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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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0.10.29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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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꽃다운 스물여섯에 빗속에서 진 김희준 시인(2)
김희준 시인에게는 백일장 에피소드도 많다고 한다. 계명대 장옥관 교수가 쓴 유고시집 <해설>에 보면 김희준 학생이 심사에서 장원으로 뽑혔는데 심사위원 중에서 “어째 그 나이에 그런 가족 서사를 쓸 수 있겠는가. 있다 하더라도 2시간에 써내는 작품의 구성이 이리 치밀할 수 있겠는가”며 보류를 하자고 하는 위원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때 장교수는 “심사에서 미리 예단하고 능력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금물입니다”하고 밀어부쳤는데 뒤에 쓴 당선소감을 보고 “앗차 안 뽑았다면 심사위원들이 오히려 망신을 당할 뻔했다”고 이야기한 일이 있었다고 기억했다. 이 이야기를 읽는 순간 초정 김상옥 시인의 말이 생각 났다. 백일장 심사하러 드는 사람은 “내가 이 백일장에 나갔다면 장원할 수 있을까?”성찰해 보아야 한다는 말 그 말이다.

김희준 시인의 경우도 심사위원이 좋은 사람이 있다고 여겨지는 자리에서는 ‘좋은 시’를 써내고 ‘안 좋은 시인’이 심사를 하면 안 좋은 시를 써낸다는 이야길 들은 일이 있다.

이번 첫시집이자 유고시집이 된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문학동네)을 읽으면 오늘 우리나라 젊은 이들이 쓰는 시의 현주소를 가늠하게 된다. 상상이 담대하고 그 진폭이 광대함을 느낄 수 있다. 김 시인의 시는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신화라든가, 동화라든가 영화 또는 만화의 세계를 두루 거친 독자는 낯이 익어서 곧 친숙해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꿈 많던 시절 하늘을 올려다보며 별자리 찾아보기에 남다른 유년을 보냈다면 시인의 상상이 거기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구름 포비아에 감염된 태양과 잠들지 않는 티볼리공원, 그러나 하나 빠진 완벽한 목마>라는 긴 제목의 시를 읽을 때가 특히 그러하다. ‘구름 공포증에 감염된 태양’은 태양 중심의 천체를, 티블리공원은 코펜하겐에 있는 안델센 테마 공원을, ‘완벽한 목마’는 동화, 신화, 장난감 등에 관통하는 세계를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여름이 오기 전에 헤어져// 목마를 길들이는 일에 한 계절이 지났다.서커스단이 훔쳐간 태양이 안데르센 천막으로 팔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공중으로 산란하는 바람// 초원을 달리는 소년과 태엽에 감긴 소년은 어디로 갔을까” 이런 흐름의 문장에 길들여지기 위해서는 제법 오랜 시간이 주어져서 적어도 낯설지 않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

오늘의 훈련된 시인들이 쓰는 시에 그냥 버스를 타고 노을을 보고 귀가하여 저녁이나 드는 일상으로는 젖어들 수가 없다. 김시인은 <행성 표류기>라는 시적 산문을 월간시지에 연재해 왔는데 어쩌면 그 산문으로 시인의 상상력을 더듬어가기에 좋을지 모른다. 상상과 환상의 길로 직접 안내해 가는 것이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어쨌든 김희준 시인은 시 속에서 표류하는 아이, 표류하는 별들이 자주 등장한다. 표류는 인간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기도 하므로 인간 실존의 방식으로 그 이미지를 선택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쓰이는 이미지들이 담대하다. 천길 떠러져 사라지는가 하면 다시 솟아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그는 고장난 나침반을 쓰고 때로는 분실된 천문학에 길들여진다.

김시인은 이제 새로 만나는 사물이나 기록에 전율적으로 호응하고 친해지고 만다. 행성에 머물지는 않을 것이고 그가 올리브 동산에서 만나자고 하지 않았다면 경전에 표류하게 되었을 것이고 더 많이 성경에 표류하게 되었으리라. 그는 잘 드는 감성의 칼이었다.

그런데 김희준 시인은 고전적으로 말한다면 시적 <사제.(司祭)>. 또는 예언자일 것이다. 그 스스로 죽음을 예단하는 시편들을 여럿 내놓고 있다. 경향신문에 실린 <악수>가 그 첫 번째 예일 것이다. “비의 근육을 잡느라 하루를 다 썼네. 손아귀를 쥘수록 속도가 빨라졌네. 빗방울에 공백이 있다면 그것은 위태로운 숨일 것이네. 속도의 폭력 앞에 나는 무자비했네. 얻어 맞은 이마가 간지러웠네 간헐적인 평화였다는 셈이지”이렇게 시작된 시는 그가 지난 7월 24일 새벽 진주시 내동면 빗길에서 직접 운전하다 죽음과 맞닥뜨린 그 순간의 예단이었다. 자기의 운명을 스스로 내다본다는 것이 하나의 예언적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의 상상과 감성은 그래서 천성이요 기적적 반응이라 할 수 있겠다.

김희준 시인! 그는 예언을 넘어 어느 별에 가 있을까? 아니면 시에 쓰인 대로 하나 하나 답사하고 있는 것일까? 이 별에서 저 별까지 가는 데 있는 한 작은 별이, 분꽃만한 별이 분꽃 목소리로 시낭송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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