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44) 가셔브롬2봉 남릉
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44) 가셔브롬2봉 남릉
  • 경남일보
  • 승인 2020.11.02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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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가셔브롬2봉 남릉 루트 등정
2004년 가셔브롬2봉 원정대원이 정상 등정 후 한자리에 모였다. 앞줄 왼쪽부터 이재현 최강식 윤치원 뒷줄은 구자영 박명환 이건호 윤도병 박정헌
2004년 한국가셔브롬1·2봉 원정대(원정대장 이건호)가 파키스탄 카라코람에 위치한 가셔브롬 2봉에 등반에 나서 한국 최초 남동릉 초등을 달성했다. 당초 남서릉을 통해 등반할 계획이었지만 난이도가 높고 그동안 한국원정대가 시도하지 않았던 남릉으로 루트를 바꿔 정상에 섰다. 가셔브롬2봉을 오른 뒤 가셔브롬1봉을 잇따라 등반할 계획이었지만 기상악화로 포기했다. 박정헌은 7400m에서 패러 글라이더를 이용해 30분 만에 베이스캠프에 안착하면서 히말라야에서 의미 있는 비행을 했다.

방콕서 윤치원 대원 합류…전 대원 모여

2004한국가셔브롬1·2봉원정대(원정대장 이건호)는 6월 8일 김해공항을 출발, 낮 12시 30분 방콕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로체 남벽 등반을 마치고 대기하고 있던 윤치원 대원과 합류했다. 원정대가 구성된 이후 5개월 만에 8명의 전 대원이 모였다. 또 뜻밖의 반가운 손님을 만났다. 뉴질랜드 출신 토니 크리스티안센이었다. 그는 하반신이 없는 장애인이지만 2002년 박정헌 등반대장과 함께 아프리카 최고봉 킬로만자로(5895m)를 등반한 주인공이었다. 그의 등반 과정이 모 방송사 프로그램에 방영되면서 장애우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도 했다. 그는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베트남 등 세계 각국에 희망을 전파하고 있다. 베트남에서 5일간 강연을 마친 토니는 중증 장애우였지만 항상 밝고 웃음을 잃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토니는 원정대를 격려했다. “최선을 다하면 가셔브롬1·2봉을 반드시 등정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 건강하기를 바란다.”

그날 밤 10시 10분 파키스탄 라호르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6월 9일 새벽 2시 라호르에 도착한 후 버스로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를 향했다.

 
팸플릿
길기트 분쟁 발생…비행기로 등반 도시 ‘스카르두’ 도착

10일 행정절차를 마친 원정대는 12일 오전 9시 이슬라마바드에서 항공편으로 히말라야 등반의 관문인 스카르두로 이동했다. 원정대는 당초 15일 버스를 이용해 스카르두로 이동할 예정이었지만 카라코롬하이웨이의 교통 요충지인 길기트에서 분쟁이 발생, 교통이 통제됨에 따라 비행기를 선택했다. 길기트는 힌두쿠쉬산맥 라카포쉬(7788m)와 세계 9위봉인 낭가파르바트(8125m)사이에 위치한 곳으로 폴로 경기와 훈자계곡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종족 간 분쟁으로 교통이 통제되고 있어 사실상 원정대가 통과하기에는 불가능한 실정이었다. 파키스탄 주재 한국대사관에서도 원정대에게 길기트 지역의 상황을 설명하고 대원들의 안전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길기트 지역은 지난 5월 말부터 이달 초까지 고속도로 이용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파키스탄 주정부가 군대를 파견하면서 점차 안정되고 있었다. 스카르두에서 식량과 장비를 최종적으로 구입한 원정대는 14일 본격적인 카라반이 시작되는 아스콜리로 향했다.

 
가셔브롬2봉 등반루트
K2 등정 50주년…파키스탄에 몰린 원정대

파키스탄 카라코람은 K2 등정 50주년(1954~2004년)을 맞아 많은 원정대가 몰렸다. 초등한 이탈리아팀을 비롯해 14개팀이 등반을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8000m 14개 봉을 모두 오른 한왕용씨가 K2에 버려진 쓰레기를 청소하기 위한 청소원정대를 구성해 참여하고 있었다. 그러나 날씨가 좋지 않아 모든 등반이 중단된 상태였다. 원정대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포터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1개 원정대는 평균 100~300명 정도 포터를 고용해 식량과 장비를 수송했다. 5년 만에 찾은 원정에서 가장 큰 변화는 당나귀를 이용한 짐 운반이었다. 예년에는 현지인들이 약 25㎏의 짐을 나르고 돈을 받아 생계를 유지했었다. 그러나 당나귀가 포터 2명 이상의 몫을 하면서 짐꾼으로 선발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졌다. 일자리를 잃은 현지 주민들은 포터 선정에 신경을 곧두 세우며 간간이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포터 200명 고용…‘고난의 행군’

