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풍경
잃어버린 풍경
  • 경남일보
  • 승인 2020.10.25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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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란 (수필가)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옆집 마당이 환히 눈에 들어온다. 목련 나무는 담을 사이에 두고 봄이면 하얀 꽃봉오리를 활짝 피웠다. 짙어가는 가을, 이맘때면 무성했던 목련 잎은 우수수 떨어져 겨울 채비를 한다.

삼십여 년을 하루 같이 봐왔던 나무였다. 어느 날 목련 나무는 싹둑 잘렸다. 덩그러니 밑둥치만 남은 나이테를 바라보며 사계절을 잃은 듯 허전하여 몇 번이나 정원을 내다보았다.

“왜, 목련 나무를 베었어요?” 아쉬운 마음에 마당에 있는 주인아주머니에게 물었다. “귀찮아 베어버렸더니 시원해요” 평소와 달리 근조한 표정은 목련 나무와는 무심한 사이 같았다. 그녀의 밋밋한 웃음에 어정쩡하게 따라 웃었다.

그래서였을까, 옆집 청기와집이 이사했다. 순식간에 아름다운 정원이 사라지고 4층 원룸이 들어섰다. 목련 나무가 섰던 자리에는 두 짝 창문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혹여 방주인과 시선이 마주칠까 봐 시선을 피하고 다녀야 할 형편이다.

무엇보다 바로 옆의 어린이집의 아름드리 플라타너스와 키 큰 나무들이 건물에 가려져 볼 수 없으니 답답했다. 햇볕 고운 날 하얀 빨래를 늘며 여유로웠던, 상상만 해도 행복했던 시절을 꿈꿀 수 없게 되었다. 급기야는 뒷집의 야자수 나무가 파헤쳐지그 자리에 더 큰 건물이 들어섰다. 가을이면 가랑잎을 모아 뒷마당에서 태우며 낙엽 향기를 맡았던 나름의 의식(?) 행위는 꿈속에서나 할 수 있을지.

어느 날인가, 시청 직원이 찾아왔다. 옆집 원룸에서 고양이 울음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잔다고 민원이 들어왔단다. 생경한 정서다. ‘들어온 놈이 동네 논 팔아먹는다’라는 옛말처럼 순간 황당하다는 생각이 훅 들어온다. 밤이면 옥상에서 시끄럽게 고양이 우는 소리를 듣게 된다. 얼마 전부터는 새끼 고양이 울음소리도 들었다. “어머, 어떻게 해요? 우리도 도둑고양인데?” 나도 모르게 격앙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소쿠리에 담아서 강물에 띄워 보내야 하냐고 반문하자 그도 뜨악해지며 해답을 못 찾는다. 그나저나 큰일은 새끼를 네 마리나 데리고 있는 은총이다. 강아지가 태어난 지 두 달이 되었다. 강아지 울음소리도 만만치 않을 텐데…, 그에게 유기견 센터의 안내 번호를 받았지만 요긴하게 쓰이지 않았다. 은총이네 가족은 어느 과수원에서 잘살고 있는지, 개장수에게는 팔러 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연과 집짐승, 사람이 서로 더불어 공존하며 무탈하게 지냈던 옛 풍경이 그립다. 돌아올 수 없는.

허정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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