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진
가족사진
  • 경남일보
  • 승인 2020.06.21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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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란 (수필가)

 


어머니는 가족사진을 한 집안의 가훈이나 덕목만큼 의미를 크게 두었다. 문지방 위에는 흑백 사진이 환히 웃고 있다. 갓을 쓴 할아버지와 머리를 쪽지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 그 중심으로 자손들이 줄지어 서 있다. 옛 시골 외할머니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삼대가 어우러진 자리는 어른이 자손들에게 화목을 일러 주는 덕목의 자리로 충분했다.


어릴 적 단란했던 가족사진이 작은 액자 속에 있다. 낮은 기와집 마당을 중심으로 미닫이 현관문이 두 짝 보인다. 오른쪽으로 두 발 떼면 두레박으로 퍼 올리는 우물이 아련한 영상으로 스쳐 간다.

중학교에 입학한 큰오빠가 뒷짐을 진 채 교복 모자를 쓰고 의젓하게 서 있다. 또래의 덩치보다 키도 크다. 동생들을 뒷바라지하느라 홀쭉하게 작아진, 스물아홉에 세상을 떠난 오라버니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삼십 대의 고운 어머니는 돌 지난 아기를 안고 있다. 토실한 볼에 두 팔을 쭉 뻗고 있는, 한 마리 비둘기의 평화로운 날갯짓이다. 넥타이를 단정히 맨 어깨가 곧은 아버지 앞으로 한복을 입은 큰언니, 작은오빠, 작은언니가 있다.

불혹을 넘기고 홀연히 사라진 아버지.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우리 식구는 가족사진과 멀어졌다. 먹고 살기 급급하여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어머니 형편은 농사일 외에는 모든 게 시답잖은 일이었다.

큰이모 집 벽면에 걸린 가족사진은 어머니의 눈길을 지그시 머물게 한다. 손자들을 앞세우고 이모 이모부, 이종형제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화목한 정경이다. 오라버니의 죽음 이후 백발이 된 어머니는 가족사진 대신 큰오빠의 명함 사진을 인물화로 그려 영정 사진으로 고이 두었다.

요즈음은 스마트 폰이나 컴퓨터 메인 화면에서 손쉽게 가족사진을 볼 수 있다. 근간에 가족사진을 찍었다. 시집간 딸애가 손자 손녀를 위하여 마음먹고 사진관에 예약했지만, 직장 일로 바쁜 아들과 사위는 빠져 있다.

아들 고등학교 졸업식 날이었다. 중국집에서 자장면과 탕수육을 먹고 졸업 기념으로 가족사진을 찍으러 가던 날, 하필이면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한 번 시기를 놓친 후 지금까지 제대로 된 가족사진을 찍어 두질 못했다. 아들이 결혼하면 ‘가족사진’을 눈부시게 찍을 수 있을까. 화목이라는 덕목을 품은. 손주를 앞세우고 한 폭의 풍경화가 완성되는 즐거운 상상을 한다.

두 살 적 가족사진은 세상에 하나뿐인 살아 숨 쉬는 수묵화로 귀하고 소중하다. 어머니의 애잔한 마음 한 자락 초승달이 되어 나뭇가지에 걸린다.

허정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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