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더 넘어올라”…잠 못든 진주 내동 양옥마을
“물 더 넘어올라”…잠 못든 진주 내동 양옥마을
  • 백지영
  • 승인 2020.08.09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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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댐 사천만 방류량 늘린 여파…“안내도 없어” 답답
오전에만 9채 침수로 대피…밤 10시께 10여곳 추가 침수
주민 “이렇게 많이 잠긴 건 처음”…항의방문 나서기도
8일 오후 11시 30분께 진주시 내동면 삼계리 양옥마을. 마을로 들어서는 좁다란 길 입구에 통행 금지선이 세워져 있다.

그 앞에 쪼그리고 앉거나 선 열댓 명의 사람들은 노란 금지선 넘어 파도처럼 철썩거리는 물을 손전등으로 비춰보며 오늘 밤을 어떻게 지새워야 하나 걱정에 여념이 없었다.

양옥마을은 남강댐이 대부분의 물을 방류하는 사천만 제수문에서 입구 기준 직선거리 280m의 마을이다.

이 마을의 침수는 집중호우로 수위가 늘어난 남강댐의 방류량이 상향된 데 따른 것이다.

한국수자원공사(K-water) 남강지사는 이날 오전 8시부터 남강댐 사천만 방면 방류량을 초당 5000t, 오전 10시부터는 5400t으로 늘렸고 남강 본류인 진주 방면으로는 오전 10시부터 초당 600t의 물을 방류했다.

남강댐 사천만 방면으로 초당 5400t의 물이 방류된 것은 2002년 태풍 루사 때 이후 처음이고, 진주방면으로 600t의 물이 방류된 것은 남강댐 운영 이후 최초다.

이날 양옥마을은 오전 8시께 마을 안쪽 애안골 9가구가 침수돼 15명이 소방서 보트 등을 이용해 고지대 경로당으로 대피했다. 수위는 오후 2시께 정점을 찍고 줄어드는 국면을 보였지만, 오후 10시께 물이 급격하게 불어올라 역대 최고치를 찍으면서 주민 20여 명이 거주하는 마을 입구 주택 10여 곳이 추가로 잠기는 이중고를 겪었다.

이날 낮 현장을 지켜본 면 관계자, 한국수자원공사 관계자, 경찰 관계자 등은 다시 수위가 불어날 것을 예측하지 못하고 모두 철수한 이후였다.

잠에 들 시간, 갑자기 차오른 물에 어쩔 수 없이 나온 주민들은 막막함을 호소했다.

인근 가족 집으로 대피한 주민이나 다른 동네 경로당으로 피신한 고령의 어르신도 있었지만, 열댓명의 주민들은 물이 더 차오르면 어쩌나 걱정스러운 마음에 이곳을 떠나지 못했다.

이 마을 주민 강천석(67)씨는 “낮에 방문해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던 여러 인사는 야밤에 마을이 갑자기 추가로 침수돼 혼란스러운 지금은 코빼기도 안 보인다”며 “물이 다시 차오른 지 1시간이 되도록 어디로 대피해야 되는지 안내해주는 사람 하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마을회관이 침수되고, 다른 가구들이 사는 마을 안쪽은 아예 도로가 잠겨 고립된 탓에 마을 입구에 사는 이들로서는 마음 편히 몸을 누일 곳이 없기도 했다.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신윤진(69)씨는 “물이 들어차기 시작하면서 냉장고 등 집기류 전기 코드를 뽑아뒀지만 물에 둥둥 떠다녔다”며 “냉장고는 물론 내부 식자재들도 다 버려야 할 처지”라고 했다.

십수 년 된 장들이 담겨있는 장독대들이라도 사수하려고 몸으로 막아서 봤지만 끝내 깨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양옥마을은 지리적 특성상 집중호우로 방류량이 많은 시기에는 마을 일부 도로가 물에 잠기곤 하는 곳이지만, 이번 같은 주택 대거 침수는 토박이에게도 낯선 광경이다.

이 동네 토박이인 강씨는 1987년 이후로 마을이 이렇게 많이 잠긴 것은 처음 본다고 증언했다. 1987년은 광복 이후 국내에서 3번째로 많은 인명 피해(345명)를 발생시킨 태풍 셀마가 기상청의 예보와 달리 남해안을 강타했던 해다.

주민들은 “비가 많이 쏟아지는 자연재해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남강댐 물 방류는 사람이 하는 것인 만큼 이번 마을 침수는 인재”라고 입을 모았다. 이 마을이 침수 위험 지역에 있는만큼, 방류량을 늘리기 전에 미리 마을 주민들을 직접 찾거나 방문을 통해서 대피하라고 안내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민들이 이날 여러 차례 한국수자원공사 남강지사를 찾아 철문을 두드리며 항의한 이유다.

이날 자정께 현장을 살펴보러 나온 한국수자원공사 남강지사 관계자는 주민들에게 “댐 수위가 한계에 이르러 방류량을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서 “방류량이 루사 때와 같은 수준이라 마을이 이렇게까지 잠길 줄은 몰랐다”고 설명했다.

한국수자원공사 남강지사 운영부 관계자는 9일 통화에서 “양옥마을 침수 예상 여부 등 세부적인 예측 상황은 공개하기 힘들다”면서 “법에 따라 방류량 증가 3시간 전에 통보 알림을 신청한 시민이나 관련 기관 등에 관련 안내 문자를 발송했다”고 밝혔다.

한편 9일 오전 차오른 물이 전부 빠진 양옥마을은 물에 떠밀려온 컨테이너, 냉장고, 싱크대, 나무 등 폐기물이 길가에 널려 있는 상태였다.

진주시 청소과 직원을 비롯해 진주시 자원봉사단체협의회, 생활개선회, 진주 남부농협 등에서 나온 자원봉사자들과 공군교육사령부와 육군 39사단 진주대대 장병 등이 현장을 찾아 마을 복구를 도왔다.

이날 봉사에 참여한 정 모(55)씨는 “20여 년 진주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해왔지만 이렇게 마을 전체가 수해로 초토화되는 것은 처음 본다”며 “마을 주민들이 빨리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진주 내동면지역 마을 일부가 침수되면서 주민들이 밤늦게까지 귀가하지 못하고 삼삼오오 모여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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