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충규
[강재남의 포엠산책]충규
  • 경남일보
  • 승인 2020.09.27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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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규 /최은묵



봄을 버리러 갑니다 헛디딘 것이 페달뿐이겠습니까 자전거 바구니에 채운 어린 계절은 울지도 않습니다

환절기처럼 가려웠던 날들, 긁힌 자리마다 바퀴의 흔적입니다

지는 꽃잎처럼 말을 더듬는 바람에게 계절의 부재를 묻지 않겠습니다

구르지 않는 봄이 덜컥 울음이었을 때 핸들을 놓고 기울어져도 좋았습니다

봄을 외면하고

비틀거리던 방향은 이제 멈추기로 합니다 그림자부터 휘어지는 목련 아래에, 모든 처음을 버려야겠습니다

바큇살이 꽃무덤처럼 웃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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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으로 이곳에 온 우리는 새로운 신분증을 얻게 될 것이라 말한 시인은 생각대로 외계생물체다. 그의 별은 M2-9. 언젠가 문득 보았던 그 별임에 틀림이 없다. 그가 얻은 신분증은 시인이면서 시인이 아니길 거부하는 것. 그럼에도 그가 필연적 시인임을 알겠다. 행간 곳곳에 폭격을 맞은 듯 다른 종족의 감정이 다른 종족이 키우는 나무에 열려있다. 잘 익은 감정의 과육은 슬프고 아린 맛이다. 아까운 나이에 생을 마감한 시인 충규. 시인이 떠난 지 몇 해가 지났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여전히 그를 기억하며 쓸쓸하게 웃은 날이 길었다. “이제 보내고 올게” 작년에 문자 한 줄 보내온 그를 걱정했는데, 그리고 오래 앉아있었을 시인 은묵과 시인 충규를 책갈피에 넣었다. 나도 이제 마른 잎으로 충규를 기억해도 괜찮은 시간을 건넜으므로. 그러면서 닮지 않았으면 좋을 것까지 닮은 그는 진정 시인 충규를 보내고 온 것일까를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어떤 것도 묻지 않았다. 다만 발표된 그의「충규」를 어느 계절에 읽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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