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진주교방문화와 남북 교류
[경일포럼]진주교방문화와 남북 교류
  • 경남일보
  • 승인 2020.08.27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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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규/진주향당 상임고문
교방문화(敎坊文化)는 기생문화(妓生文化)가 아니다. 기생문화는 일본 군국주의에 만들어진 산물이며, 일본의 저급한 유곽문화가 그 뿌리이다. 당시 예기(藝妓)들의 신조와 원칙은 ‘노래는 팔지언정 몸은 팔지 말라(賣唱不賣淫)’였다. 교방문화를 기생문화로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행위는 즉각 중단되어야 마땅하다. 교방문화의 뿌리는 결코 일본의 유곽문화가 아니기에 그렇다.

교방은 고려시대부터 427년 동안 국립 음악기관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했으며, 예기(藝妓)들의 필수 과목인 시서화(詩書畵)와 악가무(樂歌舞)의 교육을 관장했다. 조선 초기에 설치된 악학도감과 장악서를 계승한 장악원(掌樂院)이 고종 광무 1년(1897) 교방사로 이어졌고, 고려시대 당악정재·향악정재를 연주했던 교방악의 전통을 이은 여악(女樂)이 1905년 폐지되면서 교방문화의 역사가 사실상 끊어졌다.

근·현대를 거치면서 이른바 기생문화라는 그릇된 인식의 확산에 의해 전통문화예술을 계승해 온 교방문화가 이 땅에서 소멸되다 시피 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더불어 교방문화의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천착이 부족해 교방문화가 가진 문화·예술적 가치가 과소평가되어 온 것은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교방문화의 전승과 보전에 대한 노력은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의 굴곡을 벗어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교방문화가 갖고 있는 예술사적 가치에 대한 재평가 역시 인색하다. 교방문화가 갖고 있는 예술사적 가치보다는 기생문화라는 부정적인 인식에 매몰돼 접근조차 꺼려한다. 일각에서는 교방문화가 성평등 문제 유발의 가능성과 기우까지 내비친다. 한심한 일이며, 이는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에 동조하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은 교방문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과 문화·예술적 가치에 대한 재평가는 물론 교방문화의 전승과 보전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남부내륙고속철도시대를 대비한 진주발전전략의 하나로 진주교방문화의 활성화가 대두되었다. 전국적으로 교방문화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 진주이다. 전국 교방문화의 본산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따라서 진주교방문화단지 조성 등을 통한 교방문화의 전승과 보전은 물론 교방문화의 산업화를 통한 지역경제활성화라는 밑그림을 그리는 일 역시 시급하다.

정작 문제는 진주교방문화 활성화에 대한 지자체와 정치권의 의지부족이다. 진주검무를 비롯한 전통예술 자원과 교방냉면과 같은 교방음식을 활용한 진주관광자원화 차원에서 볼 때, 어느 것 하나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 무관심하다. 어쩌면 교방문화에 내재된 그릇된 부정적인 인식을 극복할 의지가 부족하다는게 맞을지 모른다. 도전 없이는 극복은 없다. 진주교방문화가 가진 해묵은 과제이다.

경남도에 진주교방문화와 평양교방문화의 남북문화교류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 적이 있다. 진주와 평양은 교방문화 뿐 아니라 인문·역사학적으로 비슷한 자원을 지니고 있다. 진주검무와 평양검무, 진주냉면과 평양냉면, 진주 의기 논개와 평양 계월향, 진주 촉석루와 평양의 부벽루, 진주 남강과 평양 대동강, 임진왜란 제1,2차 진주성전투와 평양의 제1,2차 평양성 전투 등 문화·역사적으로 남북교류의 조건을 완벽히 갖추고 있다.

경남도가 경남의 문화·예술을 중심으로 하는 지자체간 남북교류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진주의 교방문화가 경상남도 주도의 남북문화교류의 출발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진주교방문화는 충분한 자격이 있다. 경남도의 관심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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