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13)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13)
  • 경남일보
  • 승인 2020.06.04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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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지역문학 연구가요 시인인 박태일 교수 정년하다(5)
박태일 교수의 정년 기념문집의 두 번째 책인 ‘한국 지역문학 연구’를 보면 제1부는 <지역문학으로 가는 길>인데 연구의 과제나 방향을 제시하는 총론격의 글이다. 제2부는 전라, 광주문학 연구이고 제3부는 제주문학 연구, 제4부는 충청 대전문학 연구, 제5부는 강원문학 연구, 제6부는 경기 인천문학 연구, 제7부는 재외문학 연구 순으로 편집되어 있다. 우리나라 각각의 지역문학을 연구한 것을 집성한 논저이다. 방대한 결과물이다. 여기서는 그런 연구물을 설명하기는 힘들다. 범위를 이야기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연구에 필요한 분들은 직접 책으로 접근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교수의 그간의 바탕연구는 부산 경남 지역문학이었다. 필자가 가지고 있는 그 구체적인 연구서를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지역문학연구’ 제10호, ‘지역문학 비평의 이상과 현실’, ‘경남 부산 지역문학 연구 1’, ‘경남 부산 지역문학연구 4’, ‘유치환과 이원수의 부왜문학’, ‘한국문학 속의 합천과 이주홍’, ‘지역 인문학’, ‘파성 설창수문학의 이해’(박태일 등), ‘시는 달린다’ 등이 그 목록이다. 필자는 소장 관념이 약해 그 사이 빠져 달아난 책이 더러 있을 것이다.

오늘은 그 연구물 중에서 일반적으로 말하기 편한 저술들 중에서 필자가 관심 가는 부분들을 챙겨 볼까 한다. 그중 ‘파성 설창수 문학의 이해’ 설창수의 문학 전반에 대한 연구서이다. 이 책은 박태일 교수와 그 제자들이 같이 낸 책이다. 차례는 다음과 같다. <한국 근대 지역문학의 발견과 설창수>, <파성 설창수의 전인문학관 고찰>, <문예지 영문 연구>, <설창수의 문학살이와 진주>, <설창수의 광복기 희곡연구>, <진주지역문학의 전통과 삼인집>, <영문 소재 김춘수 미발굴 시 연구> 등의 순으로 실려 있다. 차례만 보아도 설창수 시인의 활동폭을 확인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통영의 김춘수 시인이 <영문>에 시를 발표한 것을 찾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김춘수가 무슨 작품을 실었는지 궁금해진다. 혹 그중에 이름 난 시가 있을까. <한 송이> <무덤 가에서> <구름> <산악> <거리에서> 릴케의 번역시 두 편, <죽음> <하늘> <나목> <가을> <어떤 얼굴> <손> 등인데 <하늘>을 읽어보자. “아침이면 눈 뜨는/뜰녘의 우물/그 우물 위에 고요히 내려와서 차고 넘치는/음성과도 같고 입김과도 같고/손길과도 같은…//아 어머니/나를 낳은 당신이/나를 울린다” 들녘의 우물이 아침마다 눈을 뜨는데 거기 어머니가 음성으로, 입김으로, 손길로 계신다는 이야기다. 이 시는 우리가 잘 아는 <꽃>이라든가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보다는 훨씬 앞에 <영문>에 발표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박교수의 저서 중에 주로 신문글 칼럼을 엮어 편집한 ‘지역 인문학-경남 부산 따져 읽기’가 손에 잡힌다. 신문은 ‘경남신문’, ‘국제신문’ 등이고 창원문화재단의 ‘문화누리’ 등에도 실렸던 글이다. 처음 실린 <거짓이여 물러가라>가 눈에 꼭 잡힌다. 경상대 국어교육과 명예교수 짐계 려증동 선생이 진주 가람출판사에서 낸 499쪽 분량의 책이다. “짐계 선생은 1933년에 태어났으니 올해로 일흔 아홉이다(9년 전에 나온 책) 경상대학교 국어교육과에서 후학을 가르치다 정년을 맞으셨다. 이때까지 펴내신 책이 스무 권을 넘어섰다. ‘한국어문교육’, ‘부왜역적 기관지 독립신문 연구’를 거쳐 ‘배달문학통사’, ‘고조선사기’, ‘한국력사용어’, ‘전통혼례’, ‘가정언어’, ‘배달겨레 문화사’, ‘배달글자’, 이름만으로도 일깨움이 환하지 않은가. 이번에 내신 ‘거짓이여 물러가라’는 앞선 책과 달리 회고록 꼴을 갖추어 새로운 뜻을 지녔다.

선생은 긴 세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도리를 밝히셨다. 말글에 지면 정신에 지고 정신에 지면 나라 지킬 힘을 잃어버리는 법이라 일깨우셨다. 깨우쳐 주신 바 얼마며 두고 두고 끼칠 바 또 얼마랴. 마흔 네 살 젊은 나이로 국어국문학 전국대회에서 역사용어를 바로 잡으라 꾸짖은 때가 1976년이었다. 나라 궁궐에 온갖 흉한 짐승을 쳐넣어 이른바 ‘창경원’이라 능멸했던 제구 왜로의 간교를 벗겨 ‘창경궁’으로 바로 잡게 한 빌미도 선생이 마련한 바다.

1996년이었던가 보다. 미국의 마르퀴즈 작위를 받고 세계의 명사전 후즈후 인더월드에 오르셨다. 그때 그들이 이름 차례를 Jeoun-Dong Ryeo로 적은 책을 보내왔다. 잘못을 짚고 Ryeo, Jeoung- Dong으로 바로 잡아 적도록 했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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