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경남에 남은 가야의 흔적
[창간기획]경남에 남은 가야의 흔적
  • 박준언
  • 승인 2020.11.02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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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고대 600년 역사 간직한 가야 연맹
3.함안 말이산고분군(사적 제515호)-아라가야
함안 말이산고분군. 사진제공=가야고분군세계유산등재추진단
함안 말이산고분군. 사진제공=가야고분군세계유산등재추진단

말이산고분군은 1~6세기 가야연맹을 구성했던 아라가야의 왕과 지배층 집단무덤으로 가야고분군의 탁월한 경관을 드러내는 가야 남부지역의 대표적 고분군이다. 문화재청이 선정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신청 대상 7개의 고분군 중 가장 오랜 기간 조성됐다.

함안천과 광정천에 둘러싸인 해발 50m 정도의 낮은 구릉 능선의 정선부를 따라 5∼6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127기의 큰 무덤들이 나란히 입지하고 있다.

말이산 고분군은 1587년부터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나 일제강점기 1918년 야쓰이 세이이쓰에 의해 도굴식 발굴이 있은 후 정식보고하지 않고 사진과 도면 몇 장만 남기는 등 일제에 의해 철저히 유린당한 채 100년 동안 지하에 방치돼 있었다.

1917년 말이산 4호분과 25호분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해방 후 1963년 1월에 함안 도항리 고분군과 함안 말산리 고분군이 각각 사적 제84호와 사적 제85호로 지정됐다.

말이산 고분군에 대한 학술조사는 주로 1990년대에 들어와서 정밀 조사가 진행됐다. 도항리 고분군과 말산리 고분군은 하나의 문화권에 속하는 것으로 인식돼 지난 2011년 7월 28일 사적 제515호 함안 말이산 고분군으로 재지정 됐다.

봉토분은 규모에 따라 배치에 차이를 보이는데, 구릉지 정상부에는 20~40m의 대형 봉토분이 축조되고, 사면부에는 20m 이하의 중소형 봉토분이 축조된다.

말이산 고분은 원형의 봉토 아래에 한 기의 세장방형 수혈식 석곽을 배치하고 있다. 고분 중 4호분 같은 석곽은 단벽과 장벽에 나무를 걸칠 수 있는 홈을 설치하였는데 들보시설 또는 감실, 풍비 등으로 불리고 있다. 석곽의 내부는 대체로 세 곳으로 공간을 분할해 가운데에는 주피장자를 두고 석곽의 양 단벽 쪽에는 부장유물이나 순장인을 안치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말갑옷을 부장한 대형의 목곽묘도 확인됐다.

이러한 세장방형 수혈식 석실, 석곽의 벽에 있는 감실, 순장자, 지호문 등은 고대 아라가야의 실체와 대외관계를 밝히는 데에 매우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아울러 토기에서는 함안형식토기가 5세기 말∼6세기 초에 형성될 정도로 지역 색이 강하며, 그 가운데에서도 화염형 투창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한다. 부장유물에서는 대금구나 이식 등과 같은 장식성을 강하게 띠는 금공품보다는 갑주, 마갑, 마구류와 같은 무기구류를 다량 부장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20세기 초부터 이루어진 발굴조사에서 토기, 철제무기, 교역품 등 8000여점의 부장품이 확인됐다. 출토된 토기는 고배, 기대 호와 같은 가야토기의 공통적인 구성이 확인되지만 집모양, 수레바퀴 모양, 사슴모양, 배모양 등 다양한 형상을 본 뜬 토기도 나왔다. 또 불꽃모양의 투창이 있는 독특한 기법이 나타난다.

