 온몸으로 비포장 도로를 체험했지만 전혀 피곤함을 느끼지 못했다. 금단의 땅 티베트를 간다는 것 자체만으로 대원들은 흥분했다. 기대감이 고통을 앞섰다고 할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원정대는 네팔~티베트 국경 마을 장무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입국 수속과 등산에 필요한 각종 식량과 장비 등을 검색한 후 통관 검사를 받았다. 네팔에서 티베트로 들어가는 통관 검사가 엄격했지만 원정대는 평소보다 쉽게 통관작업을 마쳤다. 다른 버스로 갈아탄 원정대는 니알람(3900m)~딩그리(4300m)를 거쳐 9월 4일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원정대는 이곳에서부터는 야크로 식량과 장비를 운반했다. 9월 6일 22마리 야크에 600㎏ 짐을 싣고 ABC로 향했다. 전진캠프(5700m)에는 스페인 등 4개 원정대가 낭파라 고개(Nangpa La, 5716m)를 넘어 초오유 베이스캠프로 들어왔다. 낭파라 고개는 400년 전 티베트 셰르파들이 네팔 쿰부지역으로 이주할 때 넘은 것으로 유명하다. 낭파라 고개는 높고 험해 많은 산악인들과 트레커, 그리고 현지인들이 눈사태 등으로 목숨을 잃기도 한다.

 
 
한국 등 세계 8개국 참가

1992년 가을 시즌 초오유 북서 루트를 등반하는 팀은 한국을 비롯해 일본·스페인·이탈리아· 슬로베니아 등 8개팀이었다. 한편 먼저 도착한 일본 원정대는 2캠프를 설치하고 3캠프로 가는 길을 만들고 있었다. 9월 9일 대원과 셰르파를 모두 동원해 1캠프(6500m)에 2동의 텐트를 설치했다. 1캠프는 정상에 이르는 전 구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제2 베이스캠프나 다름없다. 남선우 등반대장은 회상했다. “1캠프까지는 눈이 거의 없고 빙하 위에 돌들이 그대로 드러나 등반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정상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골목인 록밴드에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우리는 시간과 싸움이었다. 초오유를 빨리 등정하고 좋은 날씨가 계속되면 바로 시샤팡마를 등반할 계획이었다.”

9월 11일 남선우 등반대장은 1캠프를 진출한 이후 셰르파들을 독려해 다음 날 2캠프(7050m)를 설치했다. 초오유는 오후에는 거의 매일 눈이 날리고 강한 바람이 불었다. 정상 부위에는 하얀 눈이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9월 14일 남선우 등반대장은 2캠프를 출발해 해발 3캠프가 될 7500m 지점에 텐트 2동을 운반하고 전진캠프로 돌아왔다. 그날 김영태·손경득 대원은 1캠프로 진출했다. 9월 15일 김영태 대원은 록밴드를 넘어 작은 텐트 2동을 설치하고 1캠프로 하산했다. 록밴드는 초오유 등정을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구간이다.

 
록밴드로 전진하는 대원들
‘D-day 9월 20일’

김관준 대장과 남선우 등반대장은 정상 공격 일정을 확정했다. 9월 20일이었다. 공격조는 남선우 등반대장·김영태 대원, 밍마 셰르파를 결정했다. 일본팀도 이날을 등정일로 잡았다. 9월 18일 2캠프로 올라간 공격조는 이튿날 3캠프로 진출해 이른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9월 20일 새벽 3시. 잠에서 깬 대원들은 간단한 요기를 마치고 장비를 착용했다. 1시간이 지난 새벽 4시 마지막 텐트를 나섰다. 하현달이 초오유를 비추고 있었다. 달빛에 비친 검정 바위가 오싹할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어둠 속에서 헤드 랜턴 불빛이 흔들렸다. 강한 바람은 대원들의 어깨를 움츠리게 했다. 아이젠이 눈과 바위에 부닥치는 소리가 적막함을 일깨웠다. 대원들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바라클라바를 뚫고 나오는 하얀 입김이 시야를 가렸다. 록밴드를 넘어서자 눈이 무릎까지 빠지는 곳도 있었지만 추운 날씨로 잘 얼어 있어 큰 어려움은 없었다. 오전 7시쯤 록밴드를 빠져나와 설사면으로 접어들었다.

대형 눈사태 발생…아찔한 순간

설사면 제일 위쪽에는 눈처마가 걸려 있었다. 김영태 대원이 피켈로 눈처마를 찍는 순간 발밑의 설사면이 그대로 떨어져 나갔다. 눈사태였다. 대원들은 본능적으로 밀려 내려가지 않으려고 오른쪽 설사면으로 급하게 몸을 던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왼쪽 25m 정도가 통째로 내려간 것이다. 대원들은 꼼짝할 수 없었다. 언제 자신들이 서 있는 곳도 무너져 내릴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안정을 되찾은 대원들은 눈사태 난 곳으로 몸을 조심스럽게 옮겼다. 눈처마를 넘어선 그들은 눈 위에 드러누워 가쁜 숨을 내쉬었다. 한바탕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난 그들은 해가 떴다는 것을 알았다.

남선우 대장은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눈처마를 약 10m 정도 남겨놓고 김영태 대원이 피켈을 눈에 찍는 순간 우리가 밟고 있던 설사면이 그대로 내려앉았다. 설사면 구간을 올라야 한다는 생각만 했지 전혀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은 무방비 상태에서 눈사태를 당했다. 정말 아찔했다. 겨우 몸을 피한 우리는 한참 동안 멍하니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정말 운이 좋았다.”

정신을 차린 대원들은 넓고 가파른 설사면을 2시간 정도 올랐다. 오전 10시 그들은 8000m를 넘어섰다. 그리고 천천히 오른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경사도가 10도 정도 되는 설사면으로 접어들었다. 금방 보일 것 같았던 정상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 앞에 펼쳐진 것은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뿐이었다. 태고의 신비로움과 깨끗함을 간직한 눈은 그들에게는 악몽과 고통만을 안겨주었다. 낮은 세상에서 하얀 눈은 즐거움과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주지만 높은 세상에서는 몸부림으로 다가왔다. 무릎까지 빠지는 많은 눈으로 속도는 떨어지고, 고도는 좀처럼 높아지지 않았다. 1시간 20분을 눈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드디어 설원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선우·김영태, 등정…다음은 시샤팡마

설원의 끝에 서자 만년설의 파노라마가 그들의 눈앞에 펼쳐졌다. 9월 20일 오전 11시 20분 남선우·김영태는 초오유 정상에 섰다. 그들은 25분간 머물면서 등정 사진과 주변 파노라마를 찍기 위해 연속해서 셔터를 눌렀다. 정상에 선 김영태·남선우의 시선이 한곳에 머물렀다. 바로 시샤팡마였다. 시샤팡마를 등정한다면 국내 최초로 8000m 2개 봉우리 연속 등정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음 목표를 확정한 그들은 하산을 시작했다.



박명환 경남산악연맹 부회장·경남과학교육원 홍보팀장



 
 
한국초오유등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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