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25)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25)
  • 경남일보
  • 승인 2020.09.2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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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교육계의 별 허만길 박사의 살아온 길(10)
 
*4월 25일 드디어 진주시내 각 고등학교 운영위원장(학생회 위원장)들이 약속한 시각이 되었다. 허만길 위원장은 ‘민주주의 만세’ 어깨띠와 운영위원장이라고 새긴 완장을 둘렀다. 허만길은 오전 9시 운동장의 단상에 올랐다. 전교 12학급 600여명의 학생들이 긴장 속에 기백이 넘쳤다. 허만길 위원장은 여러 고등학교 학생회 연합으로 시위하지 않을 수 없는 위기적 상황에까지 이른 배경을 간결하게 말했다. 질서를 존중하면서 애국과 정의를 한껏 외치자고 했다.

학생들의 함성이 터졌다. 위원장이 맨 앞장을 서고 대대장이 뒤따랐다. 어깨띠를 두른 학생, 팻말을 흔드는 학생들이 각자의 역할을 했다. 9시 40분경 시위대는 진주경찰서 정문 앞에서 멈췄다. 허 위원장과 참모들이 경찰서 현관에 들어섰다.총을 들고 긴장했던 경찰들이 허만길 일행을 에워쌌다. 이때 허위원장은 경찰서장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경찰은 순순히 허 위원장을 서장실로 안내했다.

류사원 경찰서장(22대 총경)은 침착하고 온순하고 점잖아 보였다. “우리들이 시위에 나선 것은 서장님도 잘 아실 것입니다. 오늘은 진주사범학교 학생들뿐 아니라 시내 모든 고등학교 학생들이 같은 시각에 시위를 시작한 것도 이미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나라와 국민과 진주를 사랑하는 우리들은 질서 있게 우리의 주장을 내세우기로 했습니다. 결코 총을 쏘는 것이나 폭력에 의한 충돌이 없었으면 합니다.” 서장은 조용히 생각을 가다듬는 듯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소.”서장의 이 대답에 허위원장은 안심이 되었다.

4월 25일 진주의 시위대 가운데 경찰서장을 만난 것은 진주사범학교 시위대였는데 취재 기자들은 진주고등학교와 진주농림고둥학교 시위만 보도하교 진주사범, 진주여고, 해인고교, 대아고등학교 시위는 빠트렸다. 게다가 동아일보는 4월 25일의 시위 보도에서 학생 데모대는 시간이 갈수록 증가되고 진주사범학교 학생들도 동교 교정에 집결 중에 있다고 했는데 이는 틀린 보도였다.

진주경찰서에서 나온 허위원장은 학생들과 함께 북쪽 비봉산 쪽으로 시가 행진을 했다. 가는 길에 남쪽으로 행진해오는 진주여자고등학교 시위대와 마주쳤다. 사범학교 시위대는 진주중학교와 금성초등학교 근처에서 방향을 동쪽으로 돌렸다. 법원 로터리에 이르러 방향을 다시 남쪽으로 돌려 시내에서 가장 넓은 도로를 행진하며 구호를 외쳤다. 진주극장 쪽으로 행진했다. 길가에 수많은 시민들이 두 팔을 들어 만세를 외쳤다.

사범 시위대는 진주극장 앞 광장에서 한 자리에 모였다. 시장 입구 경전여객의 버스에 탔던 사람들도 버스에서 내려 시위대와 마음을 함께 했다. 그 자리에서 허만길 위원장은 <선언문>을 낭독했다.

“학도여! 우리가 갈망하는 자유와 민주와 정의와 평화를 반드시 우리 손으로 자손만대에 물려 줍시다. 그래야만 애국 애족으로 몸 바친 뭇 선열들도 우리를 자랑스러워 할 것입니다. (중략) 하고여 동포여! 조국과 만족의 새 길이 창창히 열릴 때까지 쓰러진 동포에게 따뜻한 동포애를 발휘하면서 우리의 의로운 길을 귿세게 굳세게 나아갑시다!”

이날 대대적인 시위에는 진주농과대학과 해인대학 학생들도 참여했다. 민주당원들과 수많은 시민들이 함께했다. 인원은 적어도 5000명은 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동아일보는 12시 현재 1만 명을 넘는다고 했다.

*60년 4월 25일 석간 철통 같은 경비로 3·15이후 1개월 동안 꼼짝 못하던 진주의 학생들은 25일 사오 9시 드디어 울분을 터뜨려 진주농대, 진주농림고, 진주고등학교 학생 1000여명이 이를 따르는 수만 군중의 박수 호응을 받으며 질서정연한 데모를 전개하고 있다

*4월 26일 학생회 연합시위 계속. 시내 각 고등학교 연합시위는 이날에도 계속되었다. 이날은 중학생들도 단체로 합류했다. 초등학교 학생도 선생님과 함께 참가하는 모습이 보였다. 모금함을 들고서 전국에서 사망하고 부상한 민주시민을 돕자는 운동을 겸했다.

*부산일보 1960년 4월 27일 진주 김 시장, 시민 앞에서 사임서 낭독. 한편 진주시장은 이틀전 25일 학생 데모대 앞에서 3·15 정부통령 선거가 부정선거였다고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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