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콩나물 예찬
[경일춘추]콩나물 예찬
  • 경남일보
  • 승인 2020.06.25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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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대 (수필가)
 

 

콩나물만큼 만만하면서 우리 식탁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 있을까. 콩나물은 일반가정에서 손쉽게 길러 필요할 때마다 나물이나 국으로 요리해 먹을 수 있지만 제대로 기르려면 의외로 손이 많이 간다. 구멍이 뚫린 커다란 항아리를 짚이나 솔가지 태운 불과 연기로 그을려 소독한 다음 똬리를 만들어 구멍을 막고 충분히 물에 불린 콩 몇 줌을 골고루 놓은 후 적당히 습기가 유지되도록 수시로 물을 준다. 검정색 보자기로 빛을 차단하고 춥지 않을 정도의 온도를 유지해주면 노란색 콩나물이 먹음직스럽게 자란다.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콩나물시루가 부엌 구석이나 마루 한쪽 귀퉁이를 붙박이 차지하고 있는 집이 많았다. 대부분 집에서 콩나물을 길러 먹었어도 자칫 기르는 시기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필요한 때 너무 어리거나 혹은 웃자라 낭패를 당하기도 했다. 물만으로 기를 수 있기는 하지만 식감 좋고 맛있는 콩나물은 정성이 필요하다.

콩나물은 여러 면에서 서민들 삶을 닮아있다. 좁디좁은 시루에서 틈 없이 모여 자라는 모습이 그렇고 쓰임새 또한 마찬가지다. 읍내서 멀리 떨어진 산골에 갑자기 손님이라도 들이닥치면 기르는 콩나물마저 없어 염치불구하고 옆집에서 빌려다 먹기도 했다. 잔뿌리 없이 통통하게 길러낸 콩나물은 먹음직하기도 하지만 안주인의 빈틈없는 살림솜씨를 보여준다. 예전엔 비료나 유해농약으로 기른다는 소식도 심심찮았으나 값싸면서 쓰임이 다양함은 채소 중 최고였다. 나물로 먹기도 하고 국을 끓여도 좋다. 해산물을 이용한 찜이며 육(肉)고기 탕(湯)에도 널리 쓰인다. 숙취나 속 쓰림을 달래는데 콩나물국만한 것이 없다. 가벼운 감기에는 고춧가루를 듬뿍 푼 뜨거운 국이 제격이다. 외국인들 중에는 이런 콩나물 음식을 신기해하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한다. 값싸고 영양가 높은 콩나물은 선조들 지혜로 만들어진 자랑할 만한 음식문화다.

콩나물시루하면 도심의 신산한 삶이 떠오르고 대중교통의 복잡함도 연상된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콩나물시루 세대다. 그 시절은 교실도 콩나물, 버스도 콩나물에 마을마다 아이들도 콩나물같이 자랐다. 골목길 반찬가게는 어느 곳 할 것 없이 콩나물시루가 놓여있고 손님이 달라는 대로 뽑아서 팔았다. 두부 한 모에 콩나물 한 봉지면 웬만한 찬거리로 충분했던 시절이었다. 간만에 재난지원금으로 콩나물을 마음껏 샀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쇠고기를 다 사먹었다는 말이 회자(膾炙)되는 것을 보니 물가담당 공무원이 뜬금없이 비싸진 콩나물 가격을 변명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격리와 실직의 시대, 지금은 콩나물마저 만만하지 않은 서민도 있다.

이덕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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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 Cho 2020-06-30 09:50:37
저 어렸을적에도 윗목에 늘 콩나물 시루가 있었죠.
볏짚을 잘태워서 시루에 넣고 노란 콩을 뿌린뒤 매일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면 무럭무럭 자랐죠.
어머니께서 무쳐주시던 그 콩나물 무침맛.
지금은 찾기가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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