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25) 울산현대자동차 거친 도전
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25) 울산현대자동차 거친 도전
  • 경남일보
  • 승인 2020.06.16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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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앞둔 추락…집념의 재도전으로 정복
사자처럼 버티고 선 안나푸르나4봉 향한 초년병들
1992년 설산서 맞은 추석…멈추지 않은 도전 결실

 
1992년 9월 21일 오후 1시 40분에 정상에 김종섭(왼쪽)과 이대행 대원.
“200m를 추락했다. 그러나 끈질긴 투혼과 집념으로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 4봉 정상에 섰다. 등정의 기쁨보다는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우리의 투혼 앞에 안나푸르나 정상은 우리와의 교감을 허락했다.”-구화집 원정대장.

현대자동차 창립 25주년 기념 원정

울산현대자동차팀은 1992년 구화집 대장(34)을 중심으로 이대행 부대장(27)·김종섭(27)·박종원(25)·김수영(25)·장민석(21) 대원 등 6명이 원정대를 구성했다. 현대자동차 창립 25주년과 자동차 생산 500만대 돌파를 기념하고, 산악회 최초 고산 등반을 위해 원정을 마련했다.

2년을 준비한 원정대는 출국 6개월 전부터 합숙 훈련에 들어갔다. 겨울철 원정훈련 ‘성지’인 한라산과 설악산에서 15박 16일간 땀을 흘렸다. 그들은 1992년 네팔 관광성으로부터 등반 허가서를 받은 원정대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대원 모두가 히말라야를 처음 밟는 초년생들이었지만 열정은 남달랐다.

 
등반에 나선 대원들
멀고도 먼 카라반

8월 22일 서울을 출발, 홍콩을 거쳐 네팔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현지에서 식량과 장비를 구입하는 등 원정을 위한 준비를 모두 마쳤다. 8월 26일 원정대는 버스 2대에 포터 75명과 함께 상행 카라반을 시작하는 둠레로 향했다. 둠레~보우트라 구간은 험준한 산악지대로 지프로 이동했다. 낡은 지프는 앞 유리도 없어 비가 오면 그대로 맞아야 할 정도로 열악했다. 심하게 흔들리는 차에서 포터 1명이 떨어졌지만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다. 카라반 도중 4번이나 차가 고장났다. 긴장의 연속 끝에 늦은 밤 10시 10분 작은 마을 보우트라에 도착했다. 다음날 포터들에게 짐을 분배하고 카라반에 들어갔다. 1주일이 넘는 카라반으로 포터 가운데 환자가 발생했다. 다행히 현지 포터들로 교체해 가며 9월 1일 해발 3900m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했다. 그러나 베이스캠프가 등반 루트와 너무 멀어 전진캠프(ABC·4700m)를 건설키로 했다. 9월 2일 새벽 6시 운행에 나섰다. 전진캠프로 가는 길은 험난하고 위험했기 때문에 포터들은 웃돈을 요구했다. 그들의 뜻을 받아들여 전진캠프로 향했다. 오후 3시 30분 전진캠프에 도착, 식당 텐트와 대원들의 안방 역할을 할 텐트 등 8동이 들어섰다.

‘풍요의 여신’ 품으로

대원들의 눈 앞에는 안나푸르나4봉이 거대한 사자 형상을 하며 우뚝 솟아 있었다. 우측으로는 안나푸르나3봉(7555m), 좌측으로는 안나푸르나2봉(7937m)이 자리잡고 있었다.

9월 4일 안전한 등반을 위한 라마제를 지냈다. 이어 김종섭 대원과 셰르파가 1캠프 건설을 위해 첫 등반에 나섰다. 다른 대원들은 식량과 장비를 점검하며 본격적인 등반을 준비했다. 다음날 이대행 부대장과 김수연 대원이 빙하를 지나 경사가 70~80도에 200m에 달하는 암벽지대와 마주했다. 그들은 하켄과 스노우 바를 적절히 사용하며 고정로프를 설치했다. 5000m를 넘어서면서 힘이 들었다. 그러나 눈 앞에 펼쳐진 세계 8위봉 마나슬루와 강가푸르나 등이 빚어낸 아름다운 풍광은 고통을 잊게 했다. 대원들은 5300m에 텐트 1동을 설치하고 하산했다.

