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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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0.07.16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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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교육계의 별 허만길 박사의 살아온 길(4)
허만길 박사는 ‘우리말 사랑의 길을 열면서’(2003. 문예촌)에 ‘외솔 최현배 박사외의 만남 회고’글을 실었다. 이 글을 소개하는 것이 허 박사의 발자취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허박사에게는 스승인 분과의 관계를 말하는 자리에서 ‘허 박사’라고 지칭하는 것이 어색하다. 필자는 그냥 이름으로 회고글을 줄여 그 관계를 보여주고자 한다.

허만길이 외솔 최현배 박사를 뵙게 된 단초는 한글학회 이사장이던 최 박사께서 18세에 중학교 교원 자격증(국어)을 받게 된 허만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실로부터였다. 최 박사는 거의 해마다 중등학교 교원자격검정고시 출제위원이었는데 허만길이 시험을 치던 해(1960년)에는 고등학교 시험에만 관여했기 때문에 그해 당장 최 박사께서 허만길을 알지는 못했다. 그후 1962년(19세) 3월 28일 최현배 박사의 편지를 받았다. 그때 허만길은 부산중앙초등학교 교사시절이었다. 편지는 다음과 같다.

“허만길군. 그대가 진주사범 재학중 17살로서 중학교 교원자격고사에 응시하여 합격되었다 하니, 참 한글공부에 대한 취미와 재질을 깊이 찬양합니다. 장차 어떠한 길을 밟아 갈 예정인지는 모르겠지마는, 나는 그대를 한 번 만나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니, 한 번 서울로 올 수 없을까요? 어느 토요일에 와서 일요일 서울을 떠나서 학교로 가면 되잖을까요? 내가 부산 가는 길은 별로 없고 보니, 이렇게 그대의 상경을 청하는 것이오. 여비는 걱정 마시고 회신을 바랍니다. 이만 그침, 1962년 3월 26일 최현배 ”

이 글이 허만길에게 준 편지였다. 다른 사람들이 잘 쓰지 않는 초록색 잉크로 쓴 글이었다. 허만길은 3월 29일자로 답장을 올렸다. 4월 7일 토요일, 서울로 가서 박사님을 뵙고 4월 8일 부산으로 돌아오겠다고 썼다. 그러자 최박사께서는 4월 2일자로 허만길에게 글을 보내셨다

“허만길군. 3월 29일의 그대 편지는 반가이 받아 읽었소. 오는 7일 오후 2시 서울로 오겠다니 그리 기다리고 있겠소, 서울역에 나와서 곧 택시를 타고 (보통 500환이면 우리집까지 오게 됨) 우리 집까지 오기를 바라오. 그것이 가장 편리하겠소. 택시 운전수에게 ‘신촌 이화여대 앞 네거리까지 간다, 거기서 200미터를 남쪽으로 간다’고 하고서, 철길 가를 해서 오면 될 것이오. 만약 그대가 서을길이 익으면 신촌 가는 합승차(100환)나 버스(100환)를 그 정거장 앞에서 탈 수도 있지요. 다음에 우리 집을 가리키는 그림을 보이니, 참고로 가지고 오면 좋겠소. 1962년 4, 2 서울 마포구 대흥동 13- 24/최현배 ”

최현배 박사는 이렇게 글을 쓰고는 다른 종이에 이화여대 네거리에서부터 자신의 집에 이르기까지 버스 내리는 곳, 택시 내리는 곳, 집 가까이 있는 고압 전신주(쇠기둥 넷으로 된 높은 전주), 집의 골목길 뒷문 (검정 판장으로 된 문, 거기에 설릉줄이 있으니 흔드오) 등을 초록색 잉크와 붉은 색 잉크로 그림과 함께 자세히 표시하였다. ‘설릉줄’은 판장문에 긴 줄을 매어 골목애서 그 줄울 흔들면 집 뒤편 현관에 달린 요령이 울리도록 되어 있는 것을 뜻했다.

4월 7일 아침 7시 30분에 부산역에서 무궁화호 기차를 탔다. 서울역에 내리니 비가 많이 내렸다. 신촌행 합승을 탔다. 당시 대흥동은 시골처럼 한적했다. 그려 주신 약도대로 찾아가 골목길 뒷문의 설릉줄을 흔들었다. 집일을 보는 처녀가 나와서 니를 집 뒤편 현관으로 안내했다. 현관에서 벨을 누르니 한복을 입은 할아버지가 나오셨다. 예순 여섯의 박사님이었다.

“허군이오?” “네” 나는 낮은 책상에 원고가 놓인 방으로 안내되었다. 박사님은 원고 쓰기에 몹시 바쁘시구나 하는 생각이 얼른 들었다. 큰 절을 올리고 나니 박사님은 허만길에게 많은 것을 물으셨다. 서울에 와서 대학공부를 하겠다면 힘껏 도와 주겠다고 제의하셨다. 허만길은 연세 많으신 부모님의 외아들로서 직장을 그만 두고 부모 곁을 멀리 떠나올 수가 없다고 했고, 큰집에는 할머니 그리고 슬하에는 아무도 없는 큰아버지 큰어머니가 계시는데 저마저 직장도 없이 멀리 떠나 있게 된다면 여간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저 자신 12살 중학교 시절부터 고학을 하다시피 자립적으로 살아왔는데 다른 사람들애개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우선 부산에서 야간 대학을 다니고 그 다음 일을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겠다고 했다. 최박사께서는 한글 연구에 어울리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자를 찾기 어려운데 허만길이 박사님의 뒤를 이어 주었으면 한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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