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참으로 우울하다. 그러나…
[경일칼럼]참으로 우울하다. 그러나…
  • 경남일보
  • 승인 2020.08.2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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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홍 (경상대 인문대학 국문학과 교수)

 

우울하다. 술잔을 기울이면서 탄식이라도 하고 싶다. 정말 올해처럼 장마가 길었던 적이 언제 있었던가.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이 추억처럼 낭만을 불러오고 창을 때리는 빗소리가 번뇌를 씻어 내리듯 시원한 비도 있었다. 올해 비는 그야말로 ‘지긋지긋하다’도 모자라 진짜 ‘진절머리가 난다(표준어는 진저리나다)’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도시가 온통 물에 잠겨 집안 가재들과 가게의 상품들은 펄물에 나뒹굴고 애써 가꾼 농작물들은 하루아침에 망쳐놓았다. 하늘을 보고 원망하고 탄식해도 소용없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19라는 난데없는 돌림병으로 모두 입마개를 하고 살면서 우울한 데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것뿐이랴. 이 난리 통에 위정자들은 또 권력 싸움질로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으니 어찌 우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온 국민이 우울증에 걸릴 판이다.

지금처럼 우울한 상태를 수액의 과다로 해석한 사람이 바로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였다. 그는 인간의 기질을 네 가지로 나누고 그 기질은 체액의 과다로 해석하였다. 즉, 혈액·점액·황담즙(黃膽汁)·흑담즙(黑膽汁)이다. 그는 이들 네 가지 액(液)의 조화(調和)를 이루지 못하면 병에 걸린다고 하였다. ‘우울하다’라고 하는 영어 ‘멜랑콜리’는 그리스어의 멜라이나(melaina) 또는 멜랑(melan, 검다)과 콜레(choly, 담즙)의 합성어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가 말한 체액에 의한 네 가지 기질을 보면 담즙질이 많은 사람은 급하고 화를 잘 내며 적극적이고 의지가 강하고, 흑담즙질(우울질)이 많은 사람은 신중하고 소극적이며 말이 없고 상처받기 쉬운 비관적인 기질이라고 한다. 또한 피가 많다고 하는 다혈질은 쾌활하고 밝으며 순응적·타협적이며 기분이 변하기 쉽고, 점액질이 많은 사람은 냉정하며 근면하고 감정의 동요와 변화가 적고 무표정하며 끈기가 있다고 한다. 우리는 어디에 속할까. 그런데 오늘날 ‘우울하다’를 영어 구어에서는 푸른색인 블루(blues)라고 한다. 온 나라가 푸른색으로 가득하다. 무슨 뜻인지 알지도 못하는 코로나블루, 부동산블루, 장마블루 등등이다. 왜 우울을 블루라고 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푸른색을 심리학적으로 우울한 색으로 본 것이거나 예수가 죽었을 때 마리아가 푸른색 옷을 입고 슬픔을 나타냈다고 하는 설도 있다. 우울한 사람은 푸른색을 좋아한다고 하니 피카소가 우울한 시절인 젊었을 때 푸른 그림을 많이 그렸다고 한 것과 관계가 있는 듯도 하다. 또 한자어 우울(憂鬱)의 자형을 보면 흥미롭다. 憂는 머리 위에 무거운 것(멱)을 올려놓아 마음(心)을 짓누르고 가슴을 움켜쥐고 있는 형상이다. 그리고 鬱은 나무(林)가 빽빽하여 답답해 숨을 쉴 수가 없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우울은 머리에 가득한 근심이 마음(心)을 눌러 가슴을 쥐어짜고 가슴이 답답함을 나타내는 형상이니 오늘날 우리가 겪는 우울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도, 경제도, 코로나도, 폭우도, 또 몰아치는 폭염도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그래도 어쩌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별로 없다. 그럴 바엔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든지 아니면 내 마음을 닦아 내가 바뀌든지 할 수밖에 없다. 권력 싸움에 나가 같이 싸울 수도 없고, 집 한 채 수십억 원 하는 부동산도 남의 나라 이야기인 것 같고, 폭우도 폭염도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나가리니. 이럴 때일수록 밖으로 박차고 나가 숲속 산을 오르거나 둘레길이라도 걸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땀이라도 흠뻑 흘리고 시원한 찬물에 몸을 담는 것, 그리고 찬물 한 모금 꿀꺽 마시는 이것보다 더 큰 행복이 있을까. 우울은 더 깊은 우울로 빠져들게 하고 심신을 피폐하게 하는 악성 바이러스니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 세상살이 별거 더냐. 마음 가는 대로 살다 보면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모두 무기력해지지 말고 힘내 당당하게 살아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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