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31]기차는 간다
강재남의 포엠산책[31]기차는 간다
  • 경남일보
  • 승인 2020.07.1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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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간다/허수경

기차는 지나가고 밤꽃은 지고
밤꽃은 지고 꽃자리도 지네
오오 나보다 더 그리운 것도 가지만
나는 남네 기차는 가네
내 몸속에 들어온 너의 몸을 추억하거니
그리운 것들은 그리운 것들끼리 몸이 먼저
닮아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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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알면서 알 수 없는 것이 많아 생각 속에서 나를 빼내고 싶은지 모를 일이겠어요. 떠나는 사람은 알았을까요. 떠난 자리가 푸름이었다는 걸, 희미한 푸름이 그리움이었다는 것을요. 밤을 질러 깨어 있어본 사람은 알겠지요. 절절한 고독에 대하여. 세월 따라 나는 갑니다. 하지만 내가 없어도 세계는 존재하니 결국 나는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은 것이 될 일이겠어요. 유한한 것들이 사라질 때 남는 것이 그리움이어서 다행입니다. 부재에서 생겨나는 그리움은 감정의 가장 연한 부분일 테지요. 이런 감정을 오롯이 느끼며 살아야 하는 생이 고달프지만 말이지요. 그리하여 나는 갑니다. 너를 두고 기어이 갑니다. 이승의 경사면을 감싸며 은하로 떠납니다. 삼백 예순 날은 고독할 일이고 나머지는 잊어야 할 일일 때, 모든 것 털어버리고 그냥 갑니다. 나는 가고 나를 기억하는 당신만 남겠네요. 별이 빛나는 날은 내 몸에 별을 들이겠어요. 우주에 꽃이 피어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주정거장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어요. 분화구 많은 몸의 뒷면을 아프지 않은 척 당신에게 보이고 있을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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