말이산 고분군은 아라가야 최전성기인 5세기 후반 최고지배층 묘의 고고학적인 실체를 확인할 수 있으며, 2018년부터 조사가 진행된 13호분은 가야문화와 역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함안 말이산 4호분 출토 수레바퀴모양토기. 사진제공=함안군
함안 말이산고분군 출토 둥근고리큰칼. 사진제공=함안군
함안 말이산고분군 출토 등잔토기. 사진제공=함안군


합천 옥전고분군(사적 제326호)-다라국

 
합천 옥전고분군. 사진제공=가야고분군세계유산등재추진단
합천 옥전고분군. 사진제공=가야고분군세계유산등재추진단

옥전고분군은 4~6세기 후기 가야를 이끌었던 다라국 지배층의 무덤이 조성되어 있는 고분군이다. 다라국의 중심지이자 교통의 결절지인 황강 주변의 구릉지에 위치하며 다른 정치체, 주변국과 활발히 교류했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지난 1985년 경상대학교박물관의 황강변 정밀지표조사과정에서 다량의 토기, 갑주(甲胄), 금동제품편(金銅製品片)이 채집되면서 중요성이 인식됐다. 이후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대형고총고분부터 소형분에 이르기까지 182기의 무덤과 유물 3500여 점이 수습됐다. 이 과정에서 금동관, 금귀걸이, 용봉황무뉘고리자루큰칼, 갑옷, 말갖춤 등이 출토돼 가야국(伽耶國) 최고지배자집단의 공동묘지임이 밝혀졌다.

다락국에 관한 기록은 아쉽게도 우리나라 역사서에는 보이지 않는다. 중국 양직공도(梁職貢圖)와 일본서기(日本書紀) 등의 외국 역서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구릉지 동쪽 정상부에는 목곽묘가, 서쪽 정상부에는 석곽묘와 석실묘를 매장부로 하는 30여 기의 봉토분이 축조되어 있다. 석곽묘는 금관가야의 영향으로 주곽과 부곽의 구성이 나타나지만, 금관가야와는 달리 매장부 내부의 공간을 칸막이벽으로 구분하는 방식이 확인됐다.

다라국은 1~5세기 초기까지 온전한 정치체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다가 5세기 전반부터 강력한 지배자가 다스리는 정치체의 형태를 보인다. 이 시기에 조성된 23호분은 장방형의 대형나무덧널무덤으로 굽다리접시 긴목항아리, 바리모양그릇받침 등의 새로운 그릇들이 출토됐다. 또 갑옷과 말갖춤, 미늘쇠 등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5세기 중반부터는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는데 이는 거대한 봉분을 가진 고총고분의 등장이다. 돌덧널무덤이 축조되기 시작하고 뚜껑은 일반적인 돌 뚜껑이 아닌 나무 뚜껑을 사용했다. 이는 이 지역만의 독특한 무덤 축조방식이다.

대표적인 무덤으로 M21호분은 봉분 직경이 21m 정도의 고총고분으로 내부에서는 11자루의 고리자루큰칼과 10점의 투겁창, 300여점의 화살촉 등이 출토됐다. 특히 로만글라스는 경주 금령총에서 나온 것과 같은 형태로 다라국이 서역 등과 국제적 교류활동을 다양하게 전개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특히 M3호분은 다라국의 최고 전성기를 보여는 고분으로 당시 최고 수준의 금공기술로 제작된 용과 봉황 장식의 대도와 금동장식 투구가 출토돼 가야 지배층의 위세를 가장 과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는 같은 시기 한반도 내 어떤 지배자급 무덤에도 뒤지지 않는 수준을 보여준다.

일본 쿠마모토현 에다우나야마고분, 쿠마모토현 덴사야마고분, 후쿠오카히하쯔카고분 등에서는 옥전고분군에서 출토된 것과 유사한 금귀걸이가 출토돼 당시 다라국이 일본과도 활발한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옥전 28호분 출토 금귀걸이는 가야 귀걸이를 대표하는 유물로 일본 금속공예 영향을 준 점 등을 인정받아 2019년 12월 보물 제 2043호로 지정됐다. 옥전고분군은 가야 건국부터 멸망까지 기간인 42년~562년까지의 모든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각 무덤 규모와 출토된 부장품 등을 통해 다락국이 발전한 정치체제를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준언기자

 

합천 옥전고분군 에서 출토된 로만글라스. 사진제공=합천군
합천 옥전고분군 에서 출토된 환두대도와 종장판주(투구),귀걸이. 사진제공=합천군
합천 옥전고분군 에서 출토된 철제 말투구. 사진제공=합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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