원정대는 마을 주민들을 적절히 섞어 약 200명의 포터를 고용하고 15일 아스콜리를 떠나 매일 8시간씩 걷는 카라반을 시작했다. 16일 졸라, 17일 파유, 19일 우르두카스, 20일 고로2, 21일 샤그린을 거쳐 22일 베이스캠프에 무사히 도착했다. 가셔브롬 BC에는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싱가포르 등 4~5개 원정대가 도착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날씨가 좋지 않아 1캠프(5900m)를 건설한 후 더이상 등반을 못하는 상황이었다.

가셔브롬1·2봉 등정은 BC에서 출발한 후 곧바로 나타나는 아이스 폴(얼음폭포) 지대에 펼쳐져 있는 크레바스를 어떻게 통과하느냐가 가장 큰 열쇠다. 하지만 각국 원정대는 너무 힘든 코스라 선뜻 나서지 않고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2캠프로 향하는 윤도병 대원
가셔브롬 베이스캠프에는 낯익은 인물이 있었다. 스페인으로부터 분리독립을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는 바스크민족의 산악 영웅 알베르트(34)다. 알베르토는 지난 1999년 내가 K2 등반 당시 만났던 쌍둥이 형제 가운데 동생이었다. 당시 쌍둥이 형제는 8000m 10개 봉을 무산소로 등정했었다. 10개 봉 등정 후 쌍둥이 형제 중 펠릭스는 “누군가 먼저 죽더라도 남은 사람이 8000m 14좌를 모두 무산소로 오르자.”고 말했다. 2003년 알베르토와 펠릭스는 가셔브롬 1·2봉 등정 후 하산하다 형 펠릭스가 추락사하고 말았다. 결국 혼자 남은 동생 알베르토는 형의 유언을 따라 8000m 14개 봉우리를 산소를 사용하지 않고 오르는 세계 최초의 산악인이 됐다.

날씨가 좋아지자 원정대는 본격적인 등반에 나서 6월 29일 1캠프(5900m)를 설치했다. 셰르파와 고소포터를 고용하지 않은 원정대는 대원들이 식량과 장비를 옮겨야 했다. 폭설로 인해 1캠프까지 10시간 정도 소요됐다. 곳곳에 숨어 있는 크레바스를 건너기 위해 많은 시간이 걸렸다. 7월 1일 2캠프 건설에 나서 해발 6700m에 고정로프를 설치하고 다음 날 오후 8시 전 대원이 베이스캠프로 하산했다.

당초 노멀루트인 남서릉을 경유, 정상에 등정할 계획이었지만 기상 여건을 감안해 남릉으로 루트를 변경하기로 했다. 남릉은 1975년 프랑스가 개척한 루트로 최근까지 등반한 기록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국내의 많은 원정대도 남서릉을 통해 정상에 등정했다. 한국 원정대로서는 처음으로 남릉 루트를 선택했다.

원정대는 7월 6일 베이스캠프를 출발, 오후 2시 1캠프(5900m)에 도착했다. 다음 날 2개 조로 나눠 박정헌·윤치원·최강식 대원이 루트를 개척했다. 이재현·윤도병·박명환 대원은 물량과 장비를 수송하면서 해발 6400m에 2캠프를 건설했다. 8일 오후 2시 해발 6900m에 3캠프를 설치할 계획이었지만 적절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 결국 200m 정도 후퇴한 곳에 임시 캠프지를 만들고 하룻밤을 보냈다. 7월 9일 7100m에 3캠프를 만들어 시즌 초등과 가셔브롬2봉 남릉 한국 초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가셔브롬2봉 남릉은 예상보다 힘든 코스였다. 많은 원정대원들이 남릉을 선택하지 않고 노멀루트로 택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남릉은 기존 노멀루트에 비해 경사도가 심하고 암벽으로 구성돼 있어 많은 로프가 필요했다. 설상가상으로 9일부터 기상이 나빠지면서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6명의 대원들은 3인용 텐트에서 다리도 제대로 뻗지 못하는 악조건에서 이틀을 버텼다. 대원들은 차 한잔으로 배고픔과 추위를 이기며 날씨가 좋아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대원들의 바람과는 달리 날씨는 더욱 나빠졌다. 이틀간 계속해서 눈이 내렸다. 비상식량으로 이틀간 버텼지만 더이상은 무리였다. 10일 오전 8시 전 대원은 BC로 하산했다.