눈이 내리면서 하루를 쉬었다. 9월 7일 김종섭·박종원·장민석 대원이 ABC를 출발했다. 식량과 장비를 잔뜩 넣은 배낭 무게는 20㎏에 달했다. 그들은 800m에 달하는 암벽과 설벽을 넘어 1캠프를 설치했다. 오후부터 진눈깨비가 내려 2캠프로 가는 길이 막혔다. 등반을 못한 기간이 1주일이 넘자 구화집 대장과 대원들은 초조했다.

 
 
 
베이스캠프에 모인 대원들
추석날, 차례 모시고 정상으로

추석인 9월 11일 대원들은 1캠프와 전진캠프에서 비상식 음식으로 차례상을 마련했다. 무전으로 다 같이 절을 하며 조상에게 죄스러움을 표시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풍성한 추석에 빈약한 차례상을 준비해 죄송합니다. 저희들이 무사히 등반하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다행히 9월 14일 날씨가 좋아졌다. 1캠프를 떠난 대원들은 1000m 정도를 전진한 후 20m 설벽을 만났다. 표식기를 꽂으며 설벽을 올라선 대원들은 시커멓게 입을 벌린 크레바스가 수없이 펼쳐진 광경을 보고 긴장했다. 크레바스를 건널 때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불안감이 뇌리를 스쳤다. 대원들은 교대로 러셀하며 고정로프를 설치해 나갔다. 며칠간 노력 끝에 9월 19일 오후 2캠프(6000m)를 설치했다. 정상으로 가는 전초기지가 만들어지면서 대원들은 힘을 얻었다. 그러나 2~3캠프로 가는 구간은 능선과 리지로 이어지는 곳이라 강한 바람을 피할 수 없었다. 포카라 쪽에서 불어오는 돌풍은 강공할 위력을 보였다. 3캠프를 공략하는 동안 대원들은 바람에 곤혹을 치렀다. 위험한 구간을 힘들게 통과한 대원들은 9월 19일 3캠프(6900m)에 텐트 3동을 설치했다. 이제 정상과의 고도는 600m 정도로 좁아졌다.

 
설사면을 오르고 있는 대원들.
얼음 절벽 옆에서 루트를 파악하고 있는 대원들
어둠 속으로 사라진 대원들

구화집 대장은 전 대원을 1캠프로 집결시켰다. 그는 정상 공격조를 결정했다. “3인 1개조를 공격조로 편성했다. 1차 공격조는 이대행·김종섭·박종원 대원이며 21일 정상 공격한다. 2차 공격조는 나를 비롯해 장민석·김수연 대원이 22일 공격을 개시한다.”

9월 21일 새벽 3시 30분 이대행·김종섭 대원과 셰르파 빌바드가 출발했다. 박종원 대원은 고소 증세로 2차 공격조와 함께 가기로 했다. 라면 국물만 간단히 마신 그들은 새벽 4시 30분 마지막 캠프를 나섰다. 달빛과 별빛이 빛나고 있었다. 헤드랜턴이 그들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었다. 정상으로 가는 동안 컨디션도 좋았고 날씨도 쾌청했다. 등정도 무사히 마칠 것으로 확신했다. 오전 10시 30분 설사면과 대형 커니스를 통과해 정상 앞 전위봉에 도착했다. 강한 바람으로 기온은 영하 27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순조롭게 전진하던 공격조는 7400m에서 큰 고비를 맞았다. 정상을 불과 100m 남겨둔 상황이었다. 설사면을 오르던 3명은 갑자기 아래로 ‘쑥’ 내려갔다. 설사면이 무너진 것이다. 대원들은 누가 떨어졌는지 확인할 틈도 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설릉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오르고 있는 박종원 대원
200m 이상 추락…다시 정상으로

