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방울을 울리며 낙타가 온다
[강재남의 포엠산책]방울을 울리며 낙타가 온다
  • 경남일보
  • 승인 2020.11.08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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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을 울리며 낙타가 온다/이선애

책꽂이 속의 산
깨어지면서 돌아오는 둥근 메아리
끼워 넣고 싶은 소리가 많은 날
지붕 바깥의 어느 바람일까
겉지와 속지 사이 휘몰리는 둥근 능선
낙타는 풀을 씹고 나는 피로 목을 축인다
사라진 과거는 무엇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묻기도 답하기도 전에 낙타가 온다

무릎을 굽혔다 펼치며
사막을 걷고 또 걷는다
어떤 통증에서는 단맛이 돌고
이마에서 떨어지는 짜라투스트라
생식기를 가진 산들이 겹친다
나뭇가지에서 새로 돋는 나의 갈기들
문득 아득한 소리로 달려오는
붉은 꽃을 피처럼 토하며
낙타는 뜨거운 모래를 산에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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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산책… 사막에는 이렇다 할 길이 없다. 하지만 길이 아니어도 가야할 때가 있다. 길을 간다는 것은 끊임없는 자기 갱신을 요구한다. 이것은 결핍을 마주한 지난하고 아름다운 삶이다. 이러한 삶을 나는 단순하게 지나친 것이 아니다. 책꽂이 산을 오르면 언제든 펼칠 수 있는 진행형인 것이다. 삭막한 내가 지붕 바깥의 바람이든 바람을 따라 둥근 메아리로 깨어지든 사람으로서의 삶을 실현하고 싶은 내적자아인 것이다. 그리하여 “겉지와 속지 사이 휘몰리는 능선”으로 남았으면 하는 간절함인 것이다. 쉽게 폐기할 수도 도피할 수도 없는 생이 무거워 낙타를 자초하는 나는 그러므로 어떤 통증에서는 단맛이 나기도 하고 겹친 산에서 갈기가 생기기도 한다. 어쩌다가 다른 길이 내려오기라도 한다면 주지적 책장이 붉은 꽃을 피우기도 하겠지. 지나온 길이라고 지워졌다 단정하는 것은 금물이다. 지금 새로운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가는 나를 진정한 나라고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책꽂이에 꽂힌 짜라투스트라의 찬란하고 극적인 이야기가 사막 곳곳에 뼈를 묻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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