그러나 BC로 귀환도 쉽지 않았다. 사흘째 내리는 폭설과 한 치 앞도 구분할 수 없는 악조건을 오로지 로프에 의지하며 하산했다. 날이 저물면서 눈은 더욱 거세졌다. 대원들은 2명씩 로프로 묶고 하산을 계속했다. 어둠 속의 크레바스는 대원들을 집어삼킬 듯 위협적이었다. 그날 저녁 9시 대원들은 무사히 BC에 도착했다. 대원들은 정상 등정의 아쉬움보다는 무사히 귀환했다는 안도감으로 만족해야 했다. 1주일간 기상이 나빠 BC에 머물렀다. 전 대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가 열렸다. 이건호 대장은 “파키스탄 기상청과 웨더뉴스에 따르면 오는 25일까지 바람도 비교적 적고 습도가 낮아 눈이 내릴 확률이 희박하다는 예보를 내놓고 있어 정상 등정에는 좋은 기회다. 이번에 등반하지 못하면 여름이 찾아오는 몬순이라 기회가 없을 것이다.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D-day’는 22~23일이다. 모두 최선을 다하고 안전하게 베이스캠프로 하산해 주기 바란다.”

 
가셔브롬2봉으로 향하는 도중 만난 아이스폴을 지나는 윤치원(뒷쪽).
원정대는 19일 BC를 출발해 20일 3캠프, 21일 4캠프(7400m)에 도착해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자정께 정상 공격을 한다는 계획이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7월 19일 오후 5시 정상 공격을 위해 BC를 떠났다. 박정헌·이재현·윤도병·윤치원·박명환·최강식은 19일 밤 10시께 1캠프에 도착했다. 많은 눈을 헤치며 20일 2캠프, 21일 3캠프까지 진출했다. 3캠프에 모인 정상 공격조가 모두 4캠프로 갈 경우 식량과 텐트 사용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결국 누군가는 내려가야 할 처지였다. 모두가 눈치를 보고 있었다. 결국 확률을 선택했다. 8000m 등정 경험이 많은 윤치원·박정헌, 그리고 최강식이 가기로 했다. 나머지 대원들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정상을 앞두고 첫 8000m 등정을 포기하고 하산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7월 22일 많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3명의 대원은 하산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정상 공격조도 한때 하산을 고려할 정도였다. 하루 휴식을 취한 등정조는 7월 24일 4캠프를 설치했다. 다음 날 새벽 2시 30분 3명의 대원은 정상 공격에 나섰다. 정상까지는 8시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최근 내린 많은 눈으로 속도가 나지 않았다. 등정조는 교대로 눈을 헤쳐나가며 등반 12시간 만인 오후 2시 20분께 정상에 섰다. 카메라로 촬영을 마친 대원들은 4캠프로 서둘러 하산했다. 박정헌은 해발 7300m에서 패러글라이딩으로 하산했다. 베이스캠프에서는 그가 혹시 파키스탄-인도 국경을 넘지 않을까 긴장했다. 그는 8000m 이상까지 올라간 후 방향을 잡고 30여 분의 비행 끝에 저녁 7시 18분 BC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는 1996년 초오유에서 패러글라이딩으로 하산한 후 두 번째로 비행하는 기록을 남겼다. 걸어서 하산한 윤치원·최강식은 7월 27일 무사히 도착했다.

 
정상에 선 박정헌
정상에 선 최강식
윤치원 -가셔브롬2봉 정상
윤치원과 최강식은 등정 소감을 밝혀 우리를 웃게 만들었다. “앞으로 패러글라이딩으로 하산하는 사람과는 같이 등반하지 않겠다. 내려오는데 2박 3일이 걸리고 남은 텐트와 장비를 챙겨 오려니 너무 힘들다. 패러 타는 사람하고는 같이 산에 안간다.”고.

경남산악연맹은 이번 등반에서 시즌 한국 초등을 이뤘다. 또 1975년 프랑스 원정대가 초등한 남릉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올랐다. 1988년 이후 16년 만에 이 루트를 두 번째로 등정하는 등 풍성한 기록을 남겼다.

파키스탄 정부는 K2 등정 50주년을 맞아 2004년 한국원정대를 비롯해 대원들을 초청해 만찬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무사랴프 당시 대통령은 바쁜 일정으로 참석하지 않았고 다른 주요 인사들이 참석해 50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박명환 경남산악연맹부회장·경남과학교육원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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