이대행 부대장은 당시를 회상했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조심스럽게 헤쳐 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몸이 추락했다. 피켈을 눈에 꽂으며 제동을 걸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시간이 흘렀다. 차가운 눈이 얼굴에 떨어지면서 정신을 차렸다. 옆에 있던 김종섭 대원도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셰르파도 정신을 차렸다. 다행히 경사가 완만한 곳에서 추락이 멈춘 것이다. 정말 천운이었다. 아래를 보니 수백 m 낭떠러지였다. 만약 계속 추락했다면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200m 이상을 추락했다. 이대행 부대장은 사고 소식을 구화집 대장에게 알렸다. 소식을 접한 구화집 대장은 말했다. “다시 눈사태가 일어날 수 있으니 잘 살펴라. 잘 판단해서 정신을 가다듬고, 신중하게 움직여라. 안전한 루트를 찾아 최선을 다하라.”

이대행 부대장이 선두에 섰다. 셰르파가 눈사태로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1시간 30분 동안 올라 추락하기 전 지점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정상으로 향했다. 그들은 3캠프를 출발한 지 9시간 만인 오후 1시 40분 정상에 섰다. “여기는 정상이다!” 등정조는 3캠프에서 애타게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구화집 대장에게 무전을 보냈다.

 
1_2캠프로 가는 길목 크레바스 옆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대원

원정대는 모두 등정의 기쁨을 만끽했다. 정상에서 촬영을 마친 대원들은 하산을 시작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내려오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그들은 넘어지고 미끄러지기를 반복하며 저녁 6시 30분 3캠프에 도착했다. 말 그대로 파김치가 된 상태였다.

구화집 대장과 대원들은 전체 회의를 가졌다. 2차 정상 공격에 대한 것이었다. 구화집 대장과 대원들은 결국 2차 등정을 포기했다.

구화집 대장은 말했당. “1차 공격조가 눈사태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다. 같은 구간에서 눈사태가 다시 일어날 경우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2명의 대원이 정상을 밟은 것은 모두가 만족하자. 안전하게 하산해 더 의미 있게 원정을 마무리하자.”

현대자동차산악회는 직장 산악회로서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고 최초로 히말라야 등반에 성공하며 귀국길에 올랐다.

박명환 경남산악연맹부회장·경남과학교육원 홍보팀장

 

<격려사>

창립 25주년!

어느덧 청년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도 청년은 활력있고 도전이듯이 바로 우리 회사가 그렇게 정열적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회사는 과거 전통을 되살려 21세기의 비전인 GT-10의 달성을 위한 일환으로 바로운동 전개를 대대적으로 펴나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 산악회에서 직장 단일팀으로는 최초로 온갖 어려운 여건을 무릅쓰고 저 히말라야의 ‘풍요의 여신’인 험난하기로 유명한 안나푸르나4봉(7525m) 원정을 하게 된 것을 참으로 장하고 괄목할만한 일이 아닐 수 없기에 뜨거운 찬사를 보내는 바입니다.

이번 안나푸르나 원정은 우리 산악회의 영광은 물론 현대 맨의 크나큰 영광입니다.

자연은 아름다움을 창시하고 산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며, 또한 즐거움과 평화 그리고 안식처를 제공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위험이 뒤따르고 있음을 잊지 마시고 우선 안전과 건강에 각별히 유의하여 최악의 역경에서 한없는 고통이 닥쳐와도 오직 알피니즘 정신으로 험난한 안나푸르나 정상에 우리의 사기(社旗)가 힘차게 휘날릴 수 있도록 분투, 노력하여 주실 것을 간절히 바랍니다.

이제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신념과 용기로서 도전한다면 안나푸르나4봉도 우리 품안에 안길 날이 멀지 않다고 봅니다.

아무쪼록 원정대의 영광과 신의 축복이 함께 하길 기원하면서 격려사에 갈음합니다.

1992.8.

현대자동차(주) 산악회 회장 황규홍